▲ 최진례 할머니는 무너지는 평화전망대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
대추리의 가을볕은 뜨거웠다. 갖가지 곡식을 살찌우기 위해 가을볕은 변함없이 내리 쬈지만 대추리에는 주민들의 울부짖음만 가득했다. 대추리를 한 눈에 내려 볼 수 있었던 평화전망대가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으로 철거되고 있었던 자리에는 주민들의 안타까운 한숨이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대추리로 24살에 시집와 33년 동안 사셨다는 최진례 할머니는 무너지는 평화전망대를 보며 끊임없이 경찰들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뭐 하러 여기 왔냐”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제 남은 건 욕 밖에 없어. 그냥 악하고 욕만 남은 거야”
대추리 주민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강제철거
“이 놈들은 이렇게 해서 우리가 지레 지쳐 죽기를 바라는 거야. 집 허무는 게 뭐 그리 급하냐. 이 집 부수면 바로 옆집은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사람들이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어떤 집이 빈집이란 말이냐. 그냥 우리 겁줘서 병들어 죽으라고, 그래서 이곳을 떠나라고 하는 거야”
할머니는 국방부에서 빈집을 철거하겠다고 밝힌 후 한 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포크레인이 들어오나, 용역반원들이 들어오나 살펴보고 뜬 눈으로 새카만 밤을 보내야 했다. 새벽이 오면 모두들 밤새 안녕한가 확인이라도 하듯 노인회관 앞에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한숨을 나눴다.
할머니는 손자 남매를 키우며, 아직도 살아계시는 100살이 넘은 시부모님까지 돌보며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올 해는 농사를 짓지도 못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유치원에도, 초등학교에도 가지 못한 아이들
▲ "자식들이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사진 한 장 찍겠다는 기자를 말렸지만 막무가내 기자의 사진기에는 할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
“어. 할머니 여기 큰할머니 있는 곳이야. 절대 나오면 안 돼. 집에서 고모랑 있어. 절대 나오지마”
오늘 어린 손자는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유치원 차가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거가 진행된 13일, 경찰이 마을 전체를 봉쇄해 유치원 차도, 초등학교 차도 들어오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용역과 경찰의 폭력에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철거가 다 마무리 되고서야 마을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닐 수 있었다. 5월 4일도 그랬다. 그 날은 누구나 기억 속에 가지고 있을 봄 운동회 날이었다. 그러나 대추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운동회가 없다. 그저 무너져 버린 학교만이 남았다.
“얼마 전에 집으로 편지 한통이 왔어. 법원에서 온 거야. 벌금 30만 원을 내라는 통지서더라구. 내가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경찰 때렸다고 소환장이 날라 와서 조사를 받았는데 벌금 30만 원 내라데. 주민대책위 사람들이 절대 내지 말라고, 또 벌금 용지 날아오면 가져오라고 했어. 절대 안 내지. 내가 뭐 잘못 했어?”
할머니는 기자회견에 참석 했다가 경찰들이 기자회견을 막자 먹던 물통으로 경찰들 머리를 내리 쳤다. 그게 벌금 30만 원 짜리다. 평생 살던 땅을 빼앗아 가는 놈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며 당당하고, 제 집을 지키겠다고 울부짖는 할머니가 경찰 머리 때린 것은 불법이 되어 버렸다.
▲ 인권활동가들은 평화전망대에 몸을 묶고 끝까지 저항했으나 경찰은 이들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평화전망대를 부셨다. |
"수 십 억으로 우리집, 여기 사람들 살 수 있어?“
마을 밖 사람들은 보상금 많이 챙겨서 나가면 되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고 주민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돈 좀 더 받아 나가려는 사람들이라는 누명까지 씌운다.
“나도 땅 있는 거랑 집 있는 거 조사해봤어. 1억 나온데. 이거 갖고 밖에서 지금 우리 집 같은 거 살 수 있어? 여기서 행복하게 나누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 만날 수 있어? 돈 준다고? 수 십 억을 가져와보라고 해”
평화전망대가 무너지고, 옆집이 무너지고, 앞집이 무너지고... 할머니에게 감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물어보았다.
"여기 있던 모든 순간이 행복이야“
“여기 있었던 순간은 모두다 행복이야. 여기 사람들은 남 퍼주기 바쁜 사람들이야. 밭 조그맣게 일궈서 파는 거 없어. 같이 나눠 먹기에도 바쁘지. 우리는 그렇게 베풀고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행복했던 것 같아. 그것도 올 해가 끝이지 뭐”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한숨이, 분노가, 안타까움이, 절망이 가득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웃으며 “절대로 안 나가. 어디로 가. 갈 데도 없어. 끝까지 같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