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는 더 이상 전선이 아닌가!

[인터뷰]2차 철조망 설치 등 대추리 분위기

국방부의 2차 철조망 작업이 진행되던 8일 12시, 이옥자 할머니의 점심밥상에는 호박지짐, 간고등어, 닭발, 무말랭이무침, 김치, 청국장이 올랐다. 때마침 경찰병력이 배치된 대추리 4반 입구에 거주하는 이옥자 할머니는 집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고 농성에 들어간 주민, 지킴이 등을 위해 숟가락을 몇 개 더 놓기로 했다. 그렇게 숟가락 놓을 틈 없이 꽉찬 개다리소반에는 문정현 신부, 진재연 솔부엉이도서관 관장, 이유빈 팽성주민대책위 간사, 조수빈 참세상 기자까지 입을 보탰다. 이옥자 할머니는 대추리에서 수확해 지은 잡곡밥을 몇 숟가락씩 더 얹어주면서 “나는 총각 오면 같이 먹을께”하며 밥상에서 물러났다. “청국장이 감동”이라는 등의 감탄사들이 날아드는 가운데, 문정현 신부가 “서울 가면 이런 거 못 먹어”하고 거든다.

비슷한 시각 황새울방송국 들소리, 밥상에 오른 ‘정체모를’ 배추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넝쿨 영상기자가 밥당번인 송태경 책임피디에게 “도대체 이 배추 어디서 났냐”고 몇 번을 따져 묻자 그때서야 송태경 피디는 “요 앞에서 캐왔지”하며 실토하는데, 곧바로 김장 때 부족한데 그걸 못 참고 캐왔다는 타박이 날아왔다. 도두리 쪽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방송국 앞 심어놓았던 배추 한포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울상지을 이하연 영상기자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넝쿨은 “한 포기만 캐도 티가 나는데”하면서 중얼거렸다.

“한평생 농사만을 지어 온 주민들에 대한 살인행위”

국방부는 8일 2차 철조망 작업을 단행했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일대의 추수가 지난 9월 27일을 시작으로 10월말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면 추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철조망)작업에 착수한 셈이다. 국방부는 지난 1차에 이어 총 20만평, 2.8km의 철조망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평택범대위는 “한평생 농사만을 지어 온 주민들에 대한 살인행위”라고 규정했다.

  2차 철조망 설치 작업 모습

그러나 마을 분위기는 의외로 한산하다. 마을에 상주하다시피 한 언론사 기자들도 눈에 띄지 않았고, 몇몇 언론사들은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다. 기자회견을 마친 자리에는 문정현 신부, 평택범대위 활동가들과 지킴이, 주민 등 20여명이 남아 농성을 진행했으나, 외부 단체의 활동가들은 보이지 않았다. 송태경 들소리 책임피디는 “당할 대로 당해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라고 이번 2차 철조망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난 3일 김지태 팽성주민대책위 위원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에 대한 충격이 아직 남아있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정부의 압도적 물리력에 대한 무기력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유빈 팽성주민대책위 간사는 “김지태 이장에게 2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충격이 큰 것 같다. 의욕들이 주춤한 상태”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진재연 관장은 “평택 싸움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운동진영에서도 끝났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오는 22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앞두고 있지만, 평택 국면을 바꿀 수 있는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부 시민사회운동진영의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대한 지적이다.


대추리는 더 이상 최전선이 아닌가!

실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싸움에서 ‘대추리’는 더 이상 거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확장반대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공동행동 단체 들사람들’은 지난 10월 13일부터 11월 11일까지 종각 보신각에서 거리 예술제를 진행하고 있고, 몇몇 영화제에서 ‘대추리전쟁’ 등 평택 관련 영상을 상영한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외부의 다양한 행동들의 필요성은 차치하고라도 고립되고 있다는 대추리 내부 주민들의 우려는 철조망뿐만 아니라 더 이상 거점이 되지 못하는 대추리 내부 현실 속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진재연 관장은 “대추리로의 통행이 제한되면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정부의 압도적 물리력을 붕괴시키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패배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7월 10일을 시작으로 평택에서 세 차례, 서울에서 한 차례 등 올 9월 24일까지 총 네 차례의 평화대행진이 진행되었다. 1차 평화대행진은 7월 10일 평택 팽성읍에서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이날 1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경찰의 야만적인 물리력에서도 캠프험프리 미군기지 철조망을 둘러싼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완료하면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2차 평화대행진은 지난해 12월 11일 평택역에서 5천여 명이 결집한 가운데 진행, 올해 2월 12일 3차 평화대행진 역시 평택 대추분교에서 진행되었지만, 지난 5월 4일 대추분교 침탈 및 1차 철조망 설치 이후 평택에는 더 이상 평화대행진이 진행되지 못했다. 몇 차례 대추리로 집결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공권력의 물리력 속에 번번이 무산되었다.


진재연 관장은 “여전히 소수지만 50가구 정도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철조망을 끊어내지 못하고 고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추리는 그야말로 국가 폭력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 주민 생존권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긴밀하게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변화는 소리 없이 온다”

오는 22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진재연 관장은 “대추리 내부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되고 있지 않았다. 대추리를 지켜야 할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총궐기에 참석하지 않고 대추리에) 남아 있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철조망이 깊숙이 대추리를 죄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추리’ 존폐를 염두한 발언이다.

문정현 신부는 보다 직접적으로 묻는다. “질 것 같아? 씨를 뿌리면 언제 자랄지 몰라 날마다 보면 안자라는 것 같지. 그러나 어느 순간 보면 자라있는 것처럼 변화는 소리 없이 온다”

오찬을 끝낸 문정현 신부는 또다시 농성장소로 돌아와 자리를 깔고 눕는다. 대추리 주민들은 여전히 일상 생활을 꾸려가고 있지만, 번갈아가며 농성장소 주변을 배회한다. 대추리 4반 입구 대추리에서 도두리로 진입 하는 도로까지 들어온 경찰병력을 보던 대추리 한 주민은 “결국 이곳까지 왔네”하며 한숨을 내쉰다.

  진재연 솔부엉이 관장,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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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선은 있다

    다시전선을 살리기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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