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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덮어 버릴 자주색 꽃

[강우근의 들꽃이야기](48) - 긴병꽃풀


긴병꽃풀은 숲 가장자리에 넓게 무리 지어 자란다. 산자락과 주택가가 만나는 이런 곳은 부서진 가구, 망가진 가전제품 따위가 마구 버려져 쓰레기장이 되어 버리기 일쑤다. 이런 곳에서도 긴병꽃풀은 자기 자리를 넓혀가며 자라고 있다. 날씨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강추위 때문에 잎들이 얼어서 검게 변한 것도 있지만 낙엽을 들추면 푸른 잎들이 싱싱하게 살아 있다.

긴병꽃풀은 언제까지 저렇게 푸를까? 겨우내 살아서 봄이 되면 그대로 꽃을 피우게 될까? 아니면 결국 다 얼어죽고 이른 봄 다시 싹이 나서 자랄까? 소한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저렇게 버티는 것을 보면 그대로 겨울을 날 것 같다.

겨울을 나는 풀들은 대개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바람을 피하면서 한줌 햇볕이라도 더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긴병꽃풀은 나무 아래 응달에서 바닥에 눕지도 않고 오히려 잎자루를 세우고 기세 좋게 겨울을 난다. 옆 축대에서 자라던 방가지똥은 얼마 전 끝내 얼어죽었다. 맺혔던 꽃봉오리는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어서 얼어버렸다. 조금씩 말라가던 시든 방가지똥은 어느 날 꺾여 버려졌다. 긴병꽃풀은 홀로 생활하는 방가지똥이랑 달리 무리 지어 덩굴을 뻗으며 옆으로 옆으로 영역을 넓혀간다. 무리 짓는 것, 그것 때문일까? 긴병꽃풀과 방가지똥이 운명을 달리 한 것이.

버려진 소파 속에 노린재들이 우글우글하다.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벌레들은 이렇게 한곳에 모여 함께 겨울을 난다. 박새 따위 새들도 겨울에는 무리 지어 함께 겨울을 난다. 뱀도 역시 한곳에 모여들어 겨울잠을 잔다. 함께 겨울을 나는 까닭이 무엇일까? 힘든 시기를 이렇게 함께 모여 견디어 내는 게 혼자서 견디는 것보다 나은가 보다. 겨울의 연대, 모두들 힘들 때 함께 모여 견디어 내고 있다. 함께 겨울을 나는 노린재나 무당벌레 따위는 강한 냄새를 뿜어낸다. 긴병꽃풀 잎에서도 강한 냄새가 난다. 노린재처럼 지독한 냄새가 아니라 허브 같은 향긋한 냄새가 난다. 뜯어다 나물로 먹고 싶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자라난 것이라 내키지가 않는다.

긴병꽃풀은 봄이 되면 자주색 꽃을 피울 것이다. 꽃밭이나 화분에 심어도 손색이 없는 멋진 꽃으로 쓰레기 더미를 덮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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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긴병꽃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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