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애국조회, 그 쓰라린 패배의 기억

[맹세야, 경례야 안녕](9) - 군문초 교사 김훈태 님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맞는지 모르겠다. 국기에 대한 맹세. 곱씹어 볼수록 나치스럽다. 나는 태극기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를 나의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슴이 아프지만, 사실이다. 정이 떨어졌다. 평택의 대추분교가 무너지던 날 나는 깨달았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라는 것을.

교직 4년차 되는 해에 나는 전담을 신청해 담임을 맡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 수감되었다. 전담을 택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학원 진학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역거부의 충격을 담임교사로서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애국조회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였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운동장 조회를 유난히 좋아해서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전교생을 운동장으로 불러내 훈화를 했다. 담임교사들은 아이들을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의 이열종대로 행진곡에 맞춰 데리고 나가 운동장의 정해진 줄에 세워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란히, 차렷, 열중 쉬엇, 차렷의 부동자세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도록 지도해야 했다.

이어지는 교장의 훈화는 대개 나라 사랑과 효도, 질서와 청결, 근면 따위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애국조회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식민지 시절 일왕에게 바치던 일련의 조회 행위와 전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뜻있는 분들의 운동에 의해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애국조회를 비롯한 식민지 잔재는 전혀 청산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절망스러웠다.

천황을 상징하는 히노마루에 경례를 하고 황국신민으로서 충성 맹세를 한 뒤 기미가요를 부르던 아이들은 교사가 되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해방 조국의 아이들에게 저희들이 배웠던 것을 그대로 강요했다. 독재자를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일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우리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에 저항감을 덜 갖는 이유는 저항적 민족주의 때문이 아니다. 보편화된 극일정서는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를 은폐하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단지 우리의 주인이 일제에서 미제로 바뀌었을 뿐, 기존의 체제는 굳건하다. 식민지 교육은 여전한 것이어서 아이들은 국가교육이라는 새 이름 아래 식민화되고 있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 자신을 주인으로 키우지 않는 것이다. 근대가 꿈꾸었던 시민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탈근대를 모색하는 현재에도 요원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국가교육을 통해 주인의식을 국가에게 빼앗기고, 그 잘난 국가는 다시 미국에게 충성 맹세를 한다.

이라크 파병과 미군기지 평택이전과 한미FTA는 그러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들 역시 자발적으로 영어를 미친 듯이(!) 배우고, 미국으로 유학가지 못해 안달이다. 잘못된 교육은 이렇듯 인민 전체를 병들게 한다.

일본에서 부활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이슈화되기 전까지 우리의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애국가는 너무나 당연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이단이자 비(非)국민으로 치부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대한민국교'의 신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나 불교 같은 종교는 그에 비하면 한 끗발 아래인 것으로 하느님과 부처님의 뜻에 따라 총 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쓰레기 치우듯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개인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해받지 못할 수밖에.

이제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미력하나마 저항했다. 국기에 대해 경례하지 않았고, 맹세하지도 않기 시작했다. 애국가도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애국조회 시간에 아이들을 교실에 붙잡아 두기도 했다. 교무회의 시간에 교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설문지를 전 교직원에게 돌려 애국조회를 하지 말자고 선동도 했다. 아이들에게 토론도 시켜보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동교 교직원들은 뜻에는 공감했으나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나는 지쳐갔다. 현실을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아이들조차 애국조회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나는 내 뜻을 강요할 수 없었다. 전담교사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였다. 차라리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나에겐 그것이 패배감으로 남아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국민 여론과 상관 없이 폐지돼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도 마찬가지이다. 국기법이 제정되면 이제 양심에 따라 국기에 대해 경례나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거꾸로 가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교'를 믿지 않는데 왜 '그들'의 우상을 향해 경배하고 맹세해야 하는가?

우리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제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권위에 순종하여 안정과 쾌락을 얻으라고 교육받았다. 처벌과 훈육을 통해 각인된 노예의식은 우리의 얼굴을 빼앗아갔다. 교육은 이런 게 아니다. 참된 교육은 스스로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주인된 자만이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야 한다. 새 조국의 건설에 동참하는 이, 부디 용기내길 바란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덧붙이는 말

김훈태 님은 군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병역거부로 현재 논산구치지소에 1년 2개월째 수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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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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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제 말을 귀담아 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을 때만 국기에 대해 경례를 했고, 그나마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조회가 끝나면 아이들과 양심의 자유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아이들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니다'라는 답을 선택하더군요. 길이 멉니다. 지치지 말고 갑시다. 수고하세요.

  • 대추리

    훈태샘 면회한번 못가뵙고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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