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내년도 경기 활성화 및 경제 운용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먼저 내년 경제 성장률 2%를 달성하고, 물가는 3% 수준에서 억제하며, 경상 수지는 2백억달러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건설·부동산 활성화 대책과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치 계획도 마련했다.한편 실세 금리를 연 7.5% 이하로 유지하고 재정 적자를 국내 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통화와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진작하는 한편,구조 개혁을 내실화하겠다는 정부의 내년 경제 운용 방향은 적절하게 설정되었다.올해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축 프로그램 아래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IMF는 우리 나라의 경우 재정 적자를 용인했으므로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긴축적이 아니며, 고금리 정책은 환율과 경제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이러한 IMF도 내년 경제 운용에 있어서는 통화와 재정의 확대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얼마나 취약했었는지 절감하게 되었다.더 귀중한 경험은 구조 개혁에는 실업의 고통이 수반되며 상당한 부실 처리 재원이 마련돼야 구조 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따라서 내년 경제 운용의 방향을 구조 개혁과 경기 회복의 동시 추진으로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 진작과 구조 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사전에 용의 주도한 계획을 마련하고 정부의 힘 대신 시장의 힘으로 토끼들을 몰아가도록 해야 한다.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무리수를 두게 되면 다 잡은 토끼도 놓칠 염려가 있다.
올해 구조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면 내년에는 경기 회복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감하게 될 것 같다.이미 우리 경제는 바닥에 접근해 있으므로 통화와 재정을 확대하면 내년중 금방 플러스 성장으로 반전할 것으로 보이지만 너무나 많은 장애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일본 경기 회복의 불확실성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경기의 바닥권 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지난 10월 오부치 게이조 내각 출범 이후 일본은 재정 확대와 엔화 강세에 의한 경기 회복을 도모했다.그 덕택으로 우리 나라는 신3저 호재에 의한 주가 상승을 경험하게 되었다.그러나 만약 일본 경기가 내년에도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엔화는 곧 미화 1달러당 1백50엔 수준을 회복, 일파만파로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IMF 자신이 급속한 경기 회복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IMF가 그들이 제공한 구제 금융을 상환받으려면 내년에도 경상 수지 흑자를 2백억달러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내수를 확대하면 경상 수지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내수를 점진적으로 증대시키려 할 것이다.즉 내년중 대내외 여건의 개선으로 대규모 외자 유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수 확대 정책은 상당한 견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이 각종 금융 투기 때문에 실물 투자 확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국내외 투자가들은 경기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과감하게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여 금융 활황 장세를 만들었다가 정부가 경기를 진작시키려 할 때 이를 매도함으로써 실물 경기 회복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즉 정부의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진작 노력이 해외 투기 자본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특히 우리 나라는 내년 4월 이후 신외환법에 의해 외환 거래를 대폭 자유화할 계획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회복 대책과의 상충이 불가피하다.
넷째,정부가 추진중인 각종 구조 조정 정책의 단기적 경기 둔화 효과 때문에 경기 회복이 더디어질 수 있다.최근 정부는 대기업 빅딜과 재벌 구조 조정에 착수했으나 빅딜의 부작용과 실업자 양산으로 기업 구조 조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또한 건설·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채택된 1가구 1주택 1년 보유시 양도세 면제 대책도 양도세를 면제받으려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팔아야 하므로 부동산 경기 회복에는 미흡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감안할 때 내년의 경제 운용은 플러스 성장보다는 경기 회복에 목표를 두고 성장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박원암·홍익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