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어음 연장 등 잇단 특혜… 수조원대 출자전환 문어발 확장 우려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가 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LG그룹은 생명보험업 신규진출 계획을 밝혔다. 이미 재경원에 허가서류를 제출했고,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내년 상반기에는 허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풍토에 대한 재벌의 집착이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을 내년에 허용할 방침을 세웠다.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은 상호채무보증이 완전 해소돼 선단식 경영의 고리가 끊어지는 2000년부터 허용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앞당긴다는 것이다. 간담회 성과에 취한 나머지 구조조정 이행여부를 지켜보지도 않고 ‘보상’부터 해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감자없는 워크아웃 경영권 지켜주는 셈
뿐만이 아니다.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5대 재벌 기업어음(CP) 초과분 해소기한을 연장해 주기로 한 것도 정부가 제공하는 ‘격려금’의 하나다. 내년 1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종합상사 기업어음만 연장대상이지만, 그 혜택은 결코 작지 않다. 대우의 경우 2조5천억원에 이르고, 삼성과 현대도 5천억∼1조원을 헤아린다. 명목은 수출지원이다. 산업자원부도 대기업의 본-지사간 무신용장방식(DA)의 수출에 대한 수출보험 지원을 내년 6월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 진정한 뜻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이 재계와 금융계의 시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가 전자를 포기하고 삼성자동차를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을 치하하려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문제는 구조조정을 위한 보약이 도리어 문어발 확장을 도와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수출을 열심히 하라고 기업어음 상환을 연기해 줬더니, LG는 엉뚱하게 생명보험 사업을 벌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5대 재벌의 계열사를 1∼2개씩 골라 워크아웃하기로 한 것도 ‘구조조정 특혜’로 비판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그룹의 현대강관, 삼성그룹의 삼성중공업, 대우의 오리온전기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사업성은 좋지만 부채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강관은 부채비율이 813%에 이르고, 삼성중공업은 683%를 헤아린다. 그렇지만 이들 기업은 모두 흑자를 내왔다. 지금까지 방만한 경영을 해왔으나, 유상증자나 자산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2천억∼5천억원의 대출금 출자전환 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필요에 따라서는 부채탕감, 채무상환유예, 이자감면 등의 부채조정도 실시된다. 그럼으로써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춰 우량기업으로 재탄생시키고 외자유치를 촉진하겠다는 것이 금융감독위원회의 계획이다. 출자전환 이전에 해야 할 감자 절차도 생략될 전망이다. 따라서 경영권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장된다. 요컨대 5대 재벌에 관한 한 당근과 채찍이라는 워크아웃의 2가지 측면 가운데 당근만 주는 셈이다. 그리고 금감위는 5대 재벌의 경우 워크아웃이 아니라 ‘출자전환’으로 불러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 출자전환 금액 수조원대
출자전환과 부채조정은 워크아웃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된다. 현대그룹이 한화에너지를 인수하는 데도 1400억원이 출자전환되고 1조2200억원의 부채가 5년거치 5년상환 조건으로 조정된다. 앞으로 철도차량 석유화학 등 다른 업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비슷한 혜택이 주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질 출자전환 금액만도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것으로 금융계는 내다보고 있다.
5대 재벌에 대한 이런 특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6대 이하의 부실재벌에 잘못된 희망을 줄 수도 있다. 올 하반기 본격화한 6대 이하 재벌의 워크아웃 과정에서는 출자전환 이전에 감자부터 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돼 왔다. 그런데 5대 재벌에 대해서는 감자도 없이 출자전환만 하기로 했다.6대 이하 재벌들이 자신들에 대한 ‘감자 후 출자전환’ 방침에 반발하고 나설 소지를 열어놓은 셈이다. 과연 정부는 이런 반발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차기태 기자
ktcha@ma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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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8년 12월 24일 제238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