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문화로부터의 탈피를 위하여

[미끄럼틀:한장의정치](12)예비군 병영문화를 유지시키는 조직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이 오픈했다. 문화연대는 '미끄럼틀'에 대해 "급진적 행복을 찾아 상상력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미끄럼틀' 중 '한장의 정치'를 기획 연재한다. '한장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급진적 정책을 상상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정책칼럼"으로 "만화가, 미술작가, 활동가, 교사, 평론가,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과 함께해온 이들이 상상하는 정책칼럼이 게재될 예정"이다.[편집자주]

얼마 전 상당히 추운 날씨 속에 나에게 부여되었던 예비군훈련 시간을 모두 소화해냈다. 혹자는 남자가 예비군을 마치면 완전히 아저씨가 된다고 하면서 예비군인 것이 낫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나 내가 봐온 예비군들은 예비군이 상당히 소모적인 조직이며, 병영문화를 사회에 유지시키는 조직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 하고 있었다.

예비군의 역사

예비군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설치법(아래 향군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지만 예비군이 소집훈련을 받고 무장하게 된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지시로 1968년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되면서 부터다. 이 해는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한 이른바 '1.21사태'와 그 이틀 뒤 발생한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던 때였다. 유신이라는 영구 집권을 도모하던 쿠데타 정권이 '북괴'라는 외부의 위협을 빌미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군대'로 편제한 것이 예비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현행 예비군 제도

예비군 복무 기간은 현재 전역 후 8년 동안 복무하는 '복무연한제'가 실시되고 있다. 전역 이후 1년차부터 4년차까지는 동원지정자의 경우 연간 28시간(2박3일 입소), 동원미지정자의 경우 연간 36시간(출퇴근 방식)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7년차와 8년차는 별도의 훈련이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약 200시간의 훈련을 강제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역한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예비군의 숫자는 현역보다 더 많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행한 <2006 국방백서>에 따르면 2006년말 현재 예비군의 규모는 304만 명에 달하는데 현역의 규모가 60만 명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현역의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대로 편성되어 연간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645만 명의 민방위 대원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1/5을 넘는 약 1000만 명이 전시에 대비해 군사훈련을 받거나 부대에 편제되어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병영국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전과자의 양산

그런데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비군훈련으로 인해 처벌받고 있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할 경우 병역법과 향군법에 따라 동원훈련은 6개월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일반훈련은 1년 이하의 장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게다가 전역 후 예비군 복무 기간인 8년간 수십 차례 벌금형에 처해져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납부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에 거듭 출석하는 사이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변호사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비군 훈련은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양산되는 전과자에는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단순히 훈련에 불참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고발당한 사람은 2000년 2만4955명에서 2003년 4만9247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거의 매년 3만명 이상의 사람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비군 훈련에 불응할 경우 한 번 처벌받은 후에도 계속 훈련 소집되어 이를 또 거부하면 반복 처벌받는 점은 큰 문제다. 즉 1년에 2~3회 훈련에 불응할 때마다 기소되므로 전체 8년에 걸쳐 10~20차례 처벌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벌금 액수도 늘어나며 초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도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유엔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3일 한국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병역 거부자들이 재소집될 수 있고 새로운 처벌을 받게 되는 횟수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제한이 전혀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위원회는 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고용에서 배제되며 전과자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병영문화의 강화

그러나 예비군제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예비군제도에 의해 유지, 강화되는 병영문화와 남북대결의 분위기, 군사적 긴장일 것이다. 예비군 훈련을 가게 되면 사회인으로 생활하던 것과 달리 군사조직에 의해 자신이 통제됨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북한을 적으로만 규정한 안보교육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한다.

예비군의 폐지

예비군은 창설 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도 곧바로 나왔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무장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놨다. 국방차관을 지냈던 박병배 의원은 "현 군경의 해이한 기강과 부패가 1.21사태의 교훈을 낳은 것"이라며 "전면전이 아닌 공비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향토예비군 전면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고, 같은 해 김영삼 등도 향군법 폐지안을 내놨다. 국방부도 위와 같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현행 예비군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다. 조직 규모를 줄이는 대신 정예화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예비군을 폐지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병역문화를 제거하고, 변화한 한반도의 정세에 맞게 군비축소라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미덕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보여진다. 또한 이를 통해 강제로 예비군으로 동원되는 많은 전역자들의 개인적인 인권과 생계 또한 보장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실린 인권운동사랑방의 강성준 님의 글을 전적으로 의지, 의존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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