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

[박수정의 사람이야기](10) - 조세희 작가에게 듣다

딱 30년이다. 지난해 가을, 조세희 작가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출간된 지 30년이 되었다. 책 속 작가의 말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에도 써있듯 작가는 철거반과 싸우고 돌아와 그 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철거되는 집에 내가 방문한 날이야. 그 사람이 딴 데 옮겨 가니까 식사래도 같이 하자고 소고기 사갖고 가서 국 끓여 먹는데 쿵하고 쳐. 제까짓 것들이 밥 먹을 때까지 기다리겠지 했더니, 밥 못 먹었잖아. 쳐들어와서.”

30년 전, 철거반이 쇠몽둥이로 “대문과 시멘트담을 쳐부수며” 들어와 밥상에 마주한 그이들 가슴에 상처와 충격을 새겼다. 30년이 지난 2009년 1월 20일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작가 조세희는 30년 전 눈앞에서 보았던 철거현장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을 만난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 한 평범한 건물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재개발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이다. 강제철거 전에 임시로 일하고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해달라고 대화를 요구하며 철거예정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세웠던 사람들에게 하루 만에 들려온 대답은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경찰특공대를 앞세운 진압이었다. 사람들이 죽었다. 아침을 먹다가, 출근을 하다가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작가는 “숨이 콱 막혔다”. 오랫동안 아파온 조세희 작가는 충격에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달려가고 싶은 곳은 병원이 아니라 죽어간 이들이 있는 현장이었을 거다. 그동안 노동자 농민이 모이고 투쟁하는 현장에, 방패를 앞세우고 곤봉을 든 경찰이 마주선 현장 그 한복판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던 그날들처럼. 마음은 벌써 현장에 가 있지만 아픈 몸은 마음처럼 움직일 수 없어서 작가는 슬펐다. 혼자, 앓았다. 앓는 작가에게 전화가 쏟아졌다. 난쏘공의 독자들도 그랬겠지만 기자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이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 난쏘공을 떠올렸을 게다.

조세희 작가는 “난쏘공을 쓸 때 미래에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이런 슬픔, 이런 불공평, 이런 거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경제.정책을 하면서는 미래가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는 것은 우리가 벼랑 끝을 향해서 가는 거다”라고 생각해 난쏘공이라는 ‘주의 팻말, 경계 팻말’을 세웠다. 하지만 30년을 지나오는 동안 주의 팻말, 경계 팻말은 무시당했다. 정치가.경제가들에겐 처음부터 저 주의팻말을 읽어낼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작가가 쓴 주의팻말에는 약자, 가난한 자, 소수자, 소외당하고 핍박받는 모든 이가 적혀 있다.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며 자본가들과 정치가들, 권력자들이 등골 빼먹은 존재들.

용산, 죽음의 현장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죽임과 죽음은 우리 옆에 늘 도사리고 있다. 오늘, 한국의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이 된 시민들이 국가폭력으로 죽었지만 어제, 여의도 한복판에서 국가폭력에 농민들이 죽었다.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죽음과 죽임은 다른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나 죽음의 거리를 헤맨다. 한국사회는 죽어가는 이들한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자유.평등.평화.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며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려다 더러는 다치고, 갇히고, 죽었다. 하지만 지금 저 가치들은 자본가가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 문구로 흔하게 쓰일 뿐, 차별과 구속.억압은 더 굳고 단단해졌다.

“우리를 다스리는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이상”이 있었다면 애당초 개발로 인해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집을 잃고 일터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쫓겨나고 밀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돈을 위한 집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이다. 그건 꿈같은 얘기라 쳐도, “우리를 다스리는 인간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이상”이 있다면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향해 진압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 설득을 했을 거다. 대화와 협상, 설득을 놓쳐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 참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다스리는 인간들”은 그날 국가폭력에 죽어간 이들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죽은 이들을 놓고 온갖 말이 난무한다. 저항하는 이들에게 한번도 빠지지 않고 붙여진 불법과격시위, 폭력단체, 폭도, 도심게릴라전, 테러단체... 낯설지 않다. 세계 그 어디든 학살이 벌어진 곳, 국가폭력에 죽어간 이들한테 붙여지던 꼬리표들. 한국에서는 상가 세입자였던 상인들이 테러리스트, 폭도로 몰린다. 여기저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쫓겨나는 운명에 처했던 이들이 테러집단의 조직원들로 조작된다. 그 죽음을 가슴아파하는 당신도 혹시 테러리스트로 몰리지는 않을지. 테러리스트, 폭도라고 이름 불려진 이에게 밥을 준 자, 잠자리를 내 준 자, 옷을 건네준 자, 소식을 전해준 자 그 모든 자가 테러리스트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일들이 숱하니, 비록 죽은 자들이어도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린 당신도 그렇게 내몰릴지도. 유가족을 위로하고 퇴근 길 무작정 촛불을 들고 함께 하겠다고 나선 당신도 오늘 한국에서는 폭도가 된다. 그동안 ‘촛불’을 향해 일갈하고 싶었던 입들이, 할 수만 있다면 ‘촛불’도 불법무기로 몰아세우고 싶었던 입들이 얼씨구나, ‘망루, 새총, 골프공, 시너, 화염병, 염산병’을 증거물로 내세우며 폭도를 만들어낸다. 말이 아니라 토악질을 한다.

이런 때, 조세희 작가한테서 ‘말’을 듣는다. 지난 1월 21일, 여러 신문.방송 기자들이 작가를 찾아 모였다. 그날 저녁 작가는 한 시인과 함께 용산 현장으로 갔다. 많은 신문과 방송에서 그날 이야기를 전했다. 늦었지만 그 자리, 한구석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해 구술 그대로 전한다. 곱씹고 곱씹으면, 말 너머에 있는 그 무엇과 만나리라.


  지난 1월 21일 용산 철거참사 현장에 선 조세희 작가. 사진/참세상 자료사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벼랑 끝 주의 팻말

30년 한 세대가 지나간 일이거든. 어저께 봐. 반복이지. 크게 보면 똑같은 일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법은 더 나빠졌고 더 잔인해졌고 더 미개해졌고 더 야만적인 상태로 갔지. 난쏘공 쓸 때 70년대에는 누가 그렇게 죽을 걸 뻔히 알면서, 그 희생자들 죽이는 일은 이렇게 많지 않았다고. 이것은 아주 그런 면에서 더 충격적이야. 30년이면, 20세기의 30년에도 후진국에서 선진국 가는 역사를 기록한 나라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제 21세기 들어왔다는데 우리가 하는 행태들은 말할 수 없이 그렇게 끔찍해. 그러니까 난 그게 답답해 죽겠는 거야. 그것이 우리가 젊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신자유주의니, 글로벌 세계 경제 얘기할 때 그런 것들이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 당시에는 철거용역이 달려가서 망치를 이렇게 들었다가 때리려고 그러다가 눈과 마주치면 후퇴래도 했어. 자기가 때려야 할 사람이 인간이란 걸 감지하는 거지. 이건 뭐... 난쏘공 쓸 때 거기에 철거 가정집에 내가 방문한 날이야. 그 사람이 딴 데 옮겨 가니까, 내가 작가의 말에 잠깐 썼는데, 식사래도 같이 하자고 소고기 사갖고 가서 국 끓여 먹는데 쿵하고 쳐. 제까짓 것들이 밥 먹을 때까지 기다리겠지 했더니, 밥 못 먹었잖아. 쳐들어와서. 근데 그때는 망치, 뭐 좀 큰 해머 요런 것들이 장비야.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지금은 치면 그냥 단숨에 다 나갈 것들이지. 그때도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데 30년 후면은 뭐가 발전해져 있어야 되는데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잖아. ... 우리 전체가 다 불행한 일이에요.

‘30년 전에 난쏘공이라는 걸 썼다’ 그것으로 시작을 해야 해요. 난쏘공은 그 당시에 철거민 문제, 개인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집이 없어서 당하는 설움, 그리고 경제 발전은 이제 전기 산업사회 시작을 해서 산업사회의 끝을 내는데 70년대에 나왔어요. ... 난 난쏘공을 쓸 때 미래에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이런 슬픔, 이런 불공평, 이런 거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경제.정책을 하면서는 미래가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는 것은 우리가 벼랑 끝을 향해서 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난쏘공은 벼랑 끝에 세운 주의 팻말이라고 내가 생각을 했어요.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

30년 동안 하여간 발전했다고 하고선 오늘에 다다랐는데, 오늘은 뭐냐면, 20세기의 어느 날이 아니라 21세기의 어느 날이라고.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라고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 그거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한국도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 있잖아요. 그 상태를 우리는 뭐로다 극복할지 몰라. 내가 보기에 정치가들.경제가들이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야. 뭐냐 하면 가난뱅이에게 고통을 넘겨줘버리는 거야. 한국의 가난뱅이는 한국의 경제를 위해서 희생을 치러야 돼. 그것이 나는 싫었던 거예요. 왜 가난뱅이만 두들겨 맞고, 가난뱅이만 희생을 치루고, 잘 사는 것들, 권력층 그 주위의 것들은 왜 이 세상의 최고의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행복을 누리고 좋은 나날을 보내야 돼? 그래서 내가 난쏘공 30주년이 된 지난해에 한 가지 말을 했어. 뭐냐면 “지금,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이게 극단적인 말이었던지 어디 강연장 가서 그 말을 했더니 자꾸 말을 하더라고. 난 지금도 그 말을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누군가의 눈물과 한숨, 괴로움으로 편안한 우리

지금 21세기에 이 자리에 도착해서 이 국가에 사는 구성원 전체는 불행한 것이 당연한 거야. 한국이 존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이 지금 고생하고 있어요? 비정규직 수치를 내가 잘 몰라. 850만? 농민이 300만이지. 그럼 벌써 1100만 얼마 아냐? 한국 인구에서 1100만 얼마가 직장이 없고 먹을 게 없다고 그러면 얼마나 고생을 하는 거야. 그런데 이때까지 한국은 IMF 이후 지금까지 그냥 버텨왔어. 근데 착취의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내가 난쏘공 쓸 때 근로기준법만 잘 지키면 모든 게 잘 된다고 그 당시 초기의 노동자들은 믿었어. 근로기준법? 존재하나 마나야. 지금 어떻게 괴롭히느냐 하면 비정규직이라는 거, 상상도 못했지. 비정규직은 간단히 말하면 200만 원 받던 사람에게 100만 원 받으라는 거야. 그리고 조금 있다 재계약 하고, ‘너, 돈 없이 쫓겨나가라’ 그러는 거지. 그러니까 한국의 1100만 얼마의 숫자가 지금 고통을 받고 있어. 엊저녁에도 내가 우리 집에서 그냥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집에서 울면서 한숨소리, 그냥 한탄을 하면서 괴로워한 덕에 나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거야. 그 사람들이 없이 잘 살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 게 난쏘공을 쓴 조세희고 우리 동년배 작가들이 해 온 일이야. ... 누가 뭐라 하든 그래도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릴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 나라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 잠깐만 얘기해. 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특별히 공부하고 관찰한 건 없어. 그런데 어제 <한겨레> 보니까 어느 기자가 오바마가 읽은 책 이야기를 쓴 것이 있어. 오바마는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준, 가장 이성적인, 우리가 도달해야 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작가.저술가.정치가.경제가들이 쓴 중요한 책을 거의 다 읽었어. 그 사람은 실물적인 것도 공부를 했고, 아주 인문학적인 것, 이런 것도 다 공부를 한 거야. 그것이 누적 되어서 오바마가 태어난 거지. 우리를 다스리는 인간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자고. 그 무력을 행사하고 동족을 죽여 놓고도 자기들이 법대로 잘했다고 하는 친구들의 독서량은 얼말까. 그 머릿속에는 뭣이 들어가 있을까. 이런 거 생각하면 끔찍하지.

5.18이후 내가 늘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은 우리 동족에게는 왜 이렇게 잔인함이 있어서 보호받아야 할 동족을 괴롭히고 학살하고 이러나 하는 거야. 그래서 생각하다 보니까 그것이 우리가 처음이 물론 아니야. 조선시대부터 한국 역사에는 끔찍한 일이 존재해. 책 안에는 민란.민요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쓰여 있어. 내가 농민집회 때마다 나가서 느끼는 게 그거라고. 조선시대 숱한 민란.민요 중에 하나가 또 일어나는구나. 그래서 전국에서 몰려오는데 여의도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이 든 거야.

2005년 11월 15일에 나도 여의도에 있었어요. 그날 농민 하나가 1001.1002.1003 중대, 그 진압작전에 의해서 희생을 당했고 나도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서 카메라 하나 망가지고 문화마당 쪽에서 그 차디찬 물에 흥건히 젖어갖고 겨우 살았구나 그러고 숨 돌리고 있을 시간에 문화마당까지 경찰들이 진입을 해 왔어. 그래서 문화마당에서 끔찍한 진압작전을 진행하는 와중에 전용철 농민이 거기서 희생을 당한 거야. 그때 나는 문화마당 잔디밭에서 옷을 짜면서 카메라 어떤 게 죽었나 체크하고 그러고 있었지. 그러지 않고 현장에 내가 전용철 농민을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있었으면 나는 그때 죽었어. 그러면 무슨 말이 가능해? 브레히트 시인의 말에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그런 시가 있어요. 내가 늘 그 생각을 해요.

이성의 힘으로

나는 사진을 모아 놓은 게 그 전 거서부터 2005년 11월 15일까지 사진이 되어 있어. 불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을 한 이후 촛불 집회 이때는 할 수 없이 친구들 따라서 차로 얹혀서 갔지만 사진을 찍은 게 없어. 갑자기 하루에 몇 번씩 통증이 와. 그러면 일을 못하지. 그걸 왜 기록했냐면, 난쏘공의 일도 계속이지만 내 믿음엔 한 가지가 있는 거야. 이 방법,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히면서는 선진국이 된 예가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어. ... 정치가들에 의하면 대한민국도 20세기 후반에 선진국이 됐다고 그러는 거지. 그런데 우리 선진국은, 아니야. 그러니까 우린 이른바 잘사는 나라, 제 1세계의 나라와 동시대 국가가 아니야. 한국이 김영삼 때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는 곧 세계 7대 강국이 된다고, G7(선진 7개국)에 가입한다고 그랬어. 게다가 허풍을 더 떨어서 뭐라고 그랬느냐면 우리는 곧 세계 제2대 국가 ... 최고의 국가가 된다고 했어. 지금 최고의 국가가 되어 있나? 안 되어 있지. ... 민간대통령이 네 명 째가 되어 있어. 그런데 그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꿈이나 이상, 이런 것들이 들어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내 생각이야.

불란서 어느 시인이 쓴 시의 제목이 ‘가난뱅이를 두들겨라’라는 게 있어. 한국은 지금 가난뱅이를 두들겨서 겨우 유지하는 거야. 지금 이런 절망적인 배경이 어제 일이 더 큰 충격을 준 거야. ... 그 숫자가, 여섯 명이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에요. 한 명도, 국가에 어떤 재난이 들어서 나같이 무력한 자가 경찰총수가 되었다면 나는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다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설득을 시키든가 시간을 갖고 일을 해서 다 살려놓고 다 함께 가. 이런 말 화가 나서 하는 말인데, 이명박이 자기 형제나 친구나 누가 어저께 죽은 여섯 명에 끼어있으면 잠자리가 편했을까. 이명박은 엊저녁에 밤새웠을까. 이명박과 가칭 국가의 큰 대사를 맡은 사람들은 어제 일 갖고 고민을 했을까. 나의 동시대 문인.작가들은 어제 그 일 때문에 잠이 제대로 왔을까. 별 생각이 다 나요. 우리 식구들은 어제 밥을 못 먹겠다고 그랬어. 나도 그랬어요. ...

그래서 인제 그거야. 여섯 명이 죽었어. 내 난장이에 보면 폭력은 경찰의 곤봉이나 군대의 총만이 폭력이 아니라고 그랬어. 우리 시대의 어느 아이 하나가 배가 고파서 밤에 울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 그치게 하지 않고 그걸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고.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거야. 거기에 가서 철거민을 우리가 두드려 패고 화염 휩싸인 데서, 그 뜨거움 속에서 죽게 했다는 게 아니야. 우린 그런 죄는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죄를 미리 막지 못한 죄는 우리가 지었지. 그래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야. 나도 똑같은 죄인이야. 사실은 이 말을 하러 나온 거야. 그런데 다행히 내 이성 안에는 ‘죄를 되풀이해 짓지 말자’ 하는 그런 이성의 어떤 소리가 있어. 그 말을 하려고 여러분과 모인 거지. 나는 이명박 같은 사람, 그 밑의 사람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어. 어떤 공격을 한다 그러면 나의 적이어야 하는데 그는 나의 적이 아니야.

적이라는 말은, 먼저 구분을 하자고. 우리 공동체 안에 우리의 적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나는 적을 만들지도 않고 싶어. 그런데도 그것이 선악으로 나눠지고, 적이냐 아니냐로 나눠져. 이것이 나는 불행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20세기에 혁명가가 하나 있어. ... 20세기 말에 나타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중에 하나가 마르코스야. 그런데 그 마르코스는, 보통 다른 남미의 혁명가들은 총을 메었거든. 칼을 들고. 그런데 이 사람은 펜을 메었어. 그 사람은 컴퓨터를 갖고 혁명을 하려고 그랬던 사람이야. 그 사람이 한 말 중에 “여러분이 이성과 힘,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여러분 자신은 이성을 갖고 적에게는 힘을 주어버려라” 그랬어요. 그러면 “그 적은 그 힘으로다가 전투에서는 이길 것이다.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이성을 가진 여러분이다” 즉 우리라고 치자고.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서 힘을 만들 수 있지만 적은 그 힘으로 이성을 만들 수 없어. 그러니까 폭력적인 싸움에서는 이기더라도 이성적인 전투, 큰 전쟁에서는 우리가 이긴다는 거야. 그때의 적과 우리라는 그 개념으로서 내가 얘기를 하는 거야. 내가 어려운 일을 계속 하고 있어. 나는 그것이 이명박 같은 세상이 와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거야. 지금 같은 세상이 오는 걸 난 싫어했어. 근데 왔지. 왜 적이고 뭐고 따질 수 없냐면, 이 지금 정권을 뽑아준 게 바로 우리가 그렇게 돌봐주려 했던 우리 이웃들이야. 이 사람들이 가서 다 이명박을 찍어준 거야. 소수는 알잖아. 이명박이 할 일을. ...

범죄.학살행위를 막지 못한 우리의 죄

아까서부터 이야기한 것 중에서, 죄에 대해서 내가 얘기를 했었거든요. 여러분이나 나나 똑같이, 우리 동시대 우리 구성원, 우리 이웃, 우리 형제들, 그 추운 날, 옥상건물에 가 있을 때 우리가 거기에다가 물 뿌리고 그 뜨거움 속에서 죽게 하지는 않았어요. 조세희는 그 죽이라고 물 뿌리라고 그러지도 않았고. 여러분들의 형제들, 여러분 자신도 그랬고. 그러면 우리에게는 죄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도 죄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우리가 가서 직접 행동을 하고 직접 살상을 하지는 않았죠. 거기에서는 무죄합니다. 그렇지만 이 죄를, 그 범죄 행위.학살행위를 막지 못한 것이 우리의 죄라는 말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드리고 싶은 말이 이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우리가 그 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우리 책임을 다 하자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는데, 어디 강연장에 가서 내가 했던 말을 또 해야 되겠어요. ‘한국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은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그 말을 했더니 충격으로 받아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느냐. 그런데 그 말도 난 취소할 생각이 없어요. 난쏘공을 쓴 30년 후에 내가 한 말이 그 말입니다.

난쏘공은 경계 팻말로, 이 지역을 넘어가면 벼랑 끝이니까 위험하다 하고 세운 경계 표지로 세운 게 난쏘공인데 우리가 그것을, 그 시대를 그냥 무시하고 와서 오늘에 도착한 거예요. ... 물질적으로 경제권 11위라고 뭐라고 떠들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우는 사람 숫자를 따져보자고 그래요. 누가 뭐라 그래도. 어저께 한나라당 대표들하고 여럿이들 얘기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가서 기자분들 물어보세요. 여섯 분, 사람들 돌아가면서 굉장히 뜨거웠을까요? (작가의 목소리가 더 떨린다) 우리는 뭔데, 우리 민족은, 이 지상에 (목소리가 흔들린다) 1200~1300개의 인종이 살고 1200~1300개의 언어를 씁니다. 그리고 200여 개 국가가 있어요. 그 중에서 이렇게 뻔한, 피해갈 수 있는 일을 저지르는 국가가 어디 또 있느냐고. 우리가 왜 우쭐대느냐고. 이 시간에 스무 살짜리들이 울고 있다는 거 아느냐고, 물어보세요. 스무 살짜리들이 왜 울어요? 자기 엄마 아버지가 열심히 시킨 대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우리 세대가 뭘 했나? 자식들에게 직장 하나 제대로 만들어 줍니까? 자격 있어요? 여러분 중에서 재계약하기 위해서 또 눈치 보아. 그런 불행에 대해서.

군대나 경찰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허드슨 강에서 150여 명이 하나도 안 죽고 그냥 나왔어요.(1월 15일, 미국 허드슨 강 여객기 불시착 사고) 이것이 미국에서 일인데 우리 경찰은 소방대의 안전장비 하나 없이 그냥 밀어 붙인 거예요. 어저께 들어갔던 김 누구의 경찰 부대는 21세기의 경찰이 아니에요. 조선시대, 인구가 5~600만 명에 불과했던 조선시대의 관군과 같습니다. 국가에, 조선에 재난이 들어서 농민들이 기근.흉년이 들어서 먹고살 게 없을 때 성안에 있는 곡식을 먹기 위해서 쳐들어가는 거예요. 그 성을 지키는 것이 관군이에요. 이 관군은 무슨 전력이 있느냐면, 일본군.중국군, 원나라 군대부터 그냥 외국군이 들어왔을 때 백전백패 했어요. 동족을 상대했을 때는 백전백승을 해요. 어저께 들어갔던 경찰은 조선시대 어느 날 삼지창으로 동족을 찔렀던 그 조선시대의 그 관군과 똑같아요. 자기들한테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냥 명령대로 수행을 했다는 5.18때 그 어리석은, 제3세계 동족 학살 미개 군인과 똑같은 거죠. 명령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어저께 경찰은 80년 5월에 한국의 그 특전사 병사들처럼 자기 임무를 유기했어요. 군대나 경찰은 우리 공동체의 이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첫째가 그거예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들어있지 않지만 동족을,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게 그들의 임무예요. 임무 유기했지. 죽였어요. 이것 때문에 우리가 슬프고, 우리가 아파하고, 우리가 밥 먹기 힘들어하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국에 지식인들이 물론 있고, 한국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어떨 때 보면 하나도 또 안 보일 때가 있어요. ...

어제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돼요. 어제의 것은 지하에 묻어놓은 폭발물이 폭발한 게 아냐. 그냥 예고한 거예요. 우리 안에는 어떤 힘이 있어요. 어느 공동체나 어느 단체에나 몇 사람이 모이면 힘은 배가 돼요. 우리에게도 어떤 물리적인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알아야 된다는 거지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자기 이익 때문에 이익에 맞춰 자신의 지식을 쓰기 때문에 누가 좋은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아요. 아까 내가 이성 이야기 할 때 그 이성을 현대에 일하는 사람들이 갖기를 바라요. 그리고 우리 국민 개개인이 그걸 알아야죠. 이명박을 다 열심히 찍을 때, 아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또 힘들구나,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말년에 와 있구나, 나한텐 석양이 왔어, 해가 지는 걸 보는구나. 조금 있으면 내가 일흔 살이 돼요. 내가 산 30년 갖고는 안 되는구나. 난쏘공을 쓰고 30년이 됐으니까. 내 70평생을 통해서도 좋은 걸 못 보고, 그냥 숙제는 숙제대로 남기고, 여러분들 고생하는 걸 놔두고, 그거 보다가 가는구나, 그리고 정치가들은 엉터리 정치를 하고 경제인들은 엉터리 경제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들은 죽어나면서 두들겨 맞는구나. 그것이 내 생각이었고 내 한탄이었어요.

막자, 불행을 막자,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할 수 있는 말은, 막자, 불행을 막자, 아는 사람은 일하자, 적과 만나서도 토론할 거 있으면 하자. 정치가들처럼 토론도 하나 없이 대운하 막 하려고 그러는 거 될 수 있으면 막고, 토론하고, 그것이 정말 좋은 거라면 하자. 그 대신 이 조국을 사막화 시키지 말고 정말 풀 자라고 공기 좋은 조국을 위해서 노력하자. 이러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우리 민족은 지금 깜깜한 밀림 속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하늘도 안 보이고 빛도 안 들어오는 밀림이에요. 이 밀림에서 방향을 잘 잡아야 돼요. 그리고 고생을 더 하고 엉겅퀴나 이런 데에 찔려서 피 흘리면서 그래도 앞으로 가고, 어떤 지도자가 있으면 방향을 잘 잡고, 그 다음에 우리는 밝은 빛이 보이는 넓은 개활지를 발견할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는 고생해야지. 어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그러고 재고 그러면 그 사람 한 대 쥐어박아요. 그 사람은 우리 적입니다. 왜냐면 다수가 아주 어렵게 IMF 이후에 이 고난스러운 시기를 넘어야 하니까.

그리고 20대들, 희망을 갖고 희망의 끈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써 주세요. 냉소주의에 빠지면 절대 헤어나지 못해요. 우리 세대의 특징이 냉소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면 우리 공동의 일.공동의 숙제를 해낼 수가 없어요. 그리고 미래의 친구들이, 20.30대들 고생하게 되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선배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가장 긴급한 일은, 어떤 누가 모임을 주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고 싸우는 자리가 있고 촛불을 들어야 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그러면, 우리가 문맹은 아니니까 인터넷을 보든 어디를 가든 한 사람의 힘을 보태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왜냐하면 이 권력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해요. 그들에게 올바른 것을 우리가 전해야 됩니다.

인간의 생명, 인간의 고통을 다룰 때

돌아간 분들은 순간적으로 뭘 느꼈을까? 절망을 느꼈겠지. 아, 불이 터졌구나. 뜨거움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몇 초 사이, 근데 나는 몰라. 내가 숱한 싸움을 옆에서 지켜보고 카메라도 두 대 망가져 보고 여기 무릎도 한 11센티를 찢어져 보고, 종로에서 밀리면서 방패로 찍어와 스쳐갔어. 그래서 난 위험을 넘긴 줄 알았더니 잠을 못 자. 병원에 갔더니 가슴에 금이 간 거야. ... 그래서 내가 고통을 알아. 공포심을. 그런데 이 우리 모든 사람이 갖는 공포심을 모두 합해도 어저께 희생당한 여섯 사람의 공포심, 그 슬픔, ... 거기에는 비교를 할 수 없지. 우리가 잘 되고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김석기 경찰의 가족들이 자기 아버지가 한 일 때문에 다 고통스러워해야 해. 이명박도 잠자리가 불편해야 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도 불편해야 돼.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제대로 일이 안 되었을 때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현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우리의 스무 살짜리 자식들이야. 그들은 군대에 복무를 하기 위해서 왔는데 힘이 없어서, 길이 없어서, 빽이 없어서 거기에 가 있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어. 희망을 해서 가는 친구도 있겠지만 극소수야.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가서 했는데, 국민을 꽉 눌러야 되는 그런 일을 봤던 거지. 그래서 나는 경찰, 학생, 희생자들 다 우리 시대의 이 잘못된 방향에 의해서 이끌려가는 희생자들임에는 틀림없다 생각을 해. ...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모르면 절대 안 돼요. 5.18 때 광주에서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고 그랬는데 다들 잊어버렸잖아. 5.18 때 그것은 화석이 되어버렸어. 역사는 죽어버렸어. 그리고 광주에 가면 컨벤션 센터니 뭐 이상한 거 하고 그 정신은 그 희생자들 묻을 때 다 묻어버렸어. 그것이 제대로 살아있었다면, 우리가 인간의 생명, 인간의 고통을 다룰 때는 조심스럽게 갈 수가 있지. 이게 참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이 묵살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계기를, 이번 기회로 삼아서 새 출발을 했으면 쓰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

자고 일어나서 딱 티비를 딱 틀었더니 나오더라고. 그때 숨이 콱 막히더라고. 그래서 병원으로 달려갔지.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까 그 공포심이 오지. ... 그거 이렇게 딱 보니까, 아, 또 큰일 났구나. 우리한테 마지막 온... 아, 몰라. 난 이제 더 활동할 시간이 없어요. (사진) 찍을 힘도 없고 그래. 그래서 나가지도 못하고. 내가 죽어도 내가 찍은 사진은 나오게 되니까. 그러면 이 당시에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이 당시에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다, 그들은 다 군대가 아니지. 지금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다, 국무총리는 아무였고, 그때 경찰 총수는 누구였다, 뭐라고 얘기했는데 이 말이 옳은지 300년 후에 후손아 확인해라. 이런 식으로든 뭐든 내가 보존은 하지. 내 사진이 절대 좋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래도 그렇게 해서 남기자는 거지. 이렇게 내가 남기는 것이 이 다음에 무슨 역할을 할지는 몰라. 그래도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닌, 오해하는 언론의 자료보다는 내 게 낫겠지. 그리고 문인 중에 한 사람은 사진을 찍어서 그때 피 흘린 사람들의 얼굴, 그 절망적인 얼굴이 이거다 하는 걸 내가 남기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 일도 지금은 인젠 할 수가 없게 돼있어. 병이 와서.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 ... 혹시 전국에서, 여러 투쟁 현장에서 외로움 타는 분들이 있다고 그러면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 그렇게 기억해 주겠지 뭐. 그런 생각이 내 생각이고. 내가 보기에 지금 이 상태로 가면 한국에 비극이 또 일어나요. 그것을 우리는 막아야 되는 사람들이고.

학살의 문제, 죽음의 문제, 고통 받는 문제

한국에 지금 이런 것도 뉴타운이고 뭐고 대개 주택, 집 문제, 난쏘공이 집 문제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국이 부족한 건 집이 부족한 게 아니에요. 지혜가 부족한 거지. 우리가 지혜로운 민족이 못 되는 건가? 그렇지 않은데 지혜롭지 못하고 좀 성격이 못된 층들이 일을 많이 맡아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래 우리도 좀 지혜롭게 해서 모든 일을 풀었으면 싶은 게 내 생각이야. 근데 그 사람들은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경험하지만 가만히 놔둬서 제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국민이라는 것은, 이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라는 것은 뭡니까? 권력이 우리한테서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것은 우리를 지켜달라고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게 해야 되고 그렇지. 우리에게도 물론 잘못한 게 있어요. ... 경제적인 얘기로 하자면 우리가 우선 한국의 경제를 위해서 희생만 당하는 가난뱅이들을 그냥 놔두고 너희는 죽어나라 하는 거. 이건 굉장히 큰, 아주 못된 잔인함이 있는 거예요. 그건 늘 학살을, 늘 날마다 하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그런 생각은. 그걸 피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 이 여섯 명 돌아가신 이 희생자들이 그 불행 안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 모든 거에 대해서 우리 국민도 책임을 물론 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돼요. 쓰는 언어도 달라야 될 거로 나는 믿습니다. 보도하는 사람들, 뭐라고 하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요. 그것처럼 애매모호한 언어가 어디 있어요. 선배들은 그렇게 해야 된다고 여러분에게 가르칠 거예요.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언어가 필요할 거예요. 날더러 얘기하라고 하면 “저것은 학살이다. 학살을 멈춰라.” 그런 말은 내가 할 수 있어요. 어느 아이 하나가 엊저녁에 잠 못 들어서 나를 잠 못 자게 한 게 아니라, 그것은 학살의 문제예요. 죽음의 문제, 고통 받는 문제 때문에 그런 거지요.

남의 평화, 남의 자유, 남의 행복을 지켜주는 게 민주주의

난 숱하게 말했어요. 나는 4.19 세대예요.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유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60년대 피 흘리고, 같이 어깨 스크럼을 짰던 친구가 쓰러지고 그 친구가 흘린 피를 내 손에 묻혔던 세대예요. 우리의 그것이 원 시점이에요. 그때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라도 편했던 날이 없었어요. 한국에서는 ‘올바르게 생각을 하자, 늘 바르게 살자’ 하면 그렇게 힘이 들더라고요. 기자 숱하게 많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옛날에 내가 언론사나 티비 방송국 이렇게 하면, ‘아, 저것이 무덤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무덤치고는 거대하다, 왜냐면 그 거대 언론이 수천 명 젊은이를 갖다 놓고서 써야 할 걸 주고 제대로 쓰게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무덤이 되는 생각을 했어요. 숱하게 여러 차례, 기자들이 ‘아, 이제 반성하고 새로 하겠습니다’ 하는 시기가 오지. 기자만 반성하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 안에서 다 반성할 계기가 몇 번이나 주어졌고 기회가 있었어요. 그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는 거죠.

... 어려운 사람들은 지금도, 독재자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이지, 민주주의 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다면 남의 평화, 남의 자유, 남의 행복을 지켜줘야죠.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비정규직, 수많은 스무 살짜리들 대학 막 나와서 힘을 갖고서 일을 하려고... 아까 내가 물리적인 힘을 말했는데 개인이 힘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물리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 생긴 물리적인 힘은 다 소진하게 되어 있어요. 제대로 되면 일을 하면서 우리 안의 물리적인 힘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힘들지. 나는 그냥 우리 모두가 다 고민해야 될 시기이고 고통은 여전히 분담해야 될 시기이지, 행복을 누려야 될 시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 우리 희생자를 생각하고 얘기합시다. 죽는 게 제일 무서운 거예요. 제일 슬픈 일이고 절망적인 거지요. 난 그 다음에 무서운 게 일을 못하는 것. 그 일을 못 하기 때문에 지금 무서워하고 있고요. 근데 지금 옛날식으로 하면 군부독재 시대, 민간인 시대로 들어서고 다들 곧 우리가 낙원에 도착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바로 여러분 세대는 낙원의 첫 세대가 됐어야 돼. 여러분 부모가 믿는 낙원이 지금 좋아요? 좋지 않아. 나는 낙원을 생각하면서 낙원이 아닌 아주 불행한 시대에 떠내려 와 있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것에 관한 슬픈 이야기들을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건강이 안 좋아서 힘이 들어요. 그래도 끝을 내야지, 그럽니다. 후배들 중에서 내가 써야 할 이야기를 써 준다면 내가 맡기고 그만두겠어요. 그런데 내가 겪은 건 또 후배들과 다를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후배들은 그렇게 불편해 하지 않는 젊은 후배들도 있어요.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유세계 그러지. 나는 본래 농경사회에서 나왔어. 그리고 산업사회를 거쳐 왔고, 지금은 세계화 시대라고 그러나. 선진국이 몇 백 년 겪을 걸 난 한 인생에서 겪고 있고. 많은 짐의 무게를 내가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강을 되찾아야 이런 후배를 만나도 떳떳한데 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우리 땅에 생긴 비극, 그 슬픔, 그 막막함,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탈출구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가 하는 그 고민을 갖고 모였어요. 어떻게든지 어떤 해결방법을 우리가 찾고 현명한 민족이 되어서 진짜 이 다음 세대에게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위해서,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런 말은 또 한 번 써 줘요.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젊은 친구들 만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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