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 파업뒤 쌍용차에선 무슨일이

[미디어충청] 노조는 자물쇠로 묶이고 회사는 찍소리 말라하고

77일간의 파업이 끝나고 쌍용차는 정상가동되고 있다. 파업뒤 첫 차 출시를 놓고 대대적인 홍보도 했다. 그러나 쌍용차 정상화는 철저히 노조를 배격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박영태 공동관리인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인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 논란을 불렀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의 노조 사무실 출입을 막고 있다. 해고자든 아니든 77일간 파업에 참가했던 이들이 단 한 명도 공장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공장은 돈다는데 어떤 환경에서 자동차가 만들어지는지 쌍용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국민은 알 수 없다. 쌍용차는 체어맨W 상품 출시는 알려졌지만 그 차를 만드는 노동자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1. 숨 막히는 죽음의 현장, 로봇이 된 노동자

현재 쌍용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김00, 이00 씨와 해고자 박00, 오00 씨가 오랜만에 평택에 한적한 술집에서 만나 반가움을 나눴다. 만나자마자 오씨는 경찰조사 당시 경찰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하소연했다. 동료들은 한 가득 걱정 어린 눈빛으로 오씨를 바라봤고, 이내 회포나 풀자며 돼지고기김치찌게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렵게 인터뷰를 결정한 김씨, 이씨는 한두 잔 소주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기자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공장안 생활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파업 전에는 17잡(job)이었는데, 이젠 잔업, 특근 때도 잡 변경 없이 똑같이 22잡이예요. 쉽게 시간당 17대를 만들었는데, 22대를 만드는 거죠. 예전엔 인원이 많거나 잔업을 하면 타임(시간)을 늘렸지만 그런 게 다 없어진 거예요. 회사는 대기인원이 700~1000여명 된다며, 그 인원이 라인에 들어와서 (대신)일하면 되니까 타임을 늘리는 일은 절대 없다고 했어요. 그만큼 노동강도가 세졌고, 힘들어 진 거예요. 사람들이 힘들어 하니까 회사는 불만을 잠재우려고 전환배치해요. 근데 일은 하나도 모르고 타임은 빨라지니까 전환배치 된 친구들은 힘들어서 뒤집어져요. 희망퇴직 하면 쓰고 나간다고 하고… 분위기 진짜 안 좋아요. 잔업, 특근은 눈치 보여서 못 빠져요. 월차 쓰는 것도 눈치 보여요. 근로기준법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쓰게 되어 있는데… 조퇴 이런 거 절대 없어요”

“8시30분에 조업 시작인데, 전에는 5분~10분전에 출근했어요. 이젠 8시 전에 오라고 해요. 와서 10분 청소, 8시15분에 체조하던 것을 10분에 체조시키고, 15분에 조회를 해요. 동료들 불만이 많아요. 압권은, 쉬는 시간을 10분을 8~9분으로 줄인 거예요. 쉴 때 정위치정지스위치를 누르는데, 라인이 바로 안서고 1~2분 더 일시키고 서는 거죠. 다른 부서에서 들은 얘긴데, 용역이 근무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동영상으로 찍는 답니다. 참, 쉬는 시간이라도 해도 의자를 다 빼서 앉을 데가 없어요. 일이 밀리지 않으면 30초, 1분 앉아서 쉬기도 하는데 그냥 서서 쉬어요. 라인별, 부서별 컴퓨터도 없애버려서 컴퓨터 있는 데가 한 직 정도예요”


이때까지만 해도 해고자들은 “로봇트네(웃음)”하며 농담도 던졌다. 그러나 사측이 해고자들에게 기숙사를 빨리 빼라고 재촉한다고 하자 아연질색하며 동료들에게 한마디 했고, 잠시 그들은 흥분했다. 생산직 인원의 48%가 줄자 기숙사 일부를 폐쇄해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다.

“나 같으면 숨 막혀서 일 못해”
“불만 말하면 3개월 교육 보내겠다는데 다들 쉽게 못 나서지. 대기자가 몇 백 명씩 있으니까. 교육시키고, 교육으로도 안 된다고 하면 무급휴직으로 (라인에서)빼버린다고 하는 거야. 우릴 대변해주는 노조도 없으니까 공장안에서 바짝 긴장해 있는 거지. 진짜 무서운 얘기야”
“그게 경영진이 할 말이냐! 차 품질 잘~알 나오겠다”
“수요일엔 관리인이 송탄에서 교육을 했는데, 1인당 생산대수가 낮다고 계속 강조했어. 그건 아니거든. 데이터 수치가지고 장난치는 거야. 올해 초에 분명히 8만대 생산하면 된다고 했는데 회계법인이 2만7천대를 잡더니 2,646명을 정리해고 해야 한다고 했잖아”


#2. 자물쇠로 묶인 노동조합

노조 사무실은 자물쇠로 잠겨 있단다. 파업 뒤 노조 사무실을 들어가 본 조합원은 아무도 없었다. 공장을 출입하기 위해서 없던 스티커까지 붙여진 출입증을 제시하면 기계가 “직원입니다”하고 말한다. 노조는 쌍용차를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비유했다.

“사무직 직원들이 노조 사무실을 때려 부셨데요. 우리는 그 근처에 갈 수도 없어요. 노조가 아예 문을 닫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대의원도 없고, 노동자를 대변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니까… 지금 쌍용은 삼성의 무노조 상태와 같아요. 파업참가자들이 정문에서 출입을 요구하면 용역이 동영상 찍는 것뿐만 아니라 본관 옥상에서 사측 직원들도 찍으면서 감시해요. 쌍용차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쌍사모) 카페에 다 올라오죠. 기자들 얼굴까지 다 보여요. 우리의 대표인 직무대행도 출입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침에 조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파업 때 사측 선무방송을 한 아주머니를 불러서 박영태 관리인이 상을 줬어요. 진짜 고생한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 같이 살자고 한 가족대책위 아주머니들이었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공장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식비 2만원씩 주고… 새총 잘 쐈다고 돈 주는 것 같았어요. 고생한 사람을 따로 있는데… 파업이 끝나기 전부터 회사는 파업참가자들하고는 절대 일할 수 없다며 새총,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게 했죠. 이질감을 조성하는 거죠. 파업 당시 사무직, 연구동 관리자들이 특히 오버해서 새총 쏘고 쇠파이프 휘두르고 했어요. ‘저 사람 미쳤나?’하고 생각할 정도였죠. 매각되면 사무직 30~40%가 잘릴 수 있으니까 안 잘리려고 과잉충성한 거죠”


파도가 몰아 친 뒤 잔잔한 바다를 기다리는 것은 욕심일까? 쏟아지는 폭우로 쌍용차 공장안 노동자들은 눈이 아파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보인다. 가야 할 곳은 분명하지만 폭우는 쉽사리 멈추지 않고, 시야를 막고 있다.

“불만은 많은 데 일단 어디에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참담하고, 자괴감이 듭니다. 해야 할 것은 많은 데 지금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도 해요. 반발하며 3개월 교육 보내지고…”


#3. 너무 먼 당신, 민주노총 금속노조여

노조 간부는 대거 구속되고, 상대적으로 활동이 자유로운 간부, 조합원조차 공장 출입을 못하고 있는데 조합원 조00 씨는 민주노총 탈퇴와 노조 선거를 위해 총회를 소집하자고 ‘호소문’을 뿌렸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선택한 것이다.

“조합원이라고 했지만 조00은 전대 노조 간부 대외협력실장을 한 사람이에요. ㄷ00이라는 모임 소속인데 이곳은...(중략) 말들 많아요. 총회요? 과정과 절차가 잘못되어도 말해 주는 노조가 없잖아요. 소수 인원이 호소문 뿌리고, 식당에서 총회하자고 서명 받는데… 총회는 성사될 것 같아요. 사인하는 사람 많이 봤어요”

이씨의 말에 김씨는 “사람들이 서명하는 거 나는 못 봤는데?”하며 반문했다.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총회 소집을 추진하는 세력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들은 총회 성사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달랐지만, 총회를 추진한 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같았다.

“1천명? 2천명? 서명 받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누가 했는지 모르겠어요. 믿지 못하겠다. 조00이 총회 소집권자로 9월7일 조합원 총회를 연다고 하는데… . 회사는 지금 민주노총을 탈퇴해야 매각에 유리하다고 말해요. 그리고 일단 회생계획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거죠. 관리자들이 그런 얘기를 흘리고 다니고, 부서별, 팀별 토론시간을 갖게 하죠. 근무시간 중에 교육시간을 갖고 ‘민주노총 탈퇴’를 주제로 조합원끼리 의견을 주고받게 하고, 토론이 끝나면 공장,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어떤 조합원이 어떤 말을 했는지’ 의견 수렴하러 다녀요. 조합원 총회를 한다고 관리자들이 공지하고 있는 실정이죠. 원래 9월20일 총회를 계획했는데 7일로 당겼어요. 15일 2차 관계인집회를 의식하거죠. 민주노총 탈퇴를 해야 회사가 산다는 논리로 분위기를 끌고 가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탈퇴를 추진 총회를 반대하면서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대한 비판을 했다. 총회 추진 세력과는 다른 비판의 내용이지만 목소리가 높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해요. 투쟁이 끝나긴 했지만 부상자, 구속자, 노조사무실 출입 문제 등 대응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운 거예요. 심하게는 우리 파업에 금속노조가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사측과 타협점을 찾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말도 있어요. 그래도 현존하는 노총 중에 제일 낫긴 하죠. 제2의 민주노총 얘기도 있던데 아직 출범을 안 했고, 한국노총은 어용이고. 민주노총 말고는 기댈 때가 없는 거예요. 한국노총으로 갈 순 없잖아요?”

“지금 지부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직무대행이 뽑혔지만 지부장, 노조 간부들이 구속되고… 우리는 산별노조로 단일노조잖아요.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금속노조에서 같이 만들어 줘야 해요. 노조만으로 안 되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말이 아닌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4. 미안하다 친구야

77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공장 밖을 나서는 순간 짐 보따리를 한 가득 들고 있던 오씨는 카메라 세례를 받았단다. ‘배용준’이 된 것 같았다며 농담을 던지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순간의 침묵속에 불쑥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솔직히 진짜 쪽팔리더라. 친한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 투쟁했고… 자기 욕심으로 남아서 투쟁한 친구들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끝까지 얘기한건데…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가지 않아서 투쟁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이 친구들에게 죄스럽습니다. 처음엔 1,500여명이 투쟁했지만 마지막엔 500여명이 남았어요. 우리가 동참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같이 했으면 이겼을 텐데… 희망퇴직자가 많았는데 살릴 수 있는 사람 못 살린 것 같아 그것도 죄스럽고. 숨이 막혀요. 노동자의 삶은 꿈조차 못 꿀 것만 같습니다. 군대죠(웃음)”

파업 기간 동안 단전, 단수, 소화전차단, 직원-용역-경찰의 합동진압작전으로 어둠의 공장이었던 쌍용차가 자본의 철옹성으로 바뀌었다. 철옹성이 진정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원칙, 법칙, 질서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인간이 정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법칙과 질서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와 노조의 실체 자체를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대타협 정신에 입각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지키고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 “노조 파괴자 쌍용차”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 한 걸음은 뒤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인터뷰에 응했던 4명의 노동자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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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 금속노조 , 쌍용차 , 박영태 ,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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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장내 분위기가 궁금했는데..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아요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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