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정규직 연대, 함께 살기 위한 자연스러운 외침

[철폐연대-참세상 공동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5)]
비정규직과 함께한 이랜드 노조 정규직 조합원들의 투쟁의 기억

1999년 12월 유난히도 추웠던 어느 겨울날, 노동조합에 문의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냉동창고 같은 물류창고를 찾아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설레는 만남은 3개월 후 비정규직 분회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2000년 이랜드노조 265일 파업투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못 살겠다 50만원! 먹고살자 70만원!!” 이것이 2000년 6월 16일, 파업투쟁을 시작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구호였다. 그러나 이 눈물겹고 소박한 요구는 파업 첫날부터 처참히 짓밟혔다.

  2000년 파업투쟁 당시 "비정규직 철폐" 퍼포먼스

3일 후, 사무전문지부와 식품분회가 파업에 합류했다. 그리고 보름 후, 임금인상시기가 달라 불법논란이 있었던 2001아울렛 조합원들도 모두 파업에 동참함으로써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먼저 시작한 파업은 어느새 이랜드노조 전체의 파업이 되어있었다.

그 사이, 노조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규약개정을 단행했다.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지만 사측의 도급계약 해지로 하루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까지 함께 싸울 요량에서였다. 많은 이들의 우려가 있었고, 예상대로 그 싸움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65일의 처절한 파업투쟁 결과 불법파업 노동자들까지 직접 채용하고 순차적 정규직화에 합의했다.

그렇다면 이 투쟁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은 들러리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IMF를 겪으면서 피부로 다가온 고용불안의 칼날,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담시키던 이랜드 자본 하에서 눌려왔던 설움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불법파견 노동자들까지 받아들이게 된 파업의 결과는 당연히 이들에게도 여러 가지 성과를 안겨주었다. 가장 큰 성과는 외주화와 연봉제 도입 저지였다. 당시 이미 2001아울렛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계산대에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었으나 파업을 통해 철회되었고, 박성수 회장의 계산대 외주화 계획은 무려 7년이나 지연되었다. 모든 관리직들에게 순차적으로 도입된 연봉제는 아직도 2001아울렛 현장직원들에게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2000년 파업이 길어지고 있을 때는 정규직 조합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파업이 끝난 후에도 일부에선 그런 불만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 치열했던 투쟁이 정규직인 자신들의 가장 큰 방패막이가 되었으며, 결국 투쟁의 후광은 정규직들이 가장 많이 입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도 인정하게 되었다.

  2007년 파업 당시 월드컵 점거농성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꽃 현수막을 함께 만드는 모습

2007년 510일 파업투쟁 때도 그랬다. 처음엔 모두가 한마음으로 싸웠다. 옆자리의 비정규직 동료가 억울하게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 정규직들이 더 앞장서서 싸웠다. 까르푸노조 시절부터 적지 않은 시간, 같은 조합원으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현장에서 뒹굴어 온 조합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자 당연하게도 불만은 늘어났다. 워낙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조명을 많이 받게 되자 정규직들은 “파업이 승리해도 내게 돌아오는 성과는 별로 없는 것 아니냐?”, “정작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현장에 복귀한 사람이 많은데 나만 남아서 파업투쟁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등의 말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 중 적지 않은 인원이 끝까지 버텼다. 끝까지 노동자의 의리를, “노동조합”이라는 소중한 공동체를 지켰던 그들은 당당히 현장에 복귀하여 현재도 현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비록 홈에버 매각을 통해 노조가 분리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홈플러스테스코 노조는 성과를 안고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다.

만약 정규직 조합원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중간에서 포기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정규직들 소수만 남아서 투쟁을 이어갔다면 현재와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이는 비정규직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정규직들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측은 더욱 분리정책을 폈을 것이고 파업을 통해 당장은 막았던 외주화는 더욱 빠르게 추진되었을 지도 모른다.

  2007년 파업 당시 월드컵 점거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이 만든 피켓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 항의)

시간을 거슬러 1997년 이랜드노조 첫 파업투쟁 때의 일이다. 57일 파업투쟁으로 노조설립 후 4년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합의과정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단 3명밖에 없었던 계약직 조합원들의 정규직화가 약속되지 못하면 현장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결국 3명의 계약직들은 4개월 후 정규직화를 약속받았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꿋꿋이 살아남아 있다. 나는 그 때도 매우 놀랐지만 지금도 의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결코 교육을 많이 받았다거나 의식이 투철해서는 아니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노조의 일상활동과 파업투쟁을 함께 하며, 함께 땀 흘리고 함께 눈물 흘리며 동고동락 했다는 것, 그 외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다. 머리로 아는 것도 아니다. 몸으로 체득해나가야 한다. 홈에버(현재 홈플러스테스코)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해 온 노조활동을 통해 자연스레 함께 투쟁하는 것이 당연하다 느끼고 있었고, 연대 온 노동자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것은 초등학생 아이도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이 망할 놈의 ‘자본 우선’, ‘기업 우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경쟁에서 다른 사람을 누르는 것이 능력이 있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눈감거나, 때로는 조장해도 허용이 되는 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함께 투쟁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함께 살기 위해서다. 함께 살기를 포기하고 손을 놓는 순간, 배는 침몰하고 순차적인 죽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호랑이는 결코 우리의 다리만을 원하지 않는다. 다리를 주면 팔을 달라 할 것이고 팔을 주면 온 몸을 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미 다리가 잘려 달릴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살려둘 호랑이가 어디 있겠는가? 설혹 살아남을 수 있다 하더라도 팔다리를 잘린 채로 살아가느니 힘을 합쳐 정면으로 대항해 싸우거나 다리가 온전할 때 도망가는 편이 훨씬 현명한 것 아닐까?

“510일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나름 성과가 있다고 하지만 여러 간부들이 해고를 당했고, 지금도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격렬한 투쟁이 꼭 필요한 걸까요? 또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있는 걸까요?”

최근 상영된 2007~2008년 510일 투쟁을 그린 다큐영화 “외박” 관객과의 대화 때 어떤 관객이 한 질문이다. 어렵다.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격렬한 투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 6월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생존권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우리는 일정한 희생이 있을 줄 알았지만 맞서 싸우든가 아니면 그냥 벼랑에서 떨어지는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웠던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개인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부터 비정규직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비정규직화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박" 상영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얼마 전, 한 좌담회에서는 이런 얘기를 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기존 조직들의 의도적인 할당이 있어야만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기존 조직을 유지하는 것 보다 미조직, 비정규직을 위해 돈이고 사람이고 30% 이상을 할당해야 한다”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획기적인 의식전환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론은 잘 모르고 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없다. 다만 지난 16년간 투쟁의 일선에서, 현장의 요구에 따라 도망치지 않고 투쟁해왔을 뿐이다. 돌아보면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많다. 최근 나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고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고 있다. 반성할 부분이 많다. 지금은 조직의 성과와 오류를 떠나 개인적인 상처와 아쉬움이 더 크게 보이니 많이 지쳐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날을 꿈꾸어본다.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 27일(금) 오후 2시 만해NGO기념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오는 27일(금) 오후 2시 만해NGO기념관에서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이 글은 토론회에 앞서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살펴보는 철폐연대와 참세상 특별기획 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 1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기 위한 논의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딪히며 조직화를 고민하고 계신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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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이랜드 , 홍윤경 , 홈에버 , 홈플러스테스코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정규직 , 이랜드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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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도엽

    다시 초심으로 돌아오실 날, 손 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반금

    철폐연대가 한다하니까 기대갖고 가긴 가야겠는데 근무가 빨리 끝나야

  • 2000조합원

    그때 2000년 물류센터에 있었던 조합원입니다.벌써 9년이 지났네요..그때 홍윤경교선국장님이셨던가요? 기억납니다..^^ 정말 멋있었어요.감동적이었구요. 비정규직을 그것도 파견비정규직을 같은 식구로 감싸고 함께하던 모습..지금도 선하네요..그때 기억하면 지금도 그때 안도망가고 싸우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지금은 이랜드가아니라 다른회사에 있지만 그때 기억때문에 아직도 노동조합 주변에서 떠나질 못합니다.저처럼 아직도 홍윤경국장님 생각하는 사람들 있다는것 있지마시고 힘내시구 더욱 행복해지세요..멀리서 응원할께요..그때 위원장님, 사무국장님 수석부위원장님 등등등 눈에 아른아른....아울렛 동지들 끌려나올때 나도모르게 눈물이 펑펑 흘러나오던 기억..지금도 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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