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1년, 버리지 못한 투자은행(IB)의 꿈

금융규제? 다그래를 뒤집어라

오늘로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었다.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1년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2009년 2월4일 시행되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련된 기존의 6개 법인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간접투자자산운영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법을 통합하고 관련 제도를 크게 바꾸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한마디로 한국형 투자은행(IB) 설립에 있다. 그에 따라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여러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영화가 강행되어 산은지주와 정책금융공사로 분리되었다. 분리된 산은지주회사를 투자은행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경제위기로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의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투자은행 설립을 목표로 한 한국 자본시장의 규제완화와 개방화는 금융위기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까지 여겨진다.

미국에 투자은행(IB)은 없다

미국에서 이른바 볼커 룰(Volcker Rule)이 제기되면서 금융규제에 대한 국제적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볼커 룰은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의 제안인데, 핵심은 금융리스크 방지를 위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고 대형 은행의 규모와 투자범위를 제한하는데 있다.

그런데, 현재 엄밀히 말해 미국에서 투자은행은 없다. 금융위기 전 미국내 5대 투자은행이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메릴린치는 구제금융을 받고 BOA(아메리카은행)에 매각되어 BOA메릴린치로 남았고, 베어스턴스도 공적자금 투입후 JP모건에 매각되었다. 그나마 투자은행의 명맥을 유지하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받아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였다(이 때문에 볼커 룰이 시행된다면 이들은 규제대상이 된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 금융위기 전과 같은 투자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기업투자은행(CIB) 형태로 변모했는데, 체제도 은행지주회사이기 때문에 한국의 산은지주 또한 문제가 돤다. 볼커 룰이 적용된다면 미국의 현지 법인이든, 미국계 법인이든 모두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을 대상으로 한 활동은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 금융위기 주범이라는데...

그럼에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1년에 즈음해서 여전히 한국형 골드만삭스의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골드만삭스의 투자은행으로서의 성공에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7월 구제금융을 받은 100억달러(12조)를 금융위기 발생 9개월만에 모두 상환했다. 지난 한해 110억 달러의 수익을 내면서 모건스탠리 등을 따돌리고 CIB에서 단연 최고의 수익률을 냈다. 이에 재계는 한국형 골드만삭스의 꿈을 버리지 말고 이어가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미 행정부의 지원과 밀월관계 없이 성장할 수 없었다. 미국 행정부에 골드만삭스 출신은 항상 핵심적으로 활동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는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 부시 행정부는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도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이들은 금융위기 당시도 골드만삭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AIG가 부도났을 때 골드만삭스가 AIG에 물려 있던 130억 달러의 투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미 행정부가 구제금융을 결정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는 투자금 전액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금융위기 여파를 피해갈 수 없어서 골드만삭스조차 구제금융을 수혈받고 은행지주회사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가 투자은행으로서 자기자본거래 등을 일삼아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범이라고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금융위기 당시 미 행정부의 투자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마저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꿈은 계속된다?

미국의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과는 달리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1년에 즈음해서 규제완화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고 부채비율제한을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가 임박해 있다. 그러나 재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회사·손자회사의 최소 지분율과 3단계 출자제한을 폐지하라는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지주회사제도까지 무력화하라는 의미이다.

산은지주회사는 기업투자은행(CIB)으로 전환해 2020년까지 세계 20위권 도약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은 외국계 투자은행을 인수하여 글로벌한 투자은행으로 산은지주를 육성해 나가려고 한다. 산업은행 당시 문제가 되었던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의 인수시도도 있었다. 최근 태국계 투자은행의 인수도 시도되었다가 무산되었는데, 그럼에도 외국 투자은행을 인수하려는 산은지주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 개정으로 올 2월부터 헤지펀드 설립과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헤지펀드 규제완화는 추가적으로 올 5월까지 더 확대된다. 주로 기업 M&A시장에 자금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는데, 규제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자금이 들어 올지 뻔해 보인다.

심지어 미국이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규제완화는 국제적인 자금유입의 기회가 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2008년 부도 난 리먼브러더스를 산업은행이 인수했다면 부도도 막고 글로벌 투자은행까지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궤변까지 나온 판에 이 정도 주장은 약해 보인다.

이쯤되면 “금융규제, 남들이 다 그래. ‘다 그래’를 뒤집어라. 올레~”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이다. 자본시장통합법 1년, 이제 미련을 버릴 때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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