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기후변화의 국제관계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는 두 가지의 대립적인 논의구도를 상정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개별국가의 이익과 지구적 차원의 공공 이익이 공존하는 국제관계하에서 에너지와 기후변화와 관련한 경쟁들이 전통적 안보 및 경제 이슈들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어떠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국제협력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두 번째는 온실가스 절감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논의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환경적 규범의 논리와 현실적 대안에 있어서의 대립구도이다. 그러나 이들 두 논의구도는 반드시 상충적이지만은 않고, 둘 사이에 있어서 접점을 찾는 시도가 학문적, 정책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21세기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유지에 필요한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와 기후변화는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안보문제이다. 이들 화석연료들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는 기후변화의 핵심적 요인이기 때문에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기후변화를 완화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현재 각국 정부와 에너지업계는 에너지원의 다각화를 서두르고 있는데, 세계 석유생산이 절정으로 치달을 시점이 되면 석유대신 천연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제2의 에너지 위기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세계 경제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래서 각 국가들은 화석연료가 고갈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에너지원 확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녹색혁명이 필요하며, 이는 에너지 절약, 신재생 에너지 사용, 기후변화협약에의 가입과 의무이행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피해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히는 섬나라들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기후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리브해와 태평양 섬나라들의 경우 인구의 50% 이상이 해안선으로부터 1.5㎞ 이내에 살고 있어서 해수면 상승시 거주지를 떠나 국내외의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이들 국가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저지대 국가의 28억명이 기후변화가 초래한 홍수, 폭풍우, 가뭄 등에 노출되어 거주지를 떠날 위기에 처해 있다(경향신문, 2009.12.16). 이들과 다르게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는 극심한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0년 이전에 세계에서 적게는 7500만 명, 많게는 2억 5000만 명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세계적 차원의 공동관심사이자 공통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자원의 확보는 신재생 에너지로 초점을 맞추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서 온실가스 절감을 중심으로 녹색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세계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이다. 미국과 중국이 에너지 및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서 진지하게 협력할 수 있을지 상당히 의문스럽지만 ‘의지의 동맹’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으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인도 등 5개국이 2006년 12월부터 ‘5자 에너지 각료회의’를 매년 개최하여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를 집중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6월 8일에 열린 G8+3에너지장관회의에서 11개국 에너지각료는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체제 마련을 촉구하였다. 이들 11개국이 전세계 에너지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들의 의식전환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고유가 대응책으로 공급차질에 대비한 비상시 대응강화, 역내 회원국 및 산유국 증산, 에너지효율성 향상, 비재래유 및 재생에너지 활용증진 등을 논의하였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에너지효율, 신재생에너지·원자력 등 저탄소에너지 활용 증진, 혁신 에너지기술의 중요성에도 합의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공통적인 문제 해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지구온난화에 과거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섰지만, 방법론에서는 여전히 유럽 등 교토의정서 가맹국들과 상당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 등은 2005년 2월 발효된 교토의정서의 강제적 의무부담 적용대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자발적 이산화탄소 감축과 기술개발, 이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은 기후변화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으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외교전에서 최대 이슈는 EU와 미국의 대립이다. 즉 기후변화협약 1차 이행시기에서 EU가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내세우며 주도권을 잡게 되자 미국이 ‘기술이전과 협약’을 내걸면서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과 인도 등 급성장 국가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미국을 넘어 세계 1위로 자리잡았고 인도도 5위를 차지한다. 이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현재 전세계의 39%에서 2030년엔 50%로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거대 개도국들은 산업화를 포기할 수 없다며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기후협약 문제 논란의 배경에는 차세대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탄소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탄소시장은 오는 2010년까지 1,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발을 내딛은 유럽연합은 지난 2005년 1월 세계 최대 탄소 시장인 ETS(Emission Trading Scheme)를 개설, 배출허용권을 25개 국가에 할당했다. 현재 EU ETS 내에서 약 82억 유로(10조 6,538억원) 규모의 배출권이 거래되고 있다.
‘자발적 감축’을 기치로 내건 미국과 호주 등 비(非) 교토의정서 국가도 자체적으로 탄소거래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프로젝트 형태로 거래하는 시장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촉발된 비용부담이 탄소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면서 돈을 벌 기회가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동북아지역의 특별 관심사인 에너지 안보와도 연관이 깊다.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국이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지역에서의 협력을 통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다면 이는 세계적인 수준의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환경문제는 지역 국가들 간의 상호 의존, 신뢰와 믿음을 증가시킬 수 있는 지역의 집단행동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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