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은 사라지고 ‘성장’만 남는 정책

[기후변화와 노동자(4)]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정책: 그 위선과 허구성

녹색성장이 대중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제시하면서부터다. 8 15 경축사 이후 녹색성장은 전략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 정책의 마스터 프레임처럼 쓰이고 있다.

주요 사항만 살펴보면, 2008년 11월 이명박 정부는 기후변화대책위원회와 국가에너지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통합하여 녹색성장위원회를 발족시켰고, 2009년 1월 대통령 훈령으로 “녹색성장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데 이어 “녹색성장기획단”을 설치했다. 2월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정부안을 확정지었고, 3월부터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7월 녹색성장위원회의 심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마친 상태다.

녹색성장은 실체가 없는 수사로 등장해서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으로 녹색성장이 주창되었을 당시 녹색성장은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 즉 8 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써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 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실행 수단과 방법까지 명확하게 언급된 것은 아니다.

녹색성장은 사후적으로 실제 내용을 채워갔고, 그 과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안)에 이르면 비교적 녹색성장의 실체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구체화된다. 정부는 법안에서 “녹색경제/녹색산업을 육성/지원하는 시책”으로 녹색성장법안을 추진한다는 점을 명시하며 온실가스 배출 감축방안을 밝히고 있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보면, 정부는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과 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온실가스 종합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시장기능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국제적으로 팽창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에 대비하기 위하여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을 설정하고 배출허용량을 거래하는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 등을 실시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후 녹색성장정책은 “녹색성장 국가전략”과 “5개년 계획”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2009년 7월 녹색성장위원회는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 진입”이 목표라고 밝히며,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107.4조원(‘09∼’13)을 투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녹색성장 국가전략은 3대 추진전략과 10대 정책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자립
① 효율적 온실가스 감축, ② 탈석유,에너지 자립 강화, ③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
신성장동력 창출
④ 녹색기술개발 및 성장동력화, ⑤ 산업의 녹색화 및 녹색산업 육성, ⑥ 산업구조의 고도화, 녹색경제 기반 조성
삶의 질 개선과 국가위상 강화
⑧ 녹색국토,교통의 조성, ⑨ 생활의 녹색혁명 ⑩ 세계적인 녹색성장 모범국가 구현



눈여겨볼 세부정책으로는 원전기술 국산화 및 원전 플랜트 수출, 지능형 전력망, 연료전지 등 중점 녹색기술 상용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단계적 도입, 국가온실가스관리시스템 구축, 에너지, 자동차 세제개편 등이 있다.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은 다양한 정책을 담고 있지만 실상은 기술투자강화와 환경시장 확대를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녹색성장정책의 에너지 분야정책은 2008년 8월 27일 발표된 “국가에너지 기본계획”과 맞닿아 있는 만큼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비전을 3대 축으로 에너지 안보와 환경, 효율을 들고 있다. 이를 위해 (1) 에너지를 덜 쓰면서 견실한 성장을 구현하고, (2) 에너지를 쓰더라도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3) 그린에너지산업이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창출하며, (4) 에너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자립 및 복지사회 구현을 목표로 한다.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비전의 실천과제로는 (1) 에너지 저소비,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2) 녹색강국 구현을 위한 그린에너지 산업육성, (3) 에너지 자립 및 에너지 복지사회를 들고 있다. 그럴듯한 말은 모두 들어가 있는 만큼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세부정책을 놓고 실제 의미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저탄소 그린에너지 비중의 확대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탄소 그린에너지 비중의 확대는 다름 아닌 원자력 발전의 확대를 뜻한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2030년 석탄과 석유의 비중은 각각 15.7%와 33.5%로 2007년 25.3%, 43.4%에 비해 10% 가까이 줄어든다. 대신 원자력의 비중이 14.9%에서 27.8%로 13% 가까이 증가한다. 물론 신재생에너지 등의 비율도 늘어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원자력 발전은 급격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원자력은 발전량을 기준으로 할 경우, 그 비중이 35.5%에서 무려 59.0%로 20% 이상 급증한다.

정부의 야심찬 계획인 그린에너지 산업 육성도 뜯어보자. 정부는 2007년 18억달러 수준인 그린에너지산업 매출을 2030년 3,000억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중 2,100억달러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2030년 그린에너지 산업 고용인원을 154만명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그린에너지 산업 그 자체다. 재생에너지는 정부가 생각하는 그린에너지 산업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린에너지 산업에는 신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화석연료청정화, 효율향상이 포함된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에는 태양광과 풍력 이외에 수소연료전지, 석탄가스화 복합발전까지 들어가 있다. 그린에너지 산업에는 흔히 떠올리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외에 다양한 산업과 기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덧붙여 녹색성장정책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감축계획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초 녹색성장위원회가 제시한 온실가스감축 시나리오는 BAU 대비 21%, 27%, 30%로 일견 매우 높은 수준의 감축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정부는 최종적으로 BAU 대비 30% 감축안을 선택해 강한 감축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선전했다.

그러나 30% 감축안이라 하더라도 실상은 2005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4%를 감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주요감축수단을 보면 거의 대부분 기술도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을 알 수 있다. 온실가스감축과 함께 제기되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의식은 정부의 계획 속에선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은 성장을 위해 “녹색”을 활용하는 정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기술혁신이 경제성장과 환경오염을 탈동조화(decoupling)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제되고 있고, 기술추격 또는 기술선점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있다. 물론 추진전략과 정책방향은 개념상으로는 이보다는 포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10대 정책방향에는 효율적 온실가스 감축, 탈석유/에너지 자립 강화, 녹색국토/교통의 조성, 생활의 녹색혁명 등 신성장동력 창출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것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효율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실상은 기술개발을 통한 감축이고, 탈석유/에너지 자립의 핵심은 자주개발율 증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에너지 생산/소비 시스템은 유지한 채 기술혁신을 통해 오염물질을 저감시키거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있음을 말해준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녹색”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성장을 위한 “녹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택적인 의미부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이러한 기술혁신과 녹색성장이 비록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국가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른바 탄소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자본 분파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 또한 높다. 따라서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이 자본의 요구와 어떻게 조응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나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정부의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 시행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산업계 전체는 단일한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별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응방식과 대응역량은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대응을 살펴보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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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 녹색성장 , 온실가스 , 탄소배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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