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재개발의 아침

[이윤엽의 판화참세상]

참사가 난 지 한 달 조금 지났다.
민미협 선배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을 찾고 있다.
무슨 작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다.
아픔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서로의 아픔 말이다.

그림쟁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림이나 그리는 것.
근처의 나뒹구는 합판 쪼가리나 침대 매트리스나 천을 주워다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렸는데 하나같이 볼품은 없었다.
많은 작가가 참여한 대형 걸개그림을 없는 돈에 부른 사다리차로
어렵게 설치했지만 단 하루 만에 철거를 당했고 없는 돈에
재료를 사고 뺑이치고 진행한 또 다른 걸개그림도 하루 만에 뜯겨져 버렸다.

지들 맘이다.
별일 없으면 냅두고 웃대가리에서 연락 오면 뜯어버리고 그러는 것 같다.
그저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그려놓는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개무시 당하고 있다는 느낌.

현장은 조용하다.
유족 한 분당 한 대꼴로 전경차가 도로가에 주욱 늘어서 있고
밤 추위에 땔 장작을 어느 남자 분이 패는 것과
점심과 저녁을 먹을 그릇과 물을 옮겨 나르고 댓개의 향이 늘 타들어가고만 있을 뿐.
없어진 파란 망루 안에서 타 돌아가신 분들의 그날 울부짖음은
용산거리 후미진 골목 어디를 헤매시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벌써 잊고 있는 건가.
그들은 그렇게 단정을 해버리고 편리하게 개무시로 대응하고 있는 건가.
억울하잖은가.
참사가 난 바로 그날 아침처럼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는데
돌아가신 다섯 분은 어쩌란 말인가
평생 그날을 잊을 수 없는 아내와 아버지를 빼다박은 자식들은 어쩌란 말인가

기억해야 한다.
살기 위해 싸운 다섯 분의 철거민과 살아야 하는 유족 분들을 또다시 죽이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개무시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하여 말이다.

2009년 3월2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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