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과 위성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진보논평] 변혁을 담보하는 진보연합이 필요하다

우주가 어지럽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가 하면 타이탄이 토성 주위를 돌고 유로파가 목성 주위를 돈다. 태양은 항성으로 가만히 선 채로 붉은 열을 뿜어내고 있건만 위성들이 행성 주위를 열심히 돌고 행성은 위성들이 자기 주위를 돌도록 위성들을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태양계 안에서는 지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다시 이 행성들 주위를 위성들이 돈다.

이런 일들이 우주 안에서만 태양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요즘 이렇게 돌고 도는 일이 행성 지구,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5+4, 5+2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민주당은 자기가 지구인 것처럼 행세하고 민노당은 자기가 화성인 것처럼 생각하며 진보신당은 자기가 토성인 것처럼 생각한다. 우주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이제는 아예 행성들끼리 결합한다. 이른바 소위 말하는 연대다. 연대는 말 그대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수성 금성 등이 일렬종대로 줄짓듯이 모이는 것이다. 그것은 진보 세력의 ‘연합’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든지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연대’일 뿐이다. 지구 수성 금성 화성이 일렬로 띠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진보의 띠라고 해도 좋고 연대의 띠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연합도 좌파연합도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무수한 시민단체든 혹은 진보를 자처하는 단체나 세력들이 행성의 위성임을 자처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연합이든 하는 움직임이다. 말은 연합이지만 합치는 법은 있을 수 없다. 반MB가 이념일 수는 없고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연합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엔 선거 공학에 따라 이루어지는 연대일 뿐이다. 우주의 이치는 중력에 따라 위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일렬종대하고 있는 행성을 돈다지만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은 왜 스스로를 위성으로 자처하고 연대하고 있는 행성들 주변을 돌아다니는 걸까.

우주처럼 위성이 행성 주변을 일사분란하게 도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행성과 위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혹성(행성) 탈출도 불가능해지는데 위성의 힘을, 민주와 진보의 힘을 왜 행성에게 위임하려는 것일까? 그런다고 위성이 행성이 되고 행성이 태양이 되는 것도 아닐진대 행성은 위성의 숫자를 자랑하고 위성들에게 계속해서 행성 호위를 종용한다. 위성이 행성을 만나지 않으면 행성들끼리 연대하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위성이 행성 주위를 도는 이른바 5+4 론은 과거의 비판적 지지의 개정 증보판이다. 위성이 행성 주변을 돌아 다녀봐야 위성일 따름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당들은 행성들을 줄 세우는 태양 역할을 하지 못한다. 태양은 행성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5개의 당 들이 하는 일이라곤 급급한 선거 공학뿐이다. 시장이 되어야 하고 교육감이 되어야 하며 시의원이 되어야 하는 절박한 선거 공학만 난무하는 것이지 노동자 민중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 비판적 지지의 개정 증보판으로는 진정한 변혁을 담보할 수 없다.

새로운 위성이 발견되어야 한다.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이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한 위성이 나타나야 한다. 그 위성은 화성 주위를 다시 돌겠지만 자본주의 현실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위성은 당 주변을 돌지 않는다. 위성과 위성의 진정한 연합을 꿈꾸는 수많은 위성들이 필요하다. 행성 주변을 도는 것이 아니라 그 행성들에 저항하고, 단순히 행성들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태양이 될 수 있는 위성들의 연합이 필요하다. 선거연대는 목련꽃처럼 봄날이 가면 지는 것이지만 연합은 주구장창 푸르러야 한다.

5+4, 5+2 등의 구호를 보면서 저 시간과 인적 자원이 있으면서도 왜 우리는 변혁의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선거공학으로 머리는 복잡하겠지만 단순하고 손쉬운 것이 소위 말하는 연대가 아닐까 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연대가 아니라 노동자연합이지 않았는가. 위성들끼리의 노동자연합. 태양 주위로 모이는 행성도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도 아닌 위성들의 연합을 위해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연대는 손쉬운 방법이지만 연합은 어렵고 먼 길이다. 변혁은 행성과 위성의 돌고 도는 게임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수년 후 비판적 지지의 개정판을 또 찍어낼 요량으로 행성 주위를 돈다면 변혁은 도래하지 않는다.

태그

진보대연합 , 민주대연합 , 반MB , 노동자연합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득재(대구가톨릭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