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기후변화와 노동자(6)] 노동조합의 차별적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 에너지산업의 문제점들은 ‘외형적’ 경제발전 추구에 밀려 계속해서 방치되어 왔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라는 급박한 과제가 발생함에 따라, 현재의 문제점들은 국내․외적으로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로 인해, 그리고 기후변화 협약으로 인해,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커다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변화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배출량의 축소가 될 것이다. 탄소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 에너지 산업이 필요 이상의 과다한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크기는 더욱 더 증대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각되고 있는 대안이 바로 ‘에너지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 재생가능에너지를 바탕으로 에너지 산업을 재편하는 것이다. 현재 탄소배출량의 감소를 위해 제시되는 여러 방안들은 과연 탄소배출량의 유의미한 축소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에너지 전환’은 탄소배출량의 급격한 축소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기후 변화는 한국의 에너지 산업에게 ‘에너지 전환’이라는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에너지 산업에 미치는 영향들이 모두 똑같은 성질을 가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협약에 의한 ‘필연적이고 정당한’ 변화가 존재하는 한편, ‘의도적이고 부당한’ 변화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부당한 변화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에너지 산업의 구조조정과 이윤 논리 강화이다. 기후 변화 협약을 빌미로, 정부와 자본의 의도적인 변화 시도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의 감소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조조정의 필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탄소 배출량과 고용인원이 직접적으로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탄소 배출량의 감소가 필연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의 부담 증가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윤 논리 강화는 수많은 해결책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기후 변화라는 인류 공통의 절대적 과제를 무기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탄소 구조조정’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정부와 자본의 이해관계는 에너지 산업의 재편을 왜곡하는 힘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 즉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원자력이나 신에너지의 비중 확대가 우선되는 것이다.

기후 변화 문제가 에너지 산업의 노동자들에게 서로 다른 성격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노동조합의 대응 역시 영향의 성격에 따라 차별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산업의 노동조합은 무엇이 정당한 변화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변화인지를 정확히 구분해야 하며, 각각에 대해 완전히 다른 대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탄소 구조조정’ 저지와 능동적 대응

먼저 ‘탄소 구조조정’, 즉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과 이윤 논리 강화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대가 필요하다. 이런 시도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대응과 완전히 분리시켜야 한다. 현재 ‘녹색 성장’으로 상징되는 정부와 자본의 움직임은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맥락 속에서 지난 10년간 지속되어온 공세의 연장선상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기후 변화 문제는 단순히 자신들의 헤게모니 강화를 위한 수사(rhetoric)의 기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산업의 노동조합들은 현재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과 이윤강화 논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대응은 한국에서 기존의 ‘성장지향적 발전전략’과 ‘시장중심적 사회원리’를 더욱 더 강화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움직임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다.

그러나 ‘탄소구조조정’에 대한 반대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되는 모든 변화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탄소 배출량 감소라는 과제에 대해서 에너지 산업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참여해야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쟁점에서의 고민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단순히 정당한 변화에 협력하는 것을 넘어서서,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능동적 대응을 함으로써, 노동운동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정부와 자본이 기후변화라는 객관적 조건을 자신들의 주관적 기회로 활용하는 것처럼, 노동운동 역시 적극적인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기후 변화 협약이라는 외부 조건에 의해 강제된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서 노동운동의 힘을 복원해야 한다.

능동적 대응을 위한 긍정적 조건

지구온난화라는 생태계 파괴의 결과에 직면하여,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노동운동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첫째, 기후변화 문제는 현대인의 세계관과 가치 지향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기후변화 문제의 원인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 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는 ‘근대성’의 문제이며, ‘발전’의 문제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이다. 이는 기후변화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근대적·자본주의적 세계관과 사회원리 때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타자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에 기반하여, 이윤을 절대적 가치로 추구하며, 경제적 효율성을 유일한 합리성으로 인식하고, 최소 비용을 통한 최대 이윤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는 관점이 바로 기후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자본주의적 관점 속에서, 외형적 성장 속에 숨겨진 비용은 자본의 타자들(즉 노동자와 자연)에게 전가되고, 이윤 추구에 부적합한 가치들(생태, 공공성, 정의 등)은 배제된다. 근대의 합리성으로는 이러한 비용이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용과 가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애초에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는 지구 생태계가 지니는 절대적 중요성과 생태적 유한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숨겨진 비용과 가치를 드러내 보인다. 끊임없는 성장 속에서 인식되지 않았던 비용인 생태계 파괴는 지구온난화라는 가시적인 재앙을 불러왔으며, 이윤추구로 인해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무시되고 위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 문제에 직면하여,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생태주의적 전환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때의 생태주의적 인식은 단순히 ‘환경보호’와 같은 ‘교양’적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근대적·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게 된다.

둘째, 기후변화 문제는 현재의 삶의 방식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따라서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 제시가 당위성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들이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다른 사회 구성 원리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지난 30여년간,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속에서, 경제 성장을 유일한 목표로 그리고 시장 경쟁을 사회 구성의 유일한 원리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에 직면하여 경제 성장은 지속될 수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음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시장 원리는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의 불가능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조건들은 당연하게도 신자유주의의 극복의 필요성과 가능성 모두 더욱 높여주게 될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 문제가 현재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성장지향적 발전전략’과 ‘시장중심적 사회원리’를 성찰하고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은 노동운동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반성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무제한적으로 전면화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더욱 더 의미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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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 생태주의 , 에너지 전환 , 탄소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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