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과 철거민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

[우리사회의 도시빈민운동사](11)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우리사회의 도시빈민운동은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많은 투쟁과 과제들을 남기며 전개되어왔다. 이제 도시빈민운동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났던 몇 가지 입장들을 정리하도록 하겠는데 도시빈민운동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학계와 빈민 활동가 간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빈민운동 뿐만 당시의 모든 운동이 이시기에 발현이 되고 발전을 모색했던 시기에 나타났던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당시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유인물은 꼼꼼히 손으로 직접 쓰여 져 갱지에 인쇄되었거나 현장 활동가들의 지침서가 되었던 팸플릿은 전동타자기로 작성되어 롤러에 검은 잉크를 칠해 등사인쇄 되어 조심스럽게 유통되어져 나갔다. 하지만 학계와 주로 활동가간의 세미나를 통해 논의되었던 도시빈민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이 현장 깊숙이 실천적으로 어떻게 적용이 되었는지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아마도 활동가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안과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어 어찌 보면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이념 논쟁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동에 있어서 정체성을 찾고자 근본을 따지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고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고군분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에 와서도 활동가들의 열악한 문제는 외형만 달라졌을 뿐이지 크게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계형 활동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압박감 속에서도 다양한 현장 속에서 맡은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실무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빈곤현안들을 정리 해 내야하는 현실은 도시빈민원론을 둘러싼 근본적이고 이념적인 논의는 꺼내는 것조차 왠지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도시빈민운동의 원론을 새삼 들춰내는 것은 어떤 운동이건 과거에 논쟁이 현재에 어떻게 반영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의 위치를 반추해 보고 또 그 방향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도시빈민의 발생 원인과 계급적 지위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80년대 출간된 도시빈민연구서들


1. 도시빈민의 계급적 성격과 역할

‘도시빈민’ 은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는 현상에 대한 서술적 개념을 일 뿐, 계급적 개념이 내포된 용어는 아니다. 이는 ‘빈곤’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 빈곤한 사람은 볼 것인가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명확한 빈곤선을 설정하기란 쉽지 않듯이 빈곤문제를 바라보는 각각의 주체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그 기준이 크게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도시빈민은 노동할 능력이 있고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 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적으로 근대적 임노동체계 외곽에 머물고 있는 집단’ 을 가리킨다.

이들은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정상적으로 취업할 길이 막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주로 거리의 노숙인 을 비롯하여 폐지수집을 하여 내다파는 사람들, 파출부, 노점상, 가내 하청 부업 등으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간다.(이들은 흔히 비공식노동자라 일컫는다) 이밖에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원등 소규모 영업체에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들 대부분은 가족모두가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거나 불안정한 주거의 상태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과거 농촌의 지속적인 수탈과 피폐화로 대대적인 이농 현상이 진행되면서 도시로 내몰려 재생산되는 과잉인구로서 불안정 불완전 고용으로 항시적으로 노동력 재생산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도시빈민의 생존권투쟁은 이러한 노동력 재생산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외형적 표출이다.

위와 같은 도시빈민을 어떤 계급적인 범주로 보아야 하는가? 계급적인 범주에 대한 규정이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운동에 있어서 도시빈민의 주체와 성격, 지위와 역할을 둘러싸고 운동의 방향성이 자리매김 되기 때문이다. 계급적 둘러싼 몇 가지 주장을 요약을 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 견해는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주변부자본주의론이나 신식민지반봉건론의 입장으로 분석을 하며 소위 자본의 발전이 더딘 제 3세계나 개발도상국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춰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한다. 우리사회는 자본의 발전이 더디고 미흡한 상태로 농민과 더불어 도시빈민을 하나의 독자적 계급으로 보는 견해다. 때문에 빈민은 노동자와 농민과 함께 하나의 독자적인 계급으로 도시빈민운동이 한국사회변혁의 주력군이 되어 주체역량으로 독자적인 대오를 형성하고 투쟁을 전개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운동의 경험과 실천 속에서 위와 같은 견해는 오류였던 것으로 김영석조차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였다. 이 부분은 이후 비공식 부문 운동과 연동하여 아래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1)

둘째는 다계급 연합으로 보는 견해이다. 도시빈민을 노동자 계급의 하층과 소자산자계급의 하층, 영세자영업자, 노점과 행상 등의 다양한 계급의 연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도시빈민은 어떤 계급적인 실체가 아니라 단지 빈곤하다는 것의 사회적인 범주이며 계급 관계에서는 동질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공통의 사회적인 지위를 경제생활과 사회정치 생활에서 점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변혁운동과 접목을 하면 빈민운동을 계급연합(동맹)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며 독자적인 조직보다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모든 계급, 계층이 연합하는 형태로 투쟁을 전개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재생산 공간인 주택, 상가, 교육, 통신, 의료, 공공, 위락, 교육시설, 등 ‘집합적 소비수단을’ 둘러싸고 도시공간에서 계급투쟁이 발생한다고 보고 이를 도시사회운동 이라고 규정을 한다. 또한 독점자본에 반대하는 형태로 발생하는 주민들의 투쟁을 혁명적인 운동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념적인 정당이 나서서 이를 조직하고 지도해야 한다고 본다.2)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도심재개발이 집행되는 철거투쟁이 빈민의 생존권에 입각한 주거권에 투쟁이라는 점, 그리고 경제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점상의 투쟁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이 견해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입각한 이론과 결합되면서 수정이 되기도 하는데 ‘도시사회운동’ 또는 ‘계급적 성격을 띤 시민운동’ 적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주장은 최근 도시공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화와 환경문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노동계급의 한 계층으로 보는 견해이다. 우선 “계급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사회적인 위치,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 따라서 사회적 재화 중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몫의 크기와 취득방법에 의해 구별되는 사람들의 큰 집단을 말한다. 계급은 정치적인 사회적인 체재에서의 인간의 지위가 아니라 경제제도 혹은 생산의 사회적인 체제에서의 인간의 지위를 말한다. 즉 계급은 생산관계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 생산수단의 소유 관계에 의하여 규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생계를 위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팔수밖에 없는 임노동자” 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다양한 부문별 직종별, 및 그밖에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노동자 계급은 직접 잉여가치를 생산해내는 생산직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와 그 가치를 자본의 유통과 사회적인 총자본의 재생산을 통하여 이윤으로 실현을 시키는 사무 , 판매, 전문직 노동자, 소규모영세업체 임노동에서 의해 생계를 꾸려가는 반 프롤레타리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중에서도 구조적으로 불안정 불완전 고용상태의 건설노동자, 파출부, 등을 포함하는 일용노동자와 전근대적인 고용 관계로 단체 협약 성립이 불가능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영세업체 노동자, 실업자, 노점, 행상, 등 반프롤레타리아 가 빈민이라는 계층을 구성하고 있다. 즉 우리 사회의 노동자 계급은 생산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빈민의 세계의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도시빈민이 노동자계급의 한 부문으로 자기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87년 7. 8월 노동자 대 투쟁 이후부터였고 이 이시기에 노동조합의 건설 뿐 만 아니라 80년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철거민, 노점상들의 도시빈민의 투쟁이 격렬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본다.3)

2. 상대적 과잉인구론과 비공식부문 운동론

다음은 ‘상대적 과잉 인구론과 비공식부문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논의는 위에서 살펴본 도시빈민의 계급적 성격과 역할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중요한 논의의 지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학계를 비롯하여 도시빈민운동 활동가간에도 중요한 의제로 비교적 지속적으로 검토 되고 있다.

먼저 ‘상대적 과잉인구론’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발전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하부구조의 변혁을 기초로 진행됐다고 본다. 이때 상호작용의 방식은 각 단계의 인간사회가 가지는 생산양식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생산관계의 발전법칙은 그 생산양식의 기본적인 생산관계로부터 직접적으로 생겨난 기본적 경제법칙을 축으로 하여 여러 관계를 통해 경제사회의 모든 과정으로 전개된다. 특히 마르크스는 상대적 과잉인구가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역사적 분리과정인 본원적 축적에 의해 농민으로부터 너무 일찍 떨어져 나와 새로이 일어나는 매뉴팩추어에 흡수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단 완성된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에서는 자본 축적의 규모에 비례하여 필요 이상으로 상대적 과잉노동자인구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적 과잉인구에는 잠재적, 유동적, 정체적 형태와 피구휼 빈민 등이 있다.

우선 잠재적 과잉인구는 농업의 자본주의적 경영에 따라 농업에서 배제되어 도시의 공장 노동자로 전환되는 과정에 놓인 농업노동자 인구를 가리킨다. 그리고 유동적 과잉인구는 근대 산업의 중심에서 방출되거나 때로는 흡인되면서도 생산 규모에 비해 이윤이 끊임없이 감소함으로써 생기는 취업과 실업을 오고가는 산업노동자층을 중심으로 이루고 있는 과잉인구이다. 이밖에 정체적 과잉인구는 현역 노동자이면서도 취업이 극히 불규칙한 집단으로서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는, 노동력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를 자본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노동자계급보다 못한 생활을 영위하는 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소위 영세상업 종사자 또는 노점상, 중소 영세기업의 노동자, 가내노동자 등으로서 ‘도시 반(半) 프롤레타리아’에 해당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순환계열상 일부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피구휼 빈민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와 노동 무능력자로 구성되는 빈곤층이다.그런데 잠재적·유동적 과잉인구는 점차로 정체적 과잉인구로 이행하며 상대적 과잉인구는 궁극적으로 정체적 형태로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누적된다.4)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시각은 빈곤 문제를 자본주의 축적 기제와 관련하여 동태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자본주의화가 진전되면서 도시빈민의 형성과 계급적 성격은 그 발전의 정도에 따라 변화한다. 초기의 급속한 이농인구에 의한 도시빈민의 형성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내의 생산과정의 변화에 따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재생산 성격이 강화되는 것이다. 결국, 이 이론은 빈곤문제의 이해를 위해서는 현상적 이해가 아니라 구체적 형성 과정과 계급적 성격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음은 ‘비공식부문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비공식부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1971년 ILO(국제노동기구)에서 K.하트에 의해 용어가 채택되면서 부터였다. 그는 공식부문을 ‘고정된 보수로 정규직 노동이 행해지는 임금취업자’로 정의하는 데 비해 비공식부문은 ‘불안정한 자영업자와 불완전 취업자를 포함한 보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부문에 취업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5) 그리고 도시 비공식부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비공식부문은 대체로 정부에 의하여 무시되고 거의 지원받지 못하며, 때때로 통제되고 적극적으로 방해받고 있다. 그럼에도 비공식부문 종사자 대부분이 빈곤 노동 층이지만 모두가 빈곤층인 것은 아니다. 비공식부문 운동은 완전고용을 지향하며 비공식부문의 공식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비공식부문과 빈민, 주변적 계급 간에 연관성을 보이면서도 이들을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시 말해 비공식부문은 전통적으로 실물자본과 인적자본 및 기술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용과 소득의 창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분배에 관여하고 있는 소규모 단위의 부문을 일컫는다.6)

그간 비공식부문은 경제의 재편과 발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보고 공식부문과 경계에 있는 부문은 점진적으로 공식경제에 통합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식부문의 비공식화’가 증대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전통적으로 개발도상국 경제의 특징으로 인식되어온 비공식부문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청계약 메커니즘으로 산업화된 경제의 고용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공식부문의 성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빈곤노동자의 증가 문제라 할 수 있으며 비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은 비생산적인 고용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제한적인 지원은 오히려 저임금 구조의 고착화로 귀결되기도 한다. 기존 제3세계의 주변부 자본주의론에 기초한 ‘도시 비공식부문론’은 이중 사회론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으며 우리사회도 이러한 입장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이밖에도 ‘도시 비공식부문론’은 도시빈민에 대하여 지나치게 전략적으로 과도한 규정을 내려 우리사회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기본계급으로 설정하여 수평적 연대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거나 이와는 또 다른 경향으로 정상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도시 비공식부문’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부의 정책적 접근을 통하여 비공식부문 종사자와 주변근로대중계급, 불완전취업자, 소상품생산자, 도시노동빈민(노점상)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공식부문과의 협력을 꾀하지만 결국 산업순환의 다양한 국면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작용하는데 활용될 뿐이다. 도시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개량주의적 발전 전망에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며 도시빈민층 의 빈곤원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동 과정과 고유하고 특수한 존재형태 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우리사회는 해방 이후 급격한 자본주의적 성장과 독점적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때문에 빈곤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도시빈민의 형성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 되고 있는 우리사회는 자본 간 경쟁과 노동자계급의 저항에 직면한 자본의 불변자본부문의 상대적 비율증대를 통해 유기적 구성도를 높이고 상대적 과잉인구를 산출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끝없이 도시빈민이 창출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 과잉인구론은 빈곤의 원인이 어떻게 표출하였는가에 대하여 전체 총자본과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분석되어지고 노동자운동과의 관계를 설정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다음은 위와 같은 입장을 토대로 노점상 운동과 철거민운동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3. 철거민을 둘러싼 논쟁, 누가 철거민인가?

  2006년 11월 미아 뉴타운 빈민현장 활동모습

도시빈민운동사에서 철거민의 발생 원인과 계급적 지위도 학계와 활동가 간에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고 이에 따른 결과물도 많이 축척되어 있다. 다만 이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2천 년대에 들어 학계와 활동가 중심의 논쟁이 아닌 ‘누가 철거민인가’라는 주제로 철거민 당사자 간의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글은 전철연에서 제출한 ‘누가 철거민인가’라는 자료를 참고로 서술을 하도록 하겠다.7)

우선 이 자료에 따르면 “철거민이란 말 그대로 ‘철거를 당하는 사람’인데, 여기에는 노동자와 노점상, 영세상가 세입자, 영세공장 세입자, 무허가 가옥주, 비해당 가옥주 등 여러 계급과 계층이 포함도기에 결코 단일한 계급이 아니다. 따라서 혼재된 계급적 차이와 계급적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한다.”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첫째 주거세입자 철거민으로서 그야말로 몸뚱이밖에 없는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 시설관리 노동자, 요식업종사 노동자, 환경미화원, 보험설계사 등으로 일하면서 자본에 의해 노동기본권을 말살 당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주거세입자이면서 노동자인 이들은 건설일용직 노조 등을 제외하면 거의 조직되지 못했으므로 운동의 경험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주택은 내일의 노동을 위해 쉬어야 하는 공간임을 인식하고 계급적 요구인 영구임대주택과 순환식 개발에 입각한 가수용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현재의 잘못된 개발정책의 대안인 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둘째, 무허가 가옥 주들은 아무리 노동을 해도 집을 마련하기는커녕 번듯한 전세와 월세도 살지 못하고 불법건축물인 하우스나 판자촌 등에 살 수밖에 없었던 소외된 계층이다. 이들은 잘못된 주택정책과 개발정책, 경제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무허가 건물에 주거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거세입자들에게 주어진 권리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1989년 1월 4일 개발법이 개정되면서 이전의 불법건축물을 건교부장관이 정식 건물로 인정하도록 하였지만 그 이전에 거주하였다는 증거자료와 항공사진 자료 등의 입증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실제로 그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시행자의 고무줄 같은 잣대에 이들의 주거권을 맡겨야 하는 처지었다. 이들을 위해서는 주택이 ‘소유의 개념’이 아닌, ‘주거의 개념’이라는 의식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영세상가 세입자나 영세공장 세입자들은 일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체 노동이나 가족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위한 이윤을 창출한다. 결국 자본에 의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개발지역에서 건설자본에 의해 비해당자로 분류되는 이들도 가옥 주에서 세입자로 전락한다. 이들에 대한 보상이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발지역 인근의 땅값이 올라서 이주할 수도 없어서 이들은 투쟁할 수밖에 없다. 개발지역의 영세 상인들은 자본의 경제적인 폭력과 정권의 물리적인 폭력이 동시에 수반되어 항상 대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거 세입자와 영세상가 세입자, 영세공장 세입자, 무허가 가옥주, 비해당 가옥주는 노동자적·계급적 맥락에서 연대 투쟁할 수밖에 없다”

이상 전철연의 내부 자료인 ‘누가 철거민인가’에서 보듯이 철거민 안에 혼재된 다양한 조건과 관계들은, 주거세입자와 무허가 가옥 주, 영세상가 세입자, 영세공장 세입자, 일용노동자, 가내노동자, 노점상 등 생산 단위에서는 이질성을 가지는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대부분 철거민은 공식적인 부문과 노동자로 편입되지 못하는 광의의 노동자계급이지만 다양한 내부구성을 갖는 사회적 범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주택의 ‘소유의 개념’이 아닌, ‘주거의 개념’의 강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재개발 지역안에서 세입자 혹은 철거민들의 당면요구를 넘어 보편적 주거문제로까지 나가는 의식적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위의에서 살펴본 몇 가지 도시빈민운동을 둘러싼 논의와 유형들은 도시빈민의 계급적 범주를 간략하게 도식화 하여 소개한 것으로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초까지 활발한 논의가 학계와 활동가간에 전개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에 입각한 활동을 현재에 와서도 조직노선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의 입장들이 어떻게 조직에 반영되는지 진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상적 조직운영이 진행이 될 때 또는 투쟁이 고조되어 있는 긴박한 판단을 요할 때, 특정한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시기에는 그간 조직에 영향을 미쳤던 논의와 입장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발현되거나 평상시 그 조직의 독특한 조직문화로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한다.

가령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전국연합(주거연합)’의 경우 과거 ‘한국도시연구소’와 같은 전문적인 연구단체와 ‘기빈협과 특히 천도빈’ 과 같은 종교단체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측면이 강하다. 주거연합은 철거를 둘러싼 대응을 전개하지만 철거이후 도시공간을 둘러싼 지역사업의 강조와 주거권을 둘러싼 다양한 사업들을 펼쳐내며 나름 현재까지 종교적 색체도 엿 보인다.

반면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은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우리사회의 크고 작은 이슈가 되었던 대부분의 투쟁은 전철연에 의해 주도되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 올렸다. 대표적으로 도원동, 권선 4지구, 상도동, 오산시 수청동, 경기도 풍동, 월곡동 등의 투쟁은 철거투쟁이 수세기에 직면했던 시기 터져 나왔던 투쟁이었고 최초로 골리앗(망루)을 세우고 전쟁 같은 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나갔으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많은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구속되고, 부상을 당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철거투쟁이 끝난 후 철거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주민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전철연은 노동현장에 복무하도록 조직적으로 배치하거나 권장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9년 용산투쟁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지만 전철연의 끈질긴 싸움은 타 조직에게 경외심을 심어 줄 정도로 회원들의 조직적 결속력은 대단히 크다고 할 것이다.8)

때문에 조직의 노선과 기풍을 결정하는 근거와 배경이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조직의 최고 책임을 맡고 있는 대표자와 지도자들, 그리고 중간을 매개하는 활동가와 회원들의 계급적 기질들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 질 필요가 있다. 철거민 조직의 기풍은 80년대 초반 비공개적으로 활동해왔던 철거지역 활동가단위의 실천들이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 로 결집하고 이후 ‘서철협과 전철연’으로 이어지는 대중조직에 산파 역할을 하거나 오랫동안 빈민 활동을 통해서 학생조직과 실무자들이 철거투쟁에 복무를 해왔던 것이(물론 현재 전철연의 모든 간부와 실무자는 철거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정정도 각 조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문에 도시빈민원론을 둘러싸고 진행된 거시적 담론들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논의들이 외형적으로는 소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어떠한 형태로든 일상적인 조직문화와 투쟁을 앞둔 결정시기 그리고 주요정치 방침을 결정 할 때 판단에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시기 이러한 자료를 다시 들춰 보는 것은 도시빈민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의미 있는 실천이라 할 것이다.

4. 글을 정리하며

철거민운동을 둘러싼 오래된 자료를 살피다보면 영구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 그리고 가수용 단지와 가이주 단지를 선택하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의가 전개된다. 이러한 논쟁의 배경에는 궁극적으로 토지를 바라보는 시각차이로 확대되었고 토지에 대한 국가의 소유와 사적 소유에 대한 의견 차이로 발전한다. 이러한 논의 과정 속에서 기존의 법체계를 바꾸려는 의지가 일정정도 반영이 되어 그동안 우리사회의 부동산 주택문제의 현안들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데 있어서 철거민들의 투쟁은 자신의 이익을 넘어 이사회에 일정정도 기여한 부분이 크다.

그러나 최근에는 철거투쟁의 방식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몇 가지 부정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철거투쟁의 비타협적인 강경 대응 방식을 취하며 전술에 있어서도 철거지역 안에서 현안을 해결하려는 것을 넘어 대외적으로 시민들에게 철거의 부당함을 알려내기 위해 ‘집회 또는 가두투쟁’과 같은 방식에 중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철거투쟁이 많은 부분 한계에 봉착하자 제도적인 법체계 안에서 일정정도의 답을 찾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재개발지역의 세입자가운데 미 해당자를 중심으로 보상을 둘러싼 문제가 비공개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협상방식에서도 문제가 드러나는데 노동운동과는 달리 특별한 교섭기구가 없는 조건이기에 주로 자치단체와 건설회사 등을 중심으로 현안을 검토하고 푸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해당 철거민들의 의견이 얼마만큼 반영이 되고 또 이들이 주체가 되었는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최근 도시빈민운동 조직 안에서 불거져 나오는 불미스러운 문제가운데 많은 부분이 협상 과정 속에서 상호 소통과 이해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철거민과 상급조직 그리고 협상대상과 문제해결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협상 과정 속에서 당사자들을 대상화하거나 또는 문제를 쉽게 풀기 위해 지나치게 정보경찰과 유착하는 행위는 도시빈민운동을 근본부터 해체하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90년대 초반까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수천 명의 각 지역의 철거민들이 종묘공원에 모여 철거민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밖에도 수백 명의 청년과 학생들이 거리와 철거지역을 돌며 하계 빈민 활동과 동계 빈민 활동을 개최하였다. 군부독재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던 암울하고 살벌했던 시기에도 치열한 논의와 논쟁을 전개하며 각각의 철거민들과 활동가들은 공안기구나 정보경찰들의 눈을 피해 공동의 보조를 취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밀리에 철거민대책위와 철거민대책위 간의 연대투쟁을 모색해 나갔다. 활동가 간의 노선의 근본적 차이보다는 연대투쟁의 소중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크다는 것을 이들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각주)-----------------

1) 대표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김영석의 ‘도시빈민론’ 85년과 ‘한국사회성격과 도시빈민운동’이 아침출판사, 89년 있다.
2) 이러한 입장은 백욱인이 “도시빈민운동의 현황과 과제” 현 단계 한울 87년,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의 자료 ‘빈민론과 도시사회운동’ 87년, 을 통해 제출하였다.
3) 대표적으로 위와 같은 경향은 김형기에 의해서 주장되었으며 이밖에도 허석열, 조희연, 정건화, 등에 의해 도시빈민의 계급적 성격을 다양하게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도시빈민운동사에서 정동익의 “도시빈민연구” 아침 1985년은 도시빈민운동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4) 최우익, ‘한국 사회 도시 반프롤레타리아의 사적형성과정에 대한 일 연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논문 1989년
5) 정동익,『도시빈민 연구』 (아침 1985년) p57
6) 비공식 부문에 대한 전통적 개념정의는 K.하트가 가나를 연구하면서 사용하므로 써 확산되었으며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케냐 보고서’에 채택되어 제3세계의 발전연구와 발전정책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7) 전철연, '누가 철거민인가' 『토론문』2007년
8) 이밖에도 철거민 조직들로 ‘빈철연, 노철연, 철거민전선, 전철협’ 등과 같은 조직들이 있으나 전철연과 주거연합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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