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50m를 넘나드는 강풍을 동반한 제 7호 태풍 곤파스가 4시간 15분 동안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곤파스 바람에 아침 출근길은 지하철 정전 사태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길가의 가로수 나무는 뿌리 채 뽑혀 나갔으며 수확기를 앞둔 감, 배 등 과일은 속절없이 땅으로 떨어졌고 논의 벼는 거대한 짐승 발자국이 지나간 듯 쑥대밭이 되었다. 태풍 곤파스가 비닐하우스고 지붕이고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참상을 TV를 통해 보는 동안 신자유주의란 바로 태풍 곤파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 곤파스가 인천 문학경기장의 천막을 뜯어버리는 것이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뜯어버리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의 첨병인 이명박 정권 또한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태풍 곤파스 그 자체였다. 4대강 사업으로 위장한 한반도 대운하 사업 등을 통해 물가를 올려놓은 이명박 정권이 노량진에 나타나 물가 안정 운운하며 복숭아 2박스 사가는 모습을 보자니 곤파스 때문에 무너져 내린 벼들을 묶어세우는 농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명박 정권은 주지하는 대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이제는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무색하리만치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통해 이 땅의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시급노동의 삶으로 몰아가며 태풍 곤파스 마냥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뿌리 채 뽑아버리려고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사찰 문제로 권력의 사유화 논쟁이 일고 있지만, 문제는 권력의 사유화 정도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제 및 친척, 삼성 가벌 등 소수의 인간들과 집단들이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싹쓸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의 부와 권력을 싹쓸이한 떼강도귀족 마냥 지금 이 땅에도 떼강도귀족들이 다시 나타났다. 중형급 태풍 곤파스만 한반도를 강풍으로 쓸어간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은 경제고 서민이고 언론이고 남북관계고 환경이고 모든 것이 박살났다. 이명박 정권 자체가 중형급 태풍 곤파스였던 것이다.
태풍이 동해로 빠져 나간 후 끊어진 전선은 다시 잇고 무너진 벼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지만 3년이 다 되도록 대한민국 땅에 머무르고 있는 중형급 태풍인 이명박 정권이 몰고 온 강풍 탓에 뽑히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뜯긴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복구할 길이 없어 보인다. 강풍에 떨어져 내린 배들이 과즙용으로도 쓸 수 없어 폐기처분 되듯이 노동자 민중들의 삶 또한 폐기처분되고 있다.
그런데도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중형급 태풍 이명박 정권 앞에서 속수무책인 듯하다. 매년 여름이면 태풍은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허술한 대책 때문에 번번이 당하듯이 노동자 민중 진영의 대책 또한 아무런 변혁의 스케줄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이명박 정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듯하다. 예상대로 사회당은 선거에서 유령 취급을 당했고 얼마 전 복지 관련 두 단체들은 분열했다. 타임 오프제와 연관한 싸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태풍은 매년 여름 한반도를 찾고 선거 또한 후년에 한반도를 찾을 것이다. 그 자체로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중과 소통의 공간을 찾고 그 공간을 정치화하는데 무감한 노동자 민중 진영이 선거 시기에 뜬금없이 진보대연합을 들고 나오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시대에 좌파가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노동자 민중 진영이 대중 정치를 해야만 좌파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운동의 빙하기’ 얘기가 나올 정도라면 이젠 모든 것을 거둬들이고 새 판, 새 스케줄을 짜야 한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운동이 아니라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좌파들 또한 각 영역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러나 투쟁에서 운동으로 가는 길은 한 번도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 길은 멀고도 먼 길이기 때문이다. 2012년을 생각하는 것은 선거운동일지는 몰라도 운동이 아니다. 운동은 변혁의 기초이며 투쟁이 운동으로 전화되는 순간, 변혁의 문이 비로소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찾아오는 태풍에 허술한 대책으로 당할 일이 아니라 좌파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가고 있는 이 시기에 무엇이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인지 생각하며 투쟁을 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기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선거나 이명박 정권도 아니라 중형급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미래의 시간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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