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운동에서 차이의 운동들로!

[신간안내] 아시아 정치변동과 사회운동의 변화(조희연외, 한울, 2010)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개발독재’로부터 ‘개발독재 이후’의 사회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측면에서 독재에서 ‘독재 이후’로 변화해가는 차원과, 경제적 측면에서 ‘개발 이후’로 변화해가는 차원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후’의 과정은 일반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민주주의 과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개발독재하에서 사회운동은 독재 타도라는 공통 과제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수렴되었지만 독재 이후 및 개발 이후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분화되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열한 번째 발간한 총서 『아시아 정치변동과 사회운동의 변화』에서는 대만과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어떻게 변화·분화되고 재구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그 의미와 전망을 분석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대만의 정치체제에서 민주화 이후 대만 사회운동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고, 오늘날 신독점지배체제와 개발자본주의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또 다른 사회운동의 분화 과정을 통해 사회운동의 위기가 돌파될 가능성을 살펴본다.

“대만 사회운동은 민주화 이후 분명한 성격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사회운동에는 권위주의 시기의 사회운동이 지녔던 역동성은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새로운 모순에 대응하는 대항 이데올로기의 창출을 통한 대항 헤게모니적 실천을 하지 못하고, 생활세계 지향이나 사회서비스 실무형의 시민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머무르고 있는 경향을 보여준다.”(89쪽)

제2장에서는 민주화를 기점으로 매우 역동적인 힘을 보여준 필리핀의 사회운동을 분석한다. 특히 정체의 개방성, 국가의 억압기제, 엘리트 동맹세력, 초국적 맥락이라는 네 가지 정치적 기회구조에 의거해서 사회운동의 분화과정을 살펴본다.

“1986년 이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시민사회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평가받을 만큼 사회운동과 시민사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필리핀의 사회운동은 양적·질적으로 큰 성장을 보였다. 사회운동조직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환경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이 등장했으며, 이를 이끄는 수많은 시민사회운동단체가 서로 연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시민사회는 빠른 속도로 제도화되고 전문화되었으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개혁을 주도하는 등 그 활동의 영역을 계속 넓혀왔다.”(109~110쪽)

제3장은 타이 민주화 과정을 통해 민주화 이전과 이후라는 경계 설정의 모호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계기로 한 사회운동의 분화보다는 제도·정당정치와 사회운동들의 입장과 갈등의 접합이 빚어내는 지속적인 헌정주의의 실패를 통해 불안정한 타이 민주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운동세력들의 제도정치 해석 방식과 관계 설정 방식에 의해 민주화의 진로가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타이에서 1997년 7월 경제위기 직후, 1992년 이후 진행되어온 헌법개혁운동의 결과로서 ‘국민의 헌법’으로까지 불리게 된 신헌법이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신헌법은 1974년, 1991년 헌법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많은 점에서 발전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99명의 독립된 헌법기초위원회 위원들이 전국을 돌며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만든 1997년 신헌법은 그간 타이에서 제정된 헌법 중에서 가장 민주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신헌법을 통해 국민의 법안 발의와 공직자 탄핵이 가능해졌고, 국가인권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 헌법재판소, 의회 옴부즈맨, 공공금융위원회 등과 같이 사회운동진영이 제기한 부패나 인권 의제를 수용한 독립된 감시기구가 설립되었다. 이에 더해 군과 관료가 장악하고 있던 상원이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었고, 정당과 유권자의 연대를 결속하기 위해 소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가 도입되었다.”(174~175쪽)

제4장은 인도네시아 시민사회가 민주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왔는가를 보되,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와 지역공동체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할을 밝히기 위해 말루쿠 지역 분쟁에서의 바쿠바에(BakuBae)운동을 사례로 분석한다.

“제3세계 국가들이 대체로 독립 후 강력한 물리적 기제를 장악하고 개발전략을 전개했다는 공통점에 대해서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종족, 인종, 종교 등이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했는데도 독립투쟁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부족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면서 연대를 강화해올 수 있었다. 이러한 연대의 정신은 1만 7,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를 통합된 근대국가로 만드는 동력이 되었지만, 상호존중의 원칙이 무너지고 국가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인도네시아에 내재된 다양성은 강력한 저항운동의 동력으로 돌변했다.”(194쪽)

제5장에서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민주화 이후 아시아 ‘사회운동/여성운동’의 변화와 그 정치적 의미를 짚어본다. 여기서 저자는 전통적인 좌파 여성운동과 그 내부의 분화, 그리고 페미니스트 여성운동의 분화와 그 내부의 또 다른 분화와 갈등을 시민사회 분열과 약화의 신호가 아닌 확장과 역동성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운동/여성운동들 내부의 차이는 분열이 아닌 시민사회 내부의 권력관계를 해결하려는 역동적 힘을 의미하며,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헤게모니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고려하는 연대로서의 대항 헤게모니를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이러한 아시아 여성 하위주체의 경제적 불평등을 토대로 하여 발전하고 재생산된다는 사실은 아시아 국가들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진정한(substantial) 민주주의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근본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법적 보호가 적용되지 않으며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만이 존재하는 수출자유지역의 존재와 이를 허용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존재는 신자유주의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노출한다.”(260쪽)

제6장에서는 동유럽 시민사회를 다룬다. 이는 아시아와의 비교사회적 관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동유럽의 시민사회는 서유럽과는 그 변화 과정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오히려 아시아 국가와 부분적으로 중첩되는 지점을 지닌다. 저자는 동유럽 시민사회 분석을 통해 시민사회가 복합적 탈독점화 과정으로서의 민주화 과정에 강력한 추동력으로 확대·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아시아와 동유럽 시민사회의 공통 과제로 제시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무시되고 위로부터의 요구만이 관철되어왔던 권위주의체제가 붕괴되었다는 의미에서 동유럽은 민주화되었지만,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점차 수용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의 변화, 곧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수직적 일방침투의 관계에서 수평적인 상호침투의 관계로 전환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동유럽에서의 민주주의 공고화는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독점의 시기에 형성되었던 사회적·경제적 독점이 시민사회의 주체적 활성화에 의해서 해체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동유럽의 민주주의 공고화는 지체되고 있다.”(281쪽)

[목 차]

서장 아시아 민주화 과정에서의 사회운동 변화의 성격과 제도정치영역과의 관계

제1장 대만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의 변화와 재조직화

제2장 민주화 이후 필리핀 사회운동의 변화

제3장 타이의 사회운동과 헌정주의

제4장 인도네시아 말루쿠 분쟁지역 갈등의 특징과 바쿠바에 운동: 아래로부터의 시민 참여에 의한 갈등 중재 및 평화 프로세스

제5장 민주화 이후 필리핀 여성운동의 변화·분화와 신자유주의 대항 헤게모니

제6장 동유럽, 시민사회 발전의 지체와 민주주의 공고화의 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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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 여성운동 , 개발독재 , 반독재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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