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

[신간안내] 『법치란 무엇인가』(마리아나 발베르데, 행성:B온다, 2011)

이명박 정권이 틈만 나면 강조해온 법치는 국가나 사회를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기본원리로서 제시되었지만, 이는 법을 최상의 권력체로 규정하여 오히려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지배를 가능케 했다. 법이 이명박 정권의 이해관계를 관리하고 창출하는 만능보검이 되어버린 것이다. 검찰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소권을 남용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법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법은 본래 지배계급의 통치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명제는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평등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평등이라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평등을 의미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평등은 오히려 차별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법치 제도가 왜 중요한가

추돌 사고로 도로 위에서 시비를 가려야 할 때, 그리고 사기를 당해 경찰에 호소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자신의 삶이 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법의 체계 안에서 살고 있으며 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주택법의 범주에서 지어졌고 관리되며 세금이 부과된다. 우리가 걷고 있는 도로 역시 도시계획법이나 도로관리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나 살아가는 대부분의 행위들이 법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법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대부분의 법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상식에 부합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매우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만일 당신이 결백한데도 국가기관 중 하나에게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받게 된다면, 이때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법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불이익을 주고 당신의 삶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것 역시 법이다. 그 법에 무지하다면 당신은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또 그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당신의 방어는 허무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란 무엇인가』는 법은 자신과 관련 없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정의로워야 하는 법의 집행은 왜 폭력적인가

이 책은 강제적인 구속력이 있는 법이란 과연 무엇인지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정의함으로써, 법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우리는 법에게 어떤 도움을 받으며, 어떤 통제를 받는지 낱낱이 밝혀준다. 또한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의 집행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법 집행 과정에서 보이는 법의 정당성과 폭력성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법이 가지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법이란 문명화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각종 위험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집행 과정을 보면 공인된 폭력이 허용된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은 법을 집행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제압을 목적으로 수갑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목숨을 뺏을 수 있는 총기의 사용도 허락된다.

법의 최종 집행 기구인 법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을 강제로 구속시킬 수 있으며 법이 허용한다면 사형도 선고할 수 있다. 법의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법이 생겨난 이유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낳게 만든 근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서, 법치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책임감과 공정성, 그리고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법치 제도의 근간에 의거한 정의로운 법이란 무엇인가? 법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법이 정의로운가 하는 점이다. 가령 소소한 경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엄청난 돈을 횡령한 지능적인 경제사범이나 성범죄자들보다 더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이런 부분은 오히려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법의 집행이 정의로운가 하는 점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도 경찰에 대한 직접적인 뇌물은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법의 집행이 정의로웠는가 묻는다면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저자는 법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저 법률가들의 손에만 맡겨 둘 수는 없으며,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국민들이라면 법 집행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질 것과 정치 문제에도 깊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법이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것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순환의 역할을 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법 집행자들이 얼마나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있는지 감시할 기구와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는 인권 확립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권을 확립하기 위해 법이 갖춰야 할 기본 요소는 평등함, 정의로움, 공정성일 것이다. 그러한 요소는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면 되고, 법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지켜야하는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식하면 되는 것이다. 법은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어야 하지 최대한의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 책은 법을 보편타당한 상식 수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시대의 고통을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차 례

Chapter.ONE 법이란 무엇인가
법치 제도는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법의 모순, 법 집행은 왜 폭력적인가

Chapter.TWO 인간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사회
법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카프카의 심판
법과 관련한 혁명적 변화
공정한 법 제정을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
법치 제도의 핵심 요소, 헌법&성문법과 불문법
법이 말하는 평등의 원칙과 정치의 문제
Thinking box |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불법 행위들

Chapter.THREE 정의로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법은 실효성이 없다
서구인에 의해 철저히 도외시된 각국의 관습법
법은 정말 정의를 실현하는가
불의와의 투쟁, 그리고 정의에 가까운 법
Thinking box | 동성애를 철저하게 차별하는 수간법의 존속 문제

Chapter.FOUR 법의 집행과 경찰의 존재
경찰의 상징성이 주는 의미
누가 법을 지배하는가?
근대 경찰의 탄생과 지역의 관리
사설경비업체의 대두와 경찰의 존립 문제

Chapter.FIVE 경찰의 임무는 무엇인가
경찰의 하위문화와 경찰집단의 민주화
경찰의 국가안전유지 임무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
경찰의 질서유지 임무
기록하고 전달하는 정보 거래자로서의 경찰
Thinking box | 이름 없는 조직에서 특수범죄 전문기관으로 변신한 FBI의 변천사

Chapter.SIX 법의 해악, 법 집행에 따른 부작용
성매매,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아편과 코카인,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미국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과 그 부작용

Chapter.SEVEN 민주주의와 정의사회의 구현
경찰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의 모색
지역공동체의 치안유지,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시민의 정치 참여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Thinking box | 테이저, 전기충격 총의 사용과 부작용
태그

민주주의 , 평등 , 공정성 ,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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