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굳은 신념과 의지는 우리를 더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물가가 하늘높이 치솟아 인민들의 생활이 매우 매우 힘들어졌는데도 이 정부는 부동산 활성화에만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의 주거권보다는 부동산소유자들의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동의 정치적 위기에 따라 이제 석유 값까지 요동치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휑해질 뿐이다.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눈앞의 참담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찾게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 의해, 관료적 국가에 의해 가로막힌 사람들의 필요, 욕구, 열망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자본주의적 충동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혁의 전략은 ‘반자본주의적 충동’과 ‘탈구’가 지속될 수 있는 집단적 경험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규범과 당위에 근거한 계몽으로서의 변혁전략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공간으로부터 출발해서 다르게 살 수 있는 삶의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의 변혁전략은 이미 주어진 주체에 의한 변혁이 아니라 새로운 주체형성전략으로 다시 생각되어야 한다.
박영균은 「주체형성의 유물론적 관점: 사회적 신체와 연대의 정치학」에서 낡은 좌파의 “계몽주의적” 태도를 비판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일상적으로 체현된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라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그로부터 빗겨져 나가는 충동”에 주목한다. 이러한 충동은 일시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지속성을 가지지 못한다. 필자는 그럼에도 이 간극과 모순 속에 변혁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는 “비자본주의적 또는 반자본주의적 충동”을 “자본주의적 신체”로부터 벗어나서 “탈자본주의적 신체로” 전환하는 주체형성전략이 중요하다.
박영균과는 맥을 달리하지만 큰 틀에서 조정환은 「정치적인 것의 주체로서의 다중」에서 기존의 좌파가 주목하지 못했던 면을 부각시킨다. 그는 현대 유럽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정치적인 것”은 정치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본다. 조정환에 따르면 자본주의 지배가 삶에 대한 대의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통해 작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통적인 역사적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대의체제의 변화에 함몰되었고 새로운 사회운동은 감각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과 연결시키는 데 실패했다. 정치적인 것의 재생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정환은 민중의 다중으로의 이행을 낳는 계급재구성 과정과 정치적인 것의 재구축에서 이 주체성(다중)의 점증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서영표는 21세기 사회주의전략으로 「녹색사회주의+급진민주주의」를 제시한다. 녹색사회주의는 생태주의자들이 제기한 성장의 한계와 생태위기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결합하는 동시에 주택, 먹을거리, 교통, 에너지, 교육 등 우리들 일상의 주제들을 녹색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로부터 다양한 저항과 투쟁의 과제가 생겨난다. 급진민주주의는 이러한 저항과 투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느낌, 감정, 욕구, 열망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상의 의제를 통한 사람들 스스로의 정치주체화가 급진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이승원은 「정당 민주주의와 급진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과 연대적 실천을 위한 시론」에서 샤츠슈나이더(Schattschneider)의 “정당민주주의론”에 대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히 샤츠슈나이더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최장집과 박상훈이 제시한 정당 민주주의의 정상화론에 대한 개입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승원은 사회적 갈등을 공적 영역에서 의제화하고 조정한다는 정당정치가 간과하고 있는 주체위치를 부정당하는 사람들을 강조한다. 정당민주주의에서 “인식되지 못한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갈등의 당사자들은 곧 정당정치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이승원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고 정당정치를 포함한 민주주주의의 급진화를 주장한다. 곧 잊혀진 주체들에게 목소리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집 보론으로 마이클 하트의 「묵시록의 두 얼굴: 코펜하겐에서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이 글은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투쟁의 중심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두 구성부분인 반자본주의운동과 생태운동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들이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모색한다. 두 운동은 서로 다른 형태의 ‘공통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며 여러 면에서 상충하지만, 이 공통적인 것의 두 형태 모두 소유관계에 저항하고 가치척도를 붕괴시킨다는 특성을 공유한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두 운동이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의 토대가 되며, 그리하여 두 운동이 새로운 삶 형태의 생산이라는 문제로 합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시평 「세계공황과 새로운 사회」에서 김수행은 금융발 경제공황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노학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핵심요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는 무정부성과 이것이 초래할 수밖에 없는 주기적 공황이 경제의 금융화로 지연되고 있지만 그 폭발력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부분의 과도한 성장을 통한 경제위기의 지연은 곧 생산과 소비 사이의 넓어진 간극을 금융팽창으로 좁히는 것이며, 이러한 기형적 형태의 경제는 보통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금융자본을 살찌우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번호에는 다섯 편의 일반 논문이 실렸다.
양운덕은 「생명(관리)권력과 생명정치」에서 서구 근대주체의 신체와 생명을 문제 삼은 푸꼬의 논의와 그것을 생명정치의 틀에서 재구성하려는 아감벤의 논의를 소개한다. 푸꼬의 생명권력 개념을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푸꼬가 말하는 생명권력은 규율테크놀로지와 안전테크놀로지를 통해 생명을 관리하면서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강화·증식하고 정확한 통계와 전반적인 조절을 해 나간다고 한다.
손영우는 「프랑스 복수노조제도의 특징과 시사점」에서 프랑스의 복수노조제도의 특징을 노조들이 노동자 전체를 대표한다는 가정 하에 진행되는 자율교섭제도로 규정하고, 이 제도가 성립된 역사적 형성배경과 그 변화과정에 대해 살피고 있다.
신재성은 「헤겔의 ‘시민사회/국가론의 재고찰’」에서 헤겔의 이론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추세에 반해 그의 정치철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현실에 주목하고, 『법철학』을 중심으로 헤겔 정치이론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한다.
김종곤은 「법의 세계화 비판 담론과 이데올로기 부재」에서 단일 국가의 경계를 넘어 형성된 초국가적 법률은 법률의 주체, 법의 형식 등에서 과거의 국제법과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띤다고 본다. 필자는 초국가적 법률이 국가 독점적이던 법률 제/개정권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엄격한 형식성은 해체되고 있지만 오히려 구체적인 삶을 더욱 더 구속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오창민은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몇 년 전에 일어난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운동 사례를 소개한다. 용역업체와 광주시청 사이에서 청소노동자들은 노조결성을 통해 자신들의 노동과 주체위치를 인식해 나간다. 청소노동자들은 시청사점거, 노출투쟁, 시청공무원들의 폭력과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 출근투쟁과 1인시위, 지역 운동단체들과의 결합 등을 통해 법과 권력을 앞세운 시청에 대항한다.
목 차
주체형성의 유물론적 관점 / 박영균
‘정치적인 것’의 주체로서의 다중 /조정환
21세기 사회주의 전략: 녹색사회주의+급진민주주의 /서영표
정당 민주주의와 급진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과 연대적 실천을 위한 시론 /이승원
세계 대공황과 새로운 사회 /김수행
소말리라 해적 사태, 좌파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김문성
북아프리카,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혁명 /정은희
생명(관리)권력과 생명정치 /양운덕
프랑스 복수노조제도의 특징과 시사점 /손영우
헤겔의 ‘시민사회/국가론의 재고찰’ /신재성
법의 세계화 비판 담론과 이데올로기 부재 /김종곤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오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