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진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진보좌파를 사용하고 있고 ‘개혁적 중도 보수’나 ‘수구적 보수’ 같은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보수’와 ‘수구’라는 단어는 어떤 경우에는 혼용해서, 어떤 경우에는 배타적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보충의 용도로 쓰이며, 필요에 따라 대체되는 등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개념이 서로 충돌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 정확한 의미를 정립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와 수구』는 차분하게 보수와 수구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짚어 고찰한 학술서로서 그 핵심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개념만을 정리해놓은 단순한 개론서가 아니라 여러 예시를 통해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이 분야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저자의 학구열과 성실함으로 확보한 것이다.
풍부한 자료, 치밀한 분석
우리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저 사람은 보수적이야”, “저 사람은 진보적이야”와 같은 말을 무심코 내뱉곤 한다. 하지만 보수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선뜻 한 마디로 답변을 내놓기가 어렵다. 특히 ‘보수’와 ‘수구’라는 말에 대해서는 정확한 구별이 애매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보통 진보-보수는 대별되기 쉬운 개념이지만, 보수-수구는 혼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이 책에서는 보수와 수구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분석한 후, 개념화하여 보여준다. 동·서양의 사상가·정치가들이 남긴 저작물과 어록, 세계적 고전과 다양한 인물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여러 시대와 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뿌리와 흔적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특히 독특한 정치 사상적 지형을 가진 한국의 상황에서 보수와 수구는 어떤 작용을 해 왔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짚어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독자는 오랜 세월 동안 보수의 자리에 수구가, 진보의 자리에 보수가 위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의 뒤틀린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수구를 넘어 진보를 꿈꾼다
“변화의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에 맞서는 사람이 수구이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보수이다. 파도에 맞서거나 아니면 파도를 타는 것이다. 파도에 맞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수구는 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보수는 남는 것이다. 그러나 수구든 보수든 파도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진보의 몫이다”(358쪽)라고 맺음말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보수와 수구의 개념을 올바로 정립함으로써 진보가 진정 나아갈 길을 묻고자 한다. 저자가 꿈꾸는 것은 파도를 타고 넘는 보수와 파도에 맞서는 수구가 아니라 파도를 일으키는 진보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보수와 수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진보를 위한 책이다.
새로운 사상, 기술, 문화가 발생했을 때, 기존의 것들은 모든 수단을 다해 저항하고 억압하려하지만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역사는 결국 진전되어 왔다. 파도를 타넘을 것인가, 파도를 일으킬 것인가? 진보하는 것만이 역사의 정방향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차 례
들어가며
I. 보수와 수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보수의 개념화
2. 수구의 개념화
Ⅱ. 보수 및 수구 이념의 특징
1. 세계관
2. 인간관
3. 정치·사회관
Ⅲ. 한국의 보수와 수구
1. 보수 이념의 역사
2. 수구 이념의 역사
나가며: 파도에 맞서거나 파도를 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