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민주화 시대, 한국사회와 좌파운동 (1)

[참세상 정세좌담회](1) MB시대의 진보란? 거대한 자유주의화

[편집자주] “참세상 편집위원회”에서 격월간격으로 정세좌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좌담은 최근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2012년 정세와 관련해서 좌파, 진보운동의 과제와 방향을 정리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다소 긴 논의라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싣는다.

* 일시/장소 : 2011.12.21(수) / 참세상 회의실
* 사회 : 홍석만(참세상 편집국장)
* 참석 : 참세상 편집위원
- 김규항(고래가그랬어)
- 김혜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 배성인(한신대)
- 서영표(사회학자)
- 선지현(사노위)
- 한형식(세미나네트워크‘새움’)
* 정리 : 이상원(참세상 기자)



김정일 사후, 동북아 정세는?

사회 : 먼저,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김정일 사후 문제부터 얘기를 해보자. 한국, 미국, 중국 쪽 대응을 중심으로 한반도 관계와 미중관계에 대한 접근을 풀어가보자.

배성인 :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사망 건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문제다. 지금은 과거와 다른 방식이지만 여전히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안보이데올로기’라는 가장 큰 정치 무기가 있다. 결국 박근혜가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박근혜는 (보수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조문을 갈 여지도 없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조의를 밝힐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상을 밝히게 되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거라 본다.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한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박근혜가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제스처를 취하면 유리해 질 것이다. 그걸 풀 수 있는 게 또한 박근혜지 않을까 싶다.

사회 : 남남갈등이 생각보다 크지 않는데?

  배성인
배성인 : 사실상 남남갈등도 김일성 사망 때와는 비교가 안될 걸로 보인다. 형성된 정치지형 자체가 섣불리 접근할 수 없지 않은가? 정부도 섣불리 접근하면 대북관계가 다 깨질수도 있고, 통일운동진영에서도 옛날 같으면 분향소를 차리고 싶겠지만, 당(통합진보당)이나 선거연합이 깨질 것이 우려스러워 조심한다. 통합진보당 같은 경우에는 유시민이 큰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사회 :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배성인 : 미국은 행보를 취하기 어려워 졌다. 김정일 사후에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겠지만, 실제 중국의 대응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별히 과거처럼 북한을 제재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은 나름대로 협조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과거 같은 방식으로 강경 대응하게 되면 오히려 군부가 불안정 상태에서 위험할 수 있다.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후견인 역할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미국이 섣불리 접근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미국이 사실은 북한 내부에 있는 불만 세력을 어떻게 공작을 해서 추동할지가 남았는데, 그것도 크게 영향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건 중국의 역할, 북한의 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역할이 크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볼 때, 안정적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지현
선지현 : 외신이나 뉴스를 보면 한국을 제외한 주변 관계 국가들이 김정은 체제를 사실상 수용하여 불안정성을 최소화 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FTA(자유무역협정)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최근 동아시아 자유무역 시장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해 뛰어든 일본까지. 중국은 이것에서 일단 제외되어 상하이 기구 같은 독자적인 망을 구축하고 있지 않나. 이런 글로벌 경제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대립의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북한 문제가 걸려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에 대해서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호들갑 보다는 이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급격한 대립 가능성은 없는 건가?

사회 : 중국이 상하이 기구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거 보다 기존의 체제로 보면 “아세안+3”다. 아세안+3, +3로 하든지, 어쨌든 아세안+3의 중심축이 중국이었고, 이것과 무관하게 알짜만 빼서 판짜는 게 TPP이고 거기서 중국을 빼는 거 아닌가?

배성인 : 아세안+3에 대해 중국은 기본적인 입장에서만 참여하는 거고, 안되기 때문에 중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라시아 패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있지만, 러시아가 거기까지 접근하기는 어렵고. 아세안+3이 가지고 있는 빈 공간도가 너무 많고, 느슨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하고 대응하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FTA 축과 G2시대를 맞은 중국이 있는데, 중국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현재까지는 생각 이상으로 강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이 안정적인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중국이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을 중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FTA를 구축하고 TPP로 가더라도 중국이 맞대응하게 되었을 때는 폭발적인 엄청난 싸움으로 치달을 수도 있을 텐데,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맞붙게 되면 미국이 밀릴 거라 본다. 중국이 더 막강한 힘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한다. 경제위기가 걸려있기 때문에 미국은 과거처럼 강하게 대응할 수 없다.

사회 : 역으로 말하면 김정은 체제는 그 체제가 얼마나 공고한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미중간의 관계 사이에서 이 체제를 유지시킴으로 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명박 시대에 진보란? : 진보정당과 자유주의화 물결 그리고 나꼼수

사회 : 이제 정세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까지 당은 따로 만들더라도 선거연합은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형성된 선거연합이 무얼 이야기하는 건지 그거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해보자, 이후 정치지형에 어떤 변화를 갖게 될지? 그것이 좋으냐 나쁘냐, 진보냐 후퇴냐의 차원보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하는 걸 들어봤으면 좋겠다.

  서영표
서영표 : 큰 이야기부터 던지면 소위 ‘진보 내지는 진보 정당이 없는 진보정치’가 될 것 같다. 녹색정치, 좌파 또는 진보 세력의 자기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당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제일 우려되는 측면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통합진보정당은 진보정당이라 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격을 유지하겠지만 선거 국면에 들어가고 총선 맛을 보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빨려들어 갈 걸로 보인다. 문제는 진보신당 등 바깥의 정당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위치를 잡아주고 있느냐 할 때, 그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잘 봐야 할 부분은 박원순 서울 시장으로 인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결과를 맞을 거라는 거다. 박원순은 진보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얼굴을 한 착한 자본주의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찍은 효과가 있다. 사람들에게 이제 진보정당도 정답이 아닌거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 찍어줬더니 얘네들도 똑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투표장에 안 나오다가, 안철수, 박원순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막 몰린 경향이 있는 거지 않나. 박원순에 대한 실망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문제는 그 실망을 누가 뒤집어 쓸거냐 하는 점이다.
그들이 뒤집어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좌파, 진보들이 뒤집어 쓰게 될거라 본다. 그 사람들은 개인적인 명망을 이용해서 정당 들어가면 되고 정치적으로 성공하면 된다. 때문에 소위 박원순 시장의 서울이라는 걸 우리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규항 : 2040 이런 이야기 하지 않나. 40대, 적어도 30대 이하 세대는 기존의 보수세력에 대한 이반현상이 상당히 일반화된 것 같다. 그 세대에서 한나라, 조중동에 호감을 표하는 사람은 특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자유주의까지 무시하는 MB의 행태가 그 촉매역할을 했다.
시민이 변화하면서 이 변화가 정치에 반영되는 현상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기존 패권을 잡던 극우 부분은 빠르게 도태되고 있다. 윤여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여튼 한나라당은 빠른 속도로 자유주의화하고 있다. 민주당이나 기존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사실은 대단히 무능한 세력인데, MB 욕하는 걸로 버티다가, 박원순, 안철수로 대변되는 시민사회세력, 혹은 ‘착한 부자 세력’과 헤게모니를 다투면서 재편되는 상황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는 아주 극명하게 드러났다. 또, 진보정치세력 중 일부가 우경화해서 유시민과 통합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대한 자유주의화’라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재편이 일어나고 있고, 이는 앞서 말한 대로 MB 이후 급격한 시민의식의 발전과 그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한형식 : 거대한 자유주의화 물결이란 말에 동감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의 차별성을 어떻게 드러낼 거냐는 거다. 좌파라고 할 때 좌파임을 드러낼 수 있는 변별점은 경제적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경제정책에 있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보는데. 그게 잘 안되는 이유는 역량이 없어서다.
두 가지 문제가 계속 논의가 된다. 대안이 없고, 비판할 능력이 없고 대중과 소통하지 못한다. 좀 분리해서 생각해보면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상실했다. 신자유주의 비판에 내용이 없고 뼈대만 남아 있다. 그런 식의 비판은 ‘반신자유주의공동전선’ 등이 명목상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실제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이나 그걸 넘어선 경제 정책적 대안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부작용 몇 가지 나열하고 신자유주의는 그냥 나쁜거고, 나쁜건 다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분석하지는 못하는 거다.
2008년 이후 금융위기 이야기 하는 진보진영의 많은 담론도 분석이 아니라 객관적 기술만 가능할 뿐, 구조적 분석은 없다. 좌파 진영 내에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선수(사람)가 없다. 연구 인력이 재생산 되지 않은지 오래 됐다. 맑스주의 경제학, 폭 넓게 봐도 좌파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내 인력이 쉰이 넘은 나이든 교수까지 포함해도 인력이 10명이 안된다. 이 인력이 그걸 하는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원론적 비판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정책적으로 여기에 대한 대책이 있지 않은 이상 거대한 자유주의화 물결에서 좌파가 대응하기는 힘들 수 있다.

배성인 : 서영표 선생과 같은 맥락인데, 사노위 같은 좌파 단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홍세화 대표는 ‘진보좌파정당연석회의’를 하려한다. ‘진보단체연석회의’였으면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집단(단체)이 규합이 되었을 거다.
좌파도 자유주의자들처럼 콘서트를 해야 한다. “나는 좌파다” 같은 좌파 콘서트 하자 그랬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더라. “나는 꼼수다” 에, 꼼수가 뭐냐 이런 걸 하자고 해도 응답이 없다. 우리도 입 다물지 말자는 거다. 좌파가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기획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진영 뿐만 아니라 학문진영까지 죽는다.

  김규항
김규항 : 나꼼수는 문화적 측면에서 자유주의화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컨텐츠다. 나꼼수는 마치 광야의 지사처럼 나타나서 대중들에게 “쫄지마, XX” 하면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선도하는 듯한 폼을 잡고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자유주의화에 편승한 히트상품이다. 김어준은 10년 전부터 똑같은 이념과 목적을 가진 쇼를 계속 기획해왔다. 이번에 히트한 건 대중들의 의식변화 현상의 폭발을 반영한다.
정봉주 씨 구속과 관련한 대중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선 30년전 민주화운동 집회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나꼼수는 MB의 자충수적 패악질을 근거로 일종의 “가상 민주화 투쟁”을 선동함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라는 오늘 현실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나꼼수의 최대 공헌자는 MB인 셈이다.
어쨌든 나꼼수나 조국, 오연호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보수냐 자유주의냐의 문제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우린 진실은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의 문제라는 걸 드러내야 한다. 대중과 소통해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그러나 중요한 건 소통과 언어다. 나꼼수는 사실 내용상으로 매우 단순한 구조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고 위로 해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한국의 대중들은 지금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위로받고 싶어 한다. 뭐가 옳으냐의 문제 이전에 위로받고, 조금이라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데 거기에 나꼼수가 딱 맞아 떨어진 거다. 나꼼수의 힘은 이미 넘칠대로 넘치는 MB에 대한 반감인데 우린 MB만 넘어선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니 몇 배는 더 어렵다. 그런데 우리의 소통과 언어는 그들보다 거칠다. 이 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소통, 그리고 좌파운동

서영표 : 진보가 뭔지 궁금하다.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는데, 보수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자유주의자들까지 싸잡아서 좌파라고 낙인찍은 효과가 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중도 우파들 중에 스스로를 진보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표현할 때 ‘우리도 진보다’라고 한다. 문제는 소위 좌파 내지 진보인 사람들이 그걸 방어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어떤 이론적 무기도 없는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그냥 주저앉아 있는 거다.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좌파고 어디까지가 진보인지 모호해진다. 사실 진보, 좌파라는 말 자체가 정리하기 어렵다.

사회 : 원래 상대적인 개념이지 않나.

서영표 : 상대적인 거지만, 최소한 누구와 상대적인가를 밝혀야 한다. ‘여기까지가 진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좌파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 그것만으로는 너무 추상적이고 앙상하다.

배성인 : 학술적으로 하나만 말씀드리면 진보정당에 대한 개념규정을 다시 해야 한다. 진보정당은 계급정당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유럽 사민당 식으로 가고 있는 경향인데 확실히 개념 정리를 해야 한다. 대중적 진보정당이냐, 좌파정당이냐 확실하게 개념정리를 해야 하는 거다. 구분 없이 전부다 진보정당으로 몰아가는데 이건 학문적, 운동적으로 맞지 않다.

김규항 :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보수 세력과 정치적 자유주의 세력이 보수, 진보 역할을 해왔다. 극우 집권 이후 겨우 민주화 되어서 정치적 자유주의세력이 집권했고, 그 이후에도 정치적 보수와 자유주의가 보수, 진보를 대응하는 건 똑같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에게 진보는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인거다. 개인적으로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것도 그런 굴절된 보수 진보의 프레임이 진보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다시 보수가 집권해서 이른바 ‘최소한의 상식’이라 불리는 정치적 자유주의까지 무시해버리니 아예 “가상 민주화 투쟁”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회가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들 말한다. 물론 MB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지만 시민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때처럼은 할 수 없다. 그런데 자유주의 세력은 MB가 그때처럼 한다고 대중들을 선동한다. 초등학생이 대통령을 쥐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는 사회가 그런 거짓 선동과 대중들의 MB에 대한 미움 덕에 독재치하로 여겨지는 것이다.
보수와 자유주의 진영이 자유주의로 재편되는 현상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그동안은 보수와 자유주의가 보수, 진보를 나눠먹었기 때문에 진보가 설자리가 없었다. 노무현, 유시민이 진보고 좌파니까, 우리의 자리가 없는거 였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자유주의로 통합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 진보의 구도가 가능해 졌다. 물론 그런 구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진보가 저절로 힘을 갖는 건 아니다. 소통 이전에 좌파의 실력이나 내용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하는 건 좋은데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의 목표는 소통의 자격이나 준비가 아니라 소통 자체라는 점이다. 이쪽에서 내는 논평들이 질이 좋은데, 시민대중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물꼬가 필요하다. 대중들에게는 듣거나, 들을 수 있는 익숙한 언어가 아니다. <참세상>의 문제이기도 하고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근래 저쪽에서 대안으로 내세우는 케인즈주의의 복원이나 복지담론 같은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상황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그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차근차근 소통해나가야 한다.

  한형식
한형식 : 소통하는 방식으로 언어가 세련되지 못했다는 건 오래된 문제다.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물적 토대를 빼앗긴게 크다. 대중 매체에 좌파들이 진출하지 못하고, 좀 더 폭 넓게 진보담론이 유포되는 통로 안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이 대세다. 프레시안, 오마이뉴스가 좌파 담론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급진적 자유주의 정도의 담론일 뿐이다. 한겨레는 정치 입장이 확고하고 내부 통제도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담론을 유통 시킬 수 있는 물적토대 자체를 자유주의자들에게 완전히 빼앗겼다. 대학, 매체, 출판 등의 좌파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빼앗겼기 때문에, 이걸 다시 빼앗아 오지 않고는 상당히 힘들다. 우리가 아무리 대중에게 잘다가갈 수 있는 언어가 있더라도 그걸 소통시킬 구조가 없다.
SNS가 있다 해도, 그건 아주 미약하다. SNS가 아무리 자생적이라 하더라도 대중매체가 장악하는 기본적인 담론의 장에서 움직이지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SNS를 통해서 유통되는 담론의 주류는 이미 주류 담론의 물적토대가 생산한 것을 재생산할 뿐, 그걸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을 거의 유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걸 통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섣부른 낙관주의다. 좌파담론을 대중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물적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혜진 : 소통 능력의 부재라기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의제에 대한 분석 능력을 좌파가 상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실 정봉주보다 더한 ‘깔대기’ 다. 정봉주는 자기 잘난 척으로 깔때기지만, 사회주의나 좌파단체의 신문이나 이런 걸 보면 “자본주의가 문제고, 자유주의자들은 죽어도 안된다”라는 결론 말고는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분석은 별로 없다. 현실운동에 대한 개입력이 점차로 약해지면서 점차로 정보에 취약해지고 그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이 공간을 떠나면서 결과적으로 다시 개입력이 약해지는 악순환을 겪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 점차로 다양한 의제에 대해서 분석할 수 있는 정보력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이 지금 득세하게 된 건 담론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담론을 선점하면 정보가 모이고, 사람들 관심이 쏠린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좌파들이 의제에 대한 분석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작아지고 내용이 풍부해지지 못하면서 좌파단위에서 활동해왔던 연구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살길을 찾아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또다시 활동가 층이 줄어들면서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다.

김규항 : 소통 능력, 소통의 물적 토대는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하나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가 보자라면 다른 하나도 사라진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좌파가 자유주의자들의 좌파 행세에 오랫동안 밀리다보니 뭔가 위축된 모습들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자꾸 돌려 말하는 습관이다. 사회주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나 자본주의 반대 같은 명제를 지나치게 함부로 사용해도 거부감을 낳겠지만 아예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자유주의 의제에 묻힐 수밖에 없다. 또한 자꾸 부정어를 사용하는 경향이다. 나도 반성하는 부분인데 ‘이거다’ 라는 말을 하기 꺼려지니까 자꾸 ‘그건 아니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고 대중들은 그게 옳든 그르든 우리에게 뭔가 부정적이고 갇힌 이미지를 갖게 된다. 내가 여기선 좌파 축에도 못 끼는 사람이지만 대중들에겐 한국에서 가장 교조적인 좌파로 알려져 있다.(웃음)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

  김혜진
김혜진 : 복지 문제를 보더라도 다양한 정치세력들에게서 복지담론이 나오면 우리는 ‘이것은 그래서 한계가 있고, 지금 사회에서는 이런 점에서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면서 다른 복지담론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수식어붙이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 한나라당의 복지는 ‘자유주의적 복지’이고, 박근혜식 복지는 ‘국가주의적 복지’이고, 또 어떤 이들은 ‘사민주의적 복지’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주의적 복지에 가깝다거나, 그래서 우리의 복지는 ‘민중복지’ 혹은 ‘사회주의적 복지’라는 방식으로 자기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비교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특정한 주장에 대한 안티의 방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주장하는 담론이 어떤 내용인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해야 한다.

서영표 : 저는 개인적으로 반자본주의 내지는 이런 말을 쓰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반자본주의 이야기하고 신자유주의 반대하려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자유주의 때문에 매일매일 고통스럽게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아는가 할 때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반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하면 우리를 더 고립시킬 수 있다는 거다. 선명성이 약해서 운동 능력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선명성을 계속 강조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된다. 반자본주의라는 말이 이념적인 선만을 긋고 정치성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반자본주의라는 걸 선명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 고립될 수 있다.

김규항 : 더 고립될 만큼 반응이라도 일으키면 다행이다. 그러지도 못한 형편이다. 소통과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건 그런 이야기다. 반감을 염려해서 아예 말하지 않는 것도, 반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서영표 :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원래 없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시절에 맞게 특별하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이미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선에서 지도력을 보일 수 있었던 거다. 그때 당시에도 대중을 이끌 수 있는 담론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소위 운동세력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조건에서 굉장히 유리하게 작동한 어떤 구조적 조건이 있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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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 좌파 , 자유주의 , 참세상 , 가상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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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

    김혜진씨의 주장에 공감한다.
    변혁진영,사회주의 진영은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하자고 주장한다.
    소통이라는 기술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어떤 의제로 의떤 실천적 매개로 어떤 변혁적 강령과제를 대중에게 공감시켜나가면서 그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라는 점에서 부족하다. 그를 위한 10년 100년의 집요한 노력으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


  • 노동

    복지의 예를 들면
    "반값등록금" 문제를 사회주의 진영에서 전면으로 내건 대중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한다.-> 등록금 복지가 되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는 국가기간 산업, 재벌기업을 국유화해야한다. -> 반값등록금이 현실화되는것과 반자본 강령의 공감대를 확대한다. -> 반자본 사회주의 주체형성과 사회적 공감대가 확대된다.

    예 비정규직 문제도 이러한 원리로 제대로 의제화 하고 희망버스 처럼 줄기차게 밀고나간다. 반자본 강령과 결부해서 진행한다. --- 힘이 약할 수록 승리 가능한 의제로 접근해야한다.
    이러한 실천적의제를 중심으로 학계에서는 담론을 제대로 확대한다. 제대로 복지가 이루어지려면 자본주의로서 되는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되어야한다는 등

  • 노동

    거대한 바위를 적은 힘으로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지렛대를 걸어서 들어올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야한다. 들어올려야한다는 주장만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 시작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원래 없었다... 소위 운동세력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조건에서 굉장히 유리하게 작동한 어떤 구조적 조건이 있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지 않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생각

    변혁적 좌파는 개혁에 개입하라

  • 김박리즈

    김규항님이 주장하신 바는 타당하지만 저는 거기에 더 붙여 진보세력이 민중들, 소위말하는 2040들에게 즐거운 컨텐츠를 제공해야하기도 한다는 입장입니다.

    나꼼수의 폭발력은 단순히 흐름이 자유주의로 넘어온 것 뿐만아니라, 그것이 가지고있는 오락성덕이기도 하니까요.

    온라인 세계에서 디시인사이드발(發) 우익 '드립'들이 성행하고, 그들이 우경화가 되는것은 그들의 말의 타당성이 아닙니다. 단순히 '재밌으니까'이지요.

  • 잔당

    저도 김박리즈님의 말씀에 공감요. 대담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소통'의 언어, 수단이 바로 재미입니다. 저는 물론 좌파가 재밌지만 ㅎㅎ 그럼에도 대담을 읽으면서 어렵단 생각이 절로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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