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철거로 인생에 구멍 났다”...강제철거 피해자 증언대회

무리한 철거 이후 멈춰버린 개발사업...“주차장 만드려고 쫓아냈나”

용산참사가 발생한 용산 4구역은 참사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공터로 남아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제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 등으로 토지매매자금 등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재개발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사업이 중단된 탓이다. 또한 2010년 법원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한 관리처분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성급한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입자 내쫓기를 진행한 결과 용산참사가 발생하고 무고한 6인이 희생됐다”고 말한다.


용산 이외에도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강제철거와 퇴거종용으로 생계와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숱하지만 정작 그들은 여전히 개발사업이 중단되고 황무지가 된 주거/상가 지역에 남아있다.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와 정청래, 윤후덕, 장하나(이상 민주통합당), 오병윤(통합진보당) 의원실은 ‘개발지역피해자증언대회’를 열고 대책 없이 강제철거 당한 세입자들의 피해상황을 청취하고 새로운 주거정책을 논의했다.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증언대회에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와 내곡동 헌인마을, 부천 중3동, 김포 신곡마을 철거민들이 참석해 강제철거 피해 현황과 재개발 정책의 문제점을 증언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의 이원호 사무국장은 발표자로 나서 무리한 재개발 사업과 그에 따른 철거민들의 피해현황을 발표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금융기관이 개발계획에 참여해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담보로 장기간 대출이 이루어지는 PF(Project Financing)”를 막개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한국형 PF는 자본금이 거의 없거나 미약한 시행사들이 부지계약만으로도 대출을 통해 사업을 시행 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시행사들은 공사비 부풀리기, 분양가 올리기 등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용산 4구역에서는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긴 삼성물산과 개발자들이 긴급한 개발을 담보하기 위해 세입자들을 서둘러 내쫓기 위해 무리한 방식으로 철거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내곡동 헌인마을도 우리강남 PFV라는 프로젝트 금융회사가 시행대행을 맡아 4270억의 PF 대출을 받아 사업을 추진했으나 시장침체와 자금조달 문제로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우리강남 PFV에 참여했던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은 2011년, PF대출 이자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위기를 맞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무리한 개발계획에 따라 개발사업이 급하게 추진되면서 강제철거는 사업시행 인가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헌인마을은 2009년 11월에야 사업시행인가가 났지만 2008년 이미 용역들에 의해 강제철거가 이뤄졌다. 강제철거의 여파로 반파된 건물과 지역의 불안정성으로 높은 매출을 자랑하던 헌인마을 가구단지의 매출은 급감했다. 더구나 사업이 중단되어 반파된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아있고 강제철거 이후 가구단지가 없어진 줄 아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남아있는 업체들의 영업에도 막대한 피해가 유발되고 있다.


헌인마을 철거민인 강 모 씨는 “사업승인이 나기도 전인 2008년 08월달에 어차피 될 거(사업승인이 날 것)라며 강제철거를 당했다”고 밝혔다.

사업시행인가도 없이 강제철거가 이뤄지다보니 철거민들에 대한 이주대책과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헌인마을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던 철거민들은 점포 보증금과 판매물건에 대한 보상도 전혀받지 못한 상태에서 쫓겨났다. 오히려 집달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비를 요구받고 있다. 신곡마을 철거민인 조 모 씨도 강제철거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조 씨는 “고가의 기계를 대출로 구입했는데 입주 2년만에 대책도 없이 공장을 이주하라고 하면 빚내서 설치한 기계를 어쩌냐”고 말했다. 조 씨의 설명에 따르면 큰 규모의 기계들은 입주 당시부터 땅 속에 기계를 설치해 자리잡기 때문에 이주한 곳에서 다시 사용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일감을 마련하던 소규모 공장 밀집지역인 신곡마을은 강제철거 이후 영업실적이 떨어져 기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기계를 압류당하고 기계가 없어 다시 영업 실적이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조 씨는 강제철거 이후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고 개인의 삶이 피폐해졌다고 증언했다. 조 씨는 “보상금이 들어오니 부모자식간에도 분쟁이 생기고 이웃간에도 사이가 나빠지고, 누구는 사무실에서 목을 매, 또 다른 어떤 이는 차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헌인마을 철거민 강 씨는 “철거로 인해 인생의 공백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철거민들은 강제철거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공동체의 붕괴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

주거권실현을위한 국민연합의 유영우 상임이사는 이 같은 개발제도 문제를 “토지주택의 공공성을 우선으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소유자의 재산권을 중심에 뒀던 기존의 주택정책이 거주자의 주거권을 중심으로 하는 수요자 주임의 공급체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 이사는 이러한 정책기조를 위해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주거복지기본법’이 제정돼 저소득층과 철거민, 장애인, 고령자, 비주택거주자 등에게 주거복지 사회보장수급권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었다.

유 이사는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각종 재개발 사업을 전면 폐지하고,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여 공익성이 담보되며 주민참여에 의한 복지형 도시재생을 전환하기 위하여 기존의 도시주거환경정비법과 도시정비촉진특별법을 개정한 ‘도시재생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대 국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한 정동영 전 의원도 증언대회에 참석해 “19대 국회에서 강제퇴거 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강제퇴거 금지법이 명시하는 조항들은 상식이 있는 사회라면 굳이 법으로 명문화할 필요도 없는 것 들”이라고 지적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 규정하는 강제퇴거금지법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전 의원에 이어 19대 국회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을 대표발의한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도 “제출이 아니라 제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19대 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이 통과돼 다시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증언대회에는 용산참사 유가족인 전재숙 씨와 참사 당시 구속됐다 가석방된 김재호, 김대원 씨 등도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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