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노동자의 권리가 만나는 무대를 향해

[오늘, 우리의 투쟁]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히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국립예술단체 법인화의 산물, 그러나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던 국립오페라합창단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동지들이 4년 9개월째 싸우고 있다. 어려운 환경과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도 7년 간 노래해 온 단원들은 모집 당시 약속이었던 ‘이후 상임화’는커녕 2009년 일방적인 해체를 결정한 문화관광부에 맞서 첫 번째 투쟁을 시작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에서 연기와 합창을 전문적으로 소화할 단원의 필요성으로 2002년 창단됐다. 국립예술단체들이 법인화되기 전에는 공연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국립오페라단‧국립합창단‧국립발레단 같은 장르별 단체들이 국립극장에 소속되어 공연을 할 때 협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법인화 이후에는 100%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예술단체들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각 단체들은 성과내기 차원으로 공연 횟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자연히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횟수도 급증하여 독자적인 합창단 창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박수길 전 단장의 초안에 근거해 정은숙 전 단장이 창단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전 정권 관료들에 대한 정치적 인사 개편을 강행했고, 국립오페라합창단 역시 낙하산 인사로 신임 단장이 부임하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의 강력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를 밀어붙였다. 상시적으로 단원을 데리고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 오페라합창단,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한국 오페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인정을 받아왔던 합창단이 정권 교체로 인해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되어 버린 것이다.

노동부 일자리창출사업으로, 또다시 거리로 내몰린 예술노동자들

노동조합으로 뭉친 32명의 단원들은 다시 무대에 서는 꿈을 거리에서 펼치며, 국립오페라합창단 재창단을 요구하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내외 음악계에서 큰 이슈가 된 투쟁의 힘에 한 발 물러선 문화체육관광부는 ‘3년 이내 상임화’를 약속하며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일자리 창출사업인 ‘나라오페라합창단’으로의 우선 복귀를 제안했다.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마음껏 노래하는 무대가 그리웠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예술가들이었던, 정부의 약속을 믿고 싶었던 조합원들은 일단 ‘나라오페라합창단’으로 복귀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처 간 협의를 통해 고용노동부 예산 지원을 받는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창단한 ‘나라오페라합창단’은, 단원들에게 기본적인 연습실도 제공하지 않았고 국립오페라합창단 출신 조합원들에게 안정적인 공연 기회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3년이 지나면 상임으로 공연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1년짜리 계약과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상시적인 차별을 견디며 2년을 버텨왔다. 그러나 그들은 2년 후 더 큰 상처를 안고 거리로 내몰렸다. ‘나라오페라합창단’을 통해 사태를 우선 일단락 짓고 3년 안에 상임화하겠다 약속했던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4월 나라오페라합창단의 2차 재계약이 고용노동부에서 취소되자, 기존의 약속인 3년 이내 상임화는 나몰라라 했다. ‘3년의 고용책임’으로 말을 바꾸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나라오페라합창단의 남은 1년 고용을 책임지겠다며, 1년 뒤 계약이 종료되었을 때 어떠한 이의 제기나 단체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에 싸인을 한 사람만 재계약을 하겠다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12명의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만큼 음악계에서 이슈가 되거나 세간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정부의 약속을 순진하게 믿었던 조합원들은 조금은 단단한 노동자가 되어 투쟁의 거리에서 다시 섰다.

공공부문이 앞장서 양산하는 나쁜 일자리, 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성악과를 졸업하거나 유학을 마친 성악가들이 개인적으로 데뷔하지 않는 경우 활동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현실적으로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활동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고, 일정한 소속 없이 알아서 생계를 해결하다가 공연이 있을 때 연이 닿으면 알바로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공공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지자체 산하의 합창단이 가장 안정된 단체에 속하지만, 전국적으로 45개 정도 되는 시립합창단 중 절반은 해체 이전의 국립오페라합창단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어떠한 근거규정도 없이 불합리한 처우를 지속하다가 결국 손쉽게 해체시킨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본보기 삼아, 4대보험도 없이 소액의 기본급에 공연 때마다 몇 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시립합창단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의 각종 행사 때마다 적은 비용으로 동원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러한 현상을 마치 전국적으로 문화예술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인 양 자랑삼고 있다. 노동자들의 불안한 생존과 짓밟힌 권리는,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아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동지들은, 자신들이 나쁜 선례가 되어 이러한 시립합창단들이 양산된 것 같다며 오히려 미안해하지만, 더욱 문제는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라도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예술노동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국립합창단이나 고양시립합창단처럼 안정적인 상임화 체제로 운영되는 경우의 경쟁률은 말할 것도 없다. 결원이 날 때마다 고작 한두 명이 충원되는 형편이고, 아무리 노래를 잘 한다고 해도 비슷한 실력이라면 어린 나이일수록 유리하다.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동지들처럼 상임화 약속을 믿고 20대 젊음을 쏟아 부은 예술노동자들이 다른 상임 단체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한 조건인 것이다.


'국립'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여놓고 예술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비정규직화하는 정부 정책과 자기가 한 약속을 무책임하게 내쳐버리는 관료들에 맞서 긴 투쟁을 이어오는 동안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의 조합원은 단 4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상적인 투쟁과 더불어 1년 반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마다 혜화동 문화체육관광부 앞 목요집회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의 부당함과 예술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려내는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문제 해결에 대해 약속했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문화관광부의 책임을 끈질기게 묻고 있다. 한편 여러 투쟁사업장의 문화제에서 멋진 노래를 선보이며 긴 투쟁에 지친 동지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연대투쟁에도 열심이다.

늘 품고 살아가는 노래의 꿈과 빼앗긴 노동자의 권리가 만나는 온전한 무대로 돌아가기 위해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동지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 투쟁의 거리가 아닌 오페라 무대에서 동지들의 멋진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 날까지, 연대의 힘으로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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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합창단 ,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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