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9) 기업살인법 제정해야

[편집자 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8조. 노동자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는 안전장치를 해야지 비정규직을 투입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라도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철도공사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선로공사를 하다가 기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기차선로가 변경되었다는 연락을 제대로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알바를 하던 젊은 청년은 대형마트 냉동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현대제철에서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죽어갑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또한 많은 이들이 죽어갑니다.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에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거나 시설을 개선하는 대신, 하청으로 떠넘기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청회사의 무책임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사망했는데도, 원청회사가 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면 오히려 산재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취업을 못하게 하고 업체 계약을 해지해버려서,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산재신청을 못하도록 말리는 상황도 생깁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기업들의 관행에 치가 떨립니다. 이것을 인정해주고 덮어주는 고용노동부의 행태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목숨은 노동자들이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합니다. 유해 위험업무에 하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산재사고에 대해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을 당장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건설현장에서 대형 참사들이 시시각각 일어나고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건설업의 재해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재해 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12%(20,835명→23,349명)가 늘어난 것으로 노동부는 공식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건설현장의 산업재해가 심각하다며 장마철이나 동절기에 특히 산재예방을 한다며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건설현장 사고의 원인은 사람을 죽여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인명경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건설현장에 판치고 있는 다단계하도급 구조이다.

산업재해로 건설노동자는 목숨을 잃지만 이를 책임져야 할 기업은 거의 처벌받지 않고 있다. 실례로 이천냉동창고 참사로 노동자 40명의 목숨을 빼앗겼지만 사업주는 2,000만원의 벌금을 받았고, 노동계에서 대표적인 살인기업으로 꼽은 GS건설(2006년 9명, 2010년 14명이 산재사망)은 2012년 경복궁 미술관 폭발사고로 4명 사망자를 포함해 2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지만 200만원의 벌금을 받았을 뿐이다. 이건 처벌이라고 하기에도 낯부끄럽다. 이 벌금형을 내린 검사와 사건을 조사한 근로감독관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아무리 솜방망이 처벌이라지만 산업안전보건법(66조의2)에는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하고 있는데 무슨 조건으로 이런 벌금액이 정해졌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실례는 무수히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노동계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라’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한국의 건설노동자가 죽으면 이를 책임져야 할 기업에 부과한 벌금은 50~100만원이지만 2007년 기업살인법이 제정된 영국은 약 7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의 산재 사망자수는 영국의 11배에 달한다. 이것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이유인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기업, 이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보는 정부기관이 건설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또다른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이다. 건설현장은 현장출입에서부터 현장의 세세한 작업공정에 이르기까지 시공자인 원청사가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용자인 것이다. 그런데 산재사망사고가 나면 공사의 책임자이고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 기업이 처벌을 받지 않고, 하도급업체나 개인업자에게 책임이 넘어간다. 이것이 사고 조사기관인 고용노동부에서도 통한다.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업은 적정한 비용을 부담하고 정부기관은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 원청회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안전시설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기업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재물삼아 돈벌이를 하고 정부기관은 이를 방조하며 오히려 노동자들의 안전의식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본질을 호도하는데 열을 올린다.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를 비롯해 체불임금,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다단계하도급 구조에 있다. 건설현장에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진 6년째가 되었지만 아직도 건설현장은 음성적 다단계하도급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제받고 있고, 이로 인해 사고가 항상 곁에 따라다니며 생명을 위협하고, 골병든 몸뚱이는 60세를 넘겨 건강하게 살기가 힘들다.

기업살인법은 단순히 처벌을 규정하는 법이 아니라 사회적인 약속이다. 노동자도 인간이며,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며, 노동을 통해 사람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약속, 그 약속을 어기는 자는 사회적 처벌이 가해진다는 약속 말이다. 이를 위해 전사회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을 일회용 소모품 취급하는 자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켜내기 위해 떨쳐 일어서지 않는 한 전 사회에 뿌리박힌 노동에 대한 경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기업살인법 제정은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건설노동자들이 개죽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하여 처벌을 강화하고, 불법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하도급 구조를 끊어내어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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