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호칭으로 존중받을 권리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12) 전화 넘어 들려오는 그들의 욕설들

[편집자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11조. 호칭은 그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 하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된다.”

적합하지 않은 호칭을 사용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사장님’이라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내게 해서 도급형식으로 위장을 하고서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수법입니다. 이 때 ‘사장님’은 존경의 호칭이 아니라 권리박탈의 호칭입니다. 청소노동자들과 간병인 노동자들의 호칭인 ‘여사님’도 존경의 호칭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 표현인 것입니다.

또한 존중감이 없는 호칭도 있습니다. 단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알바!”하고 부르거나 “어이!”하고 부르는 등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들이 나이도 어리고 경력이 낮더라도 ‘소장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런 호칭의 불균등성은 평등성을 침해합니다. 서비스업종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심각합니다. 노동자들은 무조건 고객들에게 “네”라고 해야 하고 고객들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친절’이라는 이름 아래 하인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의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호칭은 생략되거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호칭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감을 갖게 하고, 서비스업종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중요한 걸음입니다.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누군가의 신상정보가 모니터 앞에 뜨는 순간 또다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만 해도 익숙해지지 못했던 업무였던지라 하루 종일 우렁차게 울렸던 전화벨소리가 어찌나 그렇게 무서웠던지. 물론 이 사회에서 남에게 돈 받고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일했던 전화 상담업무는 그 어떤 일보다도 몸도 지칠 뿐더러 사람의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

알바천국, 알바몬을 비롯한 수많은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많은 기업에서 전화 상담사를 구한다는 글이 참 많이 올라온다. 대한민국의 거대 3사 통신사부터 수많은 금융권과 보험사, 홈쇼핑, 대리운전, AS센터, 케이블 방송사 등 온갖 업체까지... 서비스업의 확대에 요구되는 서비스 수준까지 하늘을 찌르고 있는 한국 사회에선 전화 상담사란 직종은 그 어느 서비스업에서도 빠질 수없는 대규모 업무이다.

전화 상담사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소리 톤, 특정 호칭, 말 빠르기, 고객과의 대화 호흡 속도 등이다. 이것을 잘 지키며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한다. 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오직 교육만을 받았을 정도로 내용이 방대한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업무 초기엔 헤매면서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종종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야말로 업무시간 내내 가시방석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있는 와중 수화기를 넘어서 들려오는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언어폭력은 그 날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곤 하였다.

문제는 금융권의 정책상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을 억지로 상담사에게 요구하는 난감한 순간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며 그 부분은 어렵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반말과 욕설이다. 별 수 있겠나. 우리들은 끊임없이 인내를 되풀이 하는 수밖에.

그렇게 많은 전화 상담사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비속어들을 매일 같이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군가에게 나도 인간이라고 외칠 수 없었던 우리들은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 연기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며 서로를 위안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들이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의 온갖 욕설들에 그대로 노출될 뿐 회사는 직원들을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울 뿐이었다.

회사는 아침 조회마다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전화 상담사들이 진상 고객들에게 받는 피해에 회사는 모른 척하기 일쑤인데 어떻게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인지. 직원들이 정말 행복해지길 원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내뱉는 고객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처벌을 내리도록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 아닐까?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직원에게 억지로 웃으라고 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따뜻한 상담과 위로의 한마디를 보여주는 모습이 먼저 아닐까?

대부분의 전화 상담사들은 파견직에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 전화 상담사로 일을 하면 평균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던데. 안 그래도 불안정한 환경에 노동을 하고 있는 전화 상담사들은 고객들의 언어폭력에 그대로 노출되며 결국 짧은 기간 내에 일을 그만두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본격적으로 전화 업무를 시작했던 초반, 나의 미숙으로 결제를 원활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명백한 나의 실수였지만 결제는 다시하면 처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객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나에게 아버지 뭐하는 사람이냐는 말까지 쏟아내었다. 그렇게 긴긴 전화통화가 끝나는 순간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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