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싸워 함께 이긴다” 공동투쟁단 집담회

[오늘, 우리의 투쟁] 2014년, 투쟁은 계속된다(2)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2012년 7월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라는 긴 이름을 걸고 출범해, 조직과 부문을 넘어 함께 싸워온 공동투쟁단. 철폐연대에서 공동투쟁단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집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집담회는 2013년 12월 18일 오후,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진행되었으며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이정랑, 기아자동차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김수억, 쌍용자동차지부 윤충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임경택,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최일배,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현희숙,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봉혜영·유은영 동지가 참석했다.


  공동투쟁단 집담회 ⓒ철폐연대

모두 바쁘신 중에 집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각자의 투쟁에 대한 간략한 경과와 함께 소개를 부탁드린다.

- 현희숙(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콜센터 상담원들의 투쟁이고, 처음에는 위탁업체의 횡포와 부당해고 문제로 시작되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해고를 겪고 투쟁을 1년 넘게 하다보니까 이제 복직뿐만이 아니라, 내가 처음에 상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처럼 위탁업체 없이 직접고용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투쟁하고 있다.

- 이정랑(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우리는 2008년 말에 외주화를 막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집행부가 대량해고 되면서 투쟁을 시작했다. 2011년에 대법까지 판결이 나서 해고자들 중에 포기한 사람도 많지만, 12월말에 신임 이사장이 부임하면 교섭과 해고자 문제 등을 포함해 다시 투쟁을 재개할 계획이다.

- 유은영(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2012년 12월 28일에 갑작스럽게, 상담원 전체의 30%가 넘는 42명이 사전설명이나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해고를 당했다. 그 중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 8명이 복직투쟁을 시작했는데 지난해 8월 1일자로 5명은 회사와의 개별접촉을 통해 들어갔고 현재 3명이 싸우고 있다. 오늘이 마침 1주년 집중투쟁을 진행하는 날이다. 앞으로도 싸움의 주된 내용은 복직투쟁이 될 것이다.

- 최일배(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2005년 78명 정리해고 이후 50명이 정투위를 구성해서 9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2011년 5월부터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끝장농성을 하고 있다. 올해는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에 주력하며 전국적으로 코오롱 불매산행과 불매계란을 나누며 선전전을 진행했다. 현재 14명이 남아서 투쟁하고 있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쌍용자동차지부 김정우 전지부장 ⓒ윤경민

- 윤충렬(쌍용자동차지부): 2009년에 3000여 명이 정리해고 되고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한 이후 공장에서 쫓겨나 5년째 투쟁하고 있다. 현재 정리해고 및 징계해고에 대한 재판들이 진행되고 있고, 11월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이 나왔다. 대한문 분향소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옮겨서 매일 출근투쟁과 수요일마다 동료들에게 김밥을 판매하는 등 현장 투쟁에 집중하고 있다. 정리해고자 187명 중에 선도투에 결합하는 30명 제외하고 생계투쟁에 나가있는 동지들도 한 달에 한 번씩 수요일에 돌아가면서 결합을 하고 있다. 내년 겨울은 공장에서 지내자, 그런 마음으로 막판 투쟁을 하고 있다.

- 임경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전해투는 해고자단체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해고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고 연대도 수도권 중심으로, 지방은 아주 가끔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 어려움이 적지 않다. 뭔가 색다르게 투쟁을 조직해야하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다. 공동투쟁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공동투쟁단이 계속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 김수억(기아자동차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2011년 말에 기아차 해고자 4명으로 해복투를 구성하고 공동투쟁단에 열심히 결합했었는데, 2개월 전부터 기아차가 지부·지회·대의원 선거기간이어서 선거 투쟁하느라 최근 함께 못해 죄송하다. 기아차해복투는 현재, 이상욱 동지는 4월 복직 후 열심히 일하고 있고, 나는 올해 4월 복직 예정인데 회사에서 그냥 시켜줄 것 같지는 않아서 투쟁 대비를 좀 해야 될 것 같다. 이동우 동지는 작년 임단협에서 구두로만 얘기가 되어서, 신임 집행부들과 논의를 하고 기아차를 해고자 없는 공장으로 만들 수 있도록 투쟁하려고 한다. 그리고 윤주형 동지 1주기가 1월 28일이다. 공장에서 추모사업회와 1주기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구보다 공동투쟁단에 정이 많았던 우리 윤주형 동지... 기억하고 아껴주셨던 동지들에게 추모사업회 제안드려서 1주기 때에는 보고 싶은 동지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체육공단지부 이정랑 해고자 공공운수노조연맹 서울본부 부본부장, 기아차해복투 김수억 위원장,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 윤충렬 수석부지회장, 전해투 임경택 조직국장

출범 이후 1년 반 동안 정말 많은 투쟁을 함께 해왔다. 산별로 연맹으로 투쟁하면서도 공동투쟁단에 참여해 함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이정랑: 공동투쟁단의 의미는 말 그대로 힘을 좀 합해서 투쟁의 결의를 높이자는 거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투쟁이 길어지고 포기하는 해고자들이 많아지면서 소수의 인원이 되고, 조합원들의 투쟁 결합력도 떨어지면서 공동투쟁단에 참여하게 된 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공동투쟁단이 시작할 당시 국체의 투쟁은 거의 답보상태였기 때문에, 오래 투쟁한 입장에서 나 하나라도 가서 투쟁사업장에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컸다.

- 최일배: 투쟁이 오래되다 보면, 산별에 소속되어 있지만 산별 산하연맹에 집중집회를 잡아달라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들은 자기가 싸우고 있는 것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계속 투쟁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투쟁단은 특정 사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소수 인원이지만 순발력 있고 기동성 있게 집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투쟁하는 조합원 수가 적은 단위에게 더 도움이 되고 힘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제로 공동투쟁을 해보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의 구분에 따라 제한이 되는 면이 있다. 이름이 좀 길지만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을 다 넣어서 우리끼리는 구분하지 말고 투쟁하는 모든 단위들이 함께 싸우자는 의미를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윤충렬: 지금 구속되어 있는 김정우 전 지부장이, 처음 공동투쟁단 얘기가 나왔을 때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본들은 다 하나가 되어서 뭉쳐 싸우는데 우리는 왜 뿔뿔이 흩어져서 싸우냐고. 대한문에 올라와서 그걸 많이 느꼈다. 처음에 우리 쌍용차는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분향소를 차렸다. 처음엔 진짜 우리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천막도 못 치고 있었는데 연대가 와서 천막도 칠 수 있었고 계속 와서 결합하고 그러다보니까 어, 이게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구나! 그리고 봐라~ 연대가 와서 함께 하니까 되네? 김정우 지부장이, 자본도 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 하냐. 서울에 있는 투쟁단위라도 일단 해보자, 그런 얘기를 하셨었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를 해서 공동투쟁단에 함께 하게 됐고, 또 그 이전에 희망텐트라든가 그런 투쟁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일단 되는 데라도 먼저 해보자, 이렇게 하니까. 이게 굉장히 잘 되고 힘을 많이 받아갔던 것 같고. 작년에 얼마나 좋았나? 굉장히 활성화되고. 와서 진짜, 해봐야 된다. 결합해서 같이 해보면 이게 굉장히 의미가 있구나 이런 걸 많이 느낄 것이다.

- 임경택: 사실은 공동으로 투쟁하는 게 지금의 공동투쟁단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당장 사안 사안마다 다르니까 잘 규합이 안 되고 그랬었는데, 이번 공동투쟁단은 구속력 없고 자발적인데도 결합률은 다른 때보다 굉장히 좋은 것 같다.

공동투쟁단으로 함께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다면? 또 공동투쟁단이 자신의 투쟁에서 힘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 최일배: 개인적으로 JW투쟁이 많이 기억이 난다. 그때는 7월에 공동투쟁단 구성하고 서로간의 신뢰가 돈독하게 쌓이기 전이었는데. 노조가 상경해서 서초동 본사 앞에서 농성할 때 집회신고를 할 수 있는 장소임에도 사측이 펜스를 쳤다. JW에서 공동투쟁단에 요청을 해서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사측과 경찰이 경고도 하고 마찰도 있었지만, 펜스를 뜯어내고 집회와 문화제를 했었다. 그 다음에 또 펜스를 깨고 안으로 들어가서 본사 건물 입구에서 힘 있게 문화제를 진행했고, 다음날 사측에서 대화를 하자는 제안이 왔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앞에 쌍차 분향소 천막 칠 때도, 일정은 문화제가 끝이었는데 침탈이 계속되자 긴급하게 현장에서 논의하고 다른 데서 농성하던 JW 동지들까지 모두 와서 아무 준비 없이 길바닥 노숙을 한 적이 있었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주주총회투쟁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것들. 니꺼 내꺼 구분하지 않고 이게 맞다고 판단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실천하는 그런 것들이 공동투쟁단 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 현희숙: 혼자 싸우다보니까 실질적으로 생각했던 건, 내가 뭘 받겠다는 것보다는 공동투쟁단에 들어가서 내 몫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었는데 마음만큼 잘 안 됐다.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퍼질 때도 있었고 일정이 겹쳐서 못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투쟁하다보니, 정말로 심각하고 오래되고 힘든 데를 보면서 오히려 내 투쟁은 진짜 별 거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들더라. 연대라는 것, 이유를 불문하고 업종을 불문한 연대 투쟁에 대해 느끼는 게 많고, 1주년 투쟁 집회 말고는 공동투쟁단에 크게 요청을 한 적이 없지만... 한 마디로 내가 가진 비자금 같다는 생각도 한다. 공동투쟁단 자체에 감사하고, 요즘에 공동투쟁단이 좀 조용한 것 같아서 한쪽으로 좀 걱정도 되고 불안도 하고. 공동투쟁단에 열심히 합류해서 같이 키우고 같이 투쟁하고,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의 삶이 더욱 안 좋아졌기 때문에, 공동투쟁단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 봉혜영: 현희숙 동지가 말씀을 잘해주신 것 같다. 우리는 중간에 결합했고 사실 공동투쟁단 만나서 좋았던 부분이 되게 많다. 제일 좋았던 건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말, 조직을 넘어 함께 연대한다는 거였다. 상급단체와의 갈등으로 투쟁이 힘들어졌을 때 처음 공동투쟁단에 와서 그런 문제를, 서류나 공문으로도 아니고 그냥 회의 시작하기 전에 5분 정도 시간을 갖고 말씀드렸는데도 모든 동지들이 어떻게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셨었다. 어떻게 더 싸울 수 있을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을까 하는 회의감이 적지 않았었는데, 공동투쟁단이 정말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준 연대와 조직화가 큰 원동력이 됐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흐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싸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 유은영: 나는 조합원이어서 공동투쟁단 대표자회의에도 별로 들어온 적이 없고, 분회장님을 통해 돌아가는 걸 전해들을 뿐이지만 같이 한다는 느낌이 참 좋은 것 같다. 따로 있었을 때는 하기 어려웠던 일들, 그런 걸 본인들도 다 힘든데 다른 사업장들이 자기 일 제쳐두고 와서 함께 해주고, 그러면서 힘을 받고 힘을 낼 수도 있고, 그런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지부 현희숙 부지부장,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봉혜영 분회장,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유은영 조합원

가슴 아픈 일들도 있었다. 1월 말에는 기아차해복투 윤주형 동지를, 7월에는 현대차아산공장비정규직지회 박정식 동지를 떠나보냈다. 함께 투쟁하던 동지들을 먼저 보내고, 아픈 마음을 추스릴 새도 없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최일배: 윤주형 동지 생각하면 나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5월에 과천 본사 앞 코오롱 천막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 집회하고 공대위를 구성할 때 본인이 먼저 공대위 성원으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얘기를 했었다. 공대위에 결합해서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는 동지였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너무 죄송스러운 점은... 우리 공동투쟁단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랄까. 개인적인 사정을 서로 잘 안 물어본다. 예를 들면, 결혼을 했는지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다 보니까. 윤주형 동지 그렇게 가고 난 뒤에야 그 동지가 그렇게 외로웠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항상 웃으니까, 유복한 환경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야 뒤늦게 알게 되면서... 정말, 동지라는 게 뭘까. 동지를 위해서는 구속을 각오하고 투쟁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만큼 공동투쟁단이 끈끈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동지라고 얘기했던 그 동지가 어떤 상황인지조차 모르면서 동지를 말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그런 회의감이 굉장히 많이 들기도 했었다.

- 김수억: 공동투쟁단은 윤주형 동지가 힘들 때 많은 힘을 줬던 곳이었다. 내가 출소했을 때, 해고자 동지들이 생계와 여러 가지 문제들로 많이 힘들었고 또 지쳐있는 상태였다. 2011년 9월 출소 후에 기아차해복투를 만들어서 함께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해고자들한테 활기를 주고 다시 힘을 줬던 게 공동투쟁단이었다. 공동투쟁단 참가도 윤주형 동지의 제안으로 함께하게 됐다. 해고자 복직투쟁 사업으로 수요일마다 공동투쟁단 연대가는 것을 공장 안에도 알리고, 담벼락 넘어서 나갑시다 이렇게 하면서, 그때 이동우 동지도, 윤주형 동지도 활력이 있었다. 공장 안에서 받았던 아픔이나 힘듦 들이, 공동투쟁단에 함께하면서 어느 정도 치유되고 힘을 받았던 것 같고 그래서 더 공동투쟁단에 애정이 많았었던 것 같다.

박정식 동지는 아산공장에서 대법원 판결이 난 다음, 2010년 이후에 노동조합 가입해서 정말 열성적으로 활동하며 사무장까지 했다. 어머님 말씀을 들어봐도 그 판결 이후에 정규직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많이 기뻐했다고 한다. 말수는 적은 동지였지만 항상 웃으며 밝은 모습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봤고, 지난 봄 양재동 75일 노숙농성에 정말 열심히 함께 했다. 말씀들 하셨듯이, 같이 싸우고 같이 웃고 할 때에는 그 동지 마음속에 얼마만큼의 힘듦이 있고 아픔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떠난 후에야 알게 되고, 그래서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현대차에서 류기혁 동지 먼저 가시고, 그 다음에 박정식 열사 가시고, 현대중공업 박일수 동지나 이운남 동지나, 계속... 10년 동안 비정규직 열사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최종범 열사까지. 해마다,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더 이상의 죽음이 없었으면 하고, 살아서 함께 싸우자고 얘기를 하는데... 우리 내부에서 진짜로 좀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함께 투쟁할 때 만나는 밝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서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겠지만, 기아차해복투 동지들이 공동투쟁단에서 힘을 받았던 것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고 지켜줄 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故 윤주형 동지, 故 박정식 동지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지부의 김은석 동지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지부 동지들이 현장으로 복귀했고, 내 투쟁처럼 함께 한 연대의 힘이 큰 몫을 했다. 노동은 물론 다양한 연대투쟁을 함께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 임경택: 골든브릿지나 베링거인겔하임처럼, 공동투쟁단에 함께하는 동지들이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올해 9년차, 이제 10년 차가 되는 코오롱정투위 동지들, 최일배 위원장은 어쨌든 꼭 우리가 복직을 시켜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한다.

- 현희숙: 맞다, 진짜 코오롱은 반성해야 한다. 그 정도 싸웠으면 이유불문하고 불러서 노조위원장 자리 주고 평생을 책임져줘야지. 정말 회사가 뻔뻔한 거다.

- 봉혜영: 투쟁사업장 동지들은 밀양이나 다른 투쟁들이 노동과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나 경찰이 밀양의 어르신들이나 다른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했던 것들이, 주어만 바꾸면 탄압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다른 단위들에게 했던 것들이. 앞의 주어만 딱 바꾸면 탄압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똑같다, 동일하다고 할까.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거꾸로 우리가 밀양에 내려가고 어디에 내려갔을 때, 투쟁하는 동지들 좀 거리감 있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현장의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분들이 도리어 투쟁사업장 되게 과격하게 투쟁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정부에게 우리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우리랑 같은 색깔이 아닐까 현장에 가면 그런 우려 따위는 사라지더라.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공동투쟁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 역시 있을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이나 한 번쯤 짚어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 최일배: 작년에 JW지회 투쟁은 공동투쟁단이 집중해서 열심히 함께 싸웠지만, 마지막에 비밀스럽게 마무리되고 민주노조 깃발까지 내려버려서 아쉬움이 정말 컸다. 투쟁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누구도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상급단체도 아니고 공식적인 구속력도 없는 공동투쟁단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리고 공동투쟁단에 소속된 단위들이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함께 투쟁하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자신부터 가끔씩 그런 걸 느낀다. 일정이나 투쟁이 겹쳐서 다른 곳에 가야할 때면 마음은 공동투쟁단으로 더 가버린다. 어느 순간, 언젠가부터 내 마음 속에도 우리가 그렇게 타파하려고 했던 공동투쟁단만의 ‘우리끼리’가 생겨난 게 아닐까, 공동투쟁단이 또 다른 우리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 봉혜영: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막 올라오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개개의 사안들, 해고 싸움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대정부투쟁에 집중하는 게 좀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드러나는 현상에 급급하고 대응하기 바쁘다보니까, 싸움들이 분산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계속 투쟁하는 사업 단위들은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단기적인 싸움만이 아니라 밑그림을 좀 크게 그리면서 노동만이 아니라 각계의 힘을 모으는 투쟁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말연초 잠시 숨을 고르며 2014년의 공동투쟁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후의 공동투쟁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윤충렬: 전에 정규직 노조 활동을 했는데, 대공장 노조 활동가들의 인식이 대부분 그렇듯이, 솔직히 나도 대한문에 오기 전에는 우리 조합원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고 비정규직 문제를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한문에 와서 진짜 많은 걸 배우고 느꼈고, 생각이 달라지더라. 예전에 노조 활동할 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부분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 거다. 대한문에 와서 공동투쟁단으로 투쟁하면서 달라진 부분이고, 앞으로 함께하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 봉혜영: 아까 윤주형 열사 얘기를 했는데, 지난 추석에 마석에 갔었다. 사실 우리가 현장에서는 항상 밝은 것 같지만... 열사의 마음을 아주, 천만분의 일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투쟁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면서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 붓고 나면 어떨 땐 정말 집에 가기 싫다. 집에 닥 들어가는 순간 내가 오늘 했던 모든 것들이 단절되는 느낌, 그 허전함을, 어떻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그래서 현장에서는 더 밝게, 즐겁게, 오버하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냥 저 사람은 밝구나 즐겁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실은 다 똑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내 마음이 아프고 쓸쓸한 만큼 내 동지도 똑같을 텐데... 내가 나를 잘 정리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도 모르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까지도 공동투쟁단이 같이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투쟁의 큰 그림도 함께 그리고,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공동투쟁단이 됐으면 좋겠고, 거기에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할 생각이다.

- 유은영: 공동투쟁단은 ‘따로또같이’ 라고 생각을 한다. 각자 자신들의 투쟁도 따로 열심히 하고, 모여서 같이 투쟁할 때는 힘이 배 이상이 되는 것 같다. 내 경험으로는 공동투쟁단이 집중투쟁을 할 때, 그 투쟁사업장이 받는 힘은 매우 크다. 그런 것처럼 공동투쟁을 할 때는, 밀양이라든가 이런 사회문제까지 파급력을 줄 수 있게 기획을 하면 정말 좋겠다.

- 현희숙: 나는 처음에 공동투쟁단에 대해 상당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들어와서 같이 하다보니 실질적으로 나 자신도 많이 부족했고 일말의 아쉬움도 있다. 앞으로 노동탄압은 더 심해질 것이고 해고자들도 많이 생길 텐데... 공동투쟁단을 정말 키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투쟁은 어차피 갈 데까지 가는 거고, 지금까지 보여준 것 이상으로 공동투쟁단을 잘 키워서 정말 어디를 가도 공동투쟁단이 함께 하면 제대로 된 투쟁이 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 임경택: 앞으로도 정부 관료들이나 경찰들을 좀 확실히 긴장하게 만드는 투쟁, 힘 있는 대정부투쟁을 공동투쟁단이 전개했으면 좋겠다. 전해투도 이제까지처럼 공동투쟁단이 좀 더 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함께 할 것이다.

- 김수억: 처음에는 4명이라도 공동투쟁단 일정에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마음과 달리 갈수록 결합이 어려워졌다. 새롭게 결합한 동지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공동투쟁단이 좀 더 강화되고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처음에 우리가 모였을 때의 마음과 다름 없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기 투쟁사업장이 다 바쁘고 현장 사안들로 공백들이 생기기도 하고, 결국 공동투쟁단은 100%의 자발성으로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보다는 힘이 많이 실리지 않는다고 동지들이 많이 느끼는 것 같고, 그래서 새롭게 투쟁하는 동지들과 공동투쟁단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건가 하는 고민이 좀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동지들 하신 말씀들에 공감한다. 제일 오래 됐다, 코오롱이. 이제 십년인데. 우리가 올해 골든에 집중해보자 했던 것처럼 코오롱 투쟁 집중해서 승리했으면 좋겠다. 모두 급하고 소중한 투쟁이지만 정말 10년씩 해고 투쟁하는 거, 이건 계속 상징으로 마이크 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투쟁하는 동지들이 그리고 공동투쟁단 동지들이 집중해서 정말 좀 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생각한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싸움을 함께 해 온 공동투쟁단의 1년 반, 짧은 시간의 이야기로 풀어내기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벅찬 기쁨과 해방감으로 때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거리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싸워 온 날들. 힘차게 달려온 길이 언제나 전진은 아니었지만, 온전한 우리가 되어 만들어낸 빛나는 투쟁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공동투쟁단은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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