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내치는 무책임한 공공기관

[오늘, 우리의 투쟁] 화성시 방문간호사 부당해고 복직투쟁(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2013.11.15. 부당해고 철회와 공공복지 확대를 위한 방문간호사의 민간위탁철회 요구 집회 [출처: 뉴스셀]

고용률 70% 달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허구적인 고용정책이 여전히 회자되는 가운데, 기간제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2년 이상의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공공기관에서조차 지켜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한 각종의 꼼수와 원칙 없는 평가를 통한 노동자 통제가 횡행하고, 권리를 외치는 순간 노동자는 ‘계약해지’를 통해 해고자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규직화를 피하기 위한 공공기관의 꼼수, 업무대행과 민간위탁

지난해 초부터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화성시 방문간호사 전미옥씨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과 요양원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전미옥씨는 방문건강관리 사업이 시작된 2007년부터 6년간 방문간호사로 일해 왔다. 그리고 2013년 1월, 재계약기간이 지난 이후 화성시가 민간위탁한 중앙대 산학협력단 방문건강센터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방문건강관리 사업은 ‘건강취약계층 가족 및 가구원 개인의 생애주기별 건강 위험요인 및 질환에 대한 자기관리 능력 향상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2007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보건소별 전담인력이 대상별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전담인력의 안정된 고용이 실질적인 효과를 좌우하는 사업이지만 이들의 고용에 대한 노동부와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엇갈리며 2012년 12월에야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다는 방침이 지자체로 시달되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 이후에도 전국의 많은 보건소에서 평가 결과와 계약해지를 빌미로 방문간호사들을 해고해왔고, 특히 대구와 부산, 오산, 진주 등의 보건소에서는 해고된 방문간호사들의 투쟁이 지역적인 이슈가 되어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전미옥씨는 2007년 화성시청 홈페이지에서 보건소의 구인공고를 보고 업무에 지원했다. 정규직으로만 일해 왔던 전씨에게는 공고문에 적힌 ‘계약직’이라는 말보다 ‘연속고용 가능’이라는 말이 더 와 닿았다. 공공기관인 보건소에 대한 신뢰도 한 몫 했다. 사업이 시작된 2007년에는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가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 작업이 주요 업무였다. 주소와 전화번호만 가지고 하루에 몇 가구씩 대상자의 집을 찾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계하면서 느끼는 보람 때문에 일이 힘든 것도 비정규직이라는 것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업 2년차에 들어서면서 화성시는 방문간호사들과 업무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업무대행은 방문간호사가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화성시와 일대일 계약을 하는 것이었고, 방문간호사 개인의 사업자등록은 보건소에서 일괄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2011년이 되자 1년마다 재계약을 했던 업무대행 대신 화성시는 중앙대 산학협력단 방문건강센터로 업무를 위탁했다. 수년씩 발로 뛰며 일해 온 방문건강관리 전담인력의 공로로 사업은 점차 확장되고 중요성도 커졌지만, ‘방문건강관리사업의 2년 이상 근속한 전담인력을 무기직으로 인정하고 2년 이하 근속 전담인력은 무기직 전환’한다는 민주통합당의 내부 결의마저 외면하며 화성시는 직접고용 대신 민간위탁을 택한 것이다.

  2011.4 보건의 날을 맞아 현 채인석 화성 시장이 전미옥 씨에게 수여한 표창장 [출처: 전미옥]

설명도 원칙도 없는, 보람과 자존감으로 버텨낸 일터

민간위탁으로 사업이 운영되면서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매년 전국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정부합동평가가 업무 수행에 있어 제일의 기준이 되었고 차원이 다른 실적에 대한 강요가 상시화됐다.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하는 위탁기관의 생리에 따라 동료들의 업무행태도 달라졌다.

방문건강관리팀 인원 증가에 따른 행정업무와 팀원의 이직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천된 선임간호사는 어느새 내부의 권력이 되어 중간관리자로 군림하고, 동료들의 줄서기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적인 갈등과 반목이 생기기도 하고,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직접고용일 때와 달리 피복비 절감을 이유로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았고, 파스와 영양제, 혈압기, 혈당검사에 들어가는 재료 등 업무에 필요한 소모품의 지급도 중구난방이었다. 대상자들을 찾아가 건강관리를 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따랐다. 대부분 고령인 대상자들에게, 보건소가 아닌 ‘중앙대 산학협력단 방문건강센터’라는 방문간호사의 소속은 생소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직접 대면하는 대상자들에게 보건소가 아닌 낯선 기관의 이름을 대는 것 자체가 공신력과 서비스만족도를 저하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물론 민간위탁 이전에도 부당한 관행들은 존재했다. 일하는 동안 급여명세서를 받아본 적이 없어 출장비나 수당 등의 명목과 정확한 지급시기를 알 수 없었고, 지급이 되면 그런가보다 하고 받는 수밖에 없었다. 방문건강관리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이후에는 보건소의 정규직이 담당하는 각종 사업의 대상자 선정을 방문간호사들을 통해 하는 게 관행이 됐다. 돈에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사전 설명이나 통용되는 원칙이 전혀 없었다.

방문간호사들에게 밀려드는 보건소의 요구사항과 부가업무가 갈수록 많아져 노동강도도 높아졌다. 보건소의 주무관이 지시를 하면 선임간호사가 취합하는 식으로 부가업무는 상시업무가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는 센터장이 업무 자체를 관장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위탁은 형식이었지만 직접고용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적이 강요되고 동료들 간의 경쟁이 과열되었다. 대상자에 대한 내실 있는 건강관리보다 보고되는 실적과 수치화되는 평가가 더 중요한 가치로 변하고 있었다. 형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민간위탁은 방문건강관리 사업의 근간을 흔들고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일에 대한 보람과 자존감으로 무마시키며 열심히 일했다. 2010년에는 업무에 성실하고 사업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이유로 화성시장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고, 연 4회의 감사에서 한 번도 지적을 받은 적이 없을 만큼 맡은 일에 충실했다. 해당지역이 넓은 농어촌복합단지인 화성시에는, 대상가구 중 여름에는 홍수로 재래식 화장실 정화조가 넘쳐 문제가 되거나 겨울에는 폭설로 외부와의 왕래가 차단되어 긴급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무실 번호만 기재하는 대부분의 동료들과 달리 전미옥씨는 명함에 본인의 휴대폰번호까지 기재해 급한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들을 주말에까지 살뜰히 챙기며 일했다.

  부당해고 철회 화성시청 일인시위 [출처: 전미옥]

제대로 일했고, 제대로 투쟁한다

그러나 2013년 1월, 전미옥씨는 평가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했다. 6년간 일하면서 늘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왔지만 연말에 따로 계속 근무 여부를 묻는 일은 없었다. 2012년 말에도 마찬가지였고, 2013년 1월 4일 퇴근길에 센터장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 해고가 됐다. 처음에는 해고사유라도 알고, 후임자가 오기 전에 맡았던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서로 해고장을 달라는 요구에 센터장은 2012년 12월 31일로 소급한 사직서를 쓰고 나가면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온 만큼,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만족도 평가를 했다는 대상자들에게 일일이 확인을 했지만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사업내용과 지역분포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평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당해고에 대해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하였지만, 하지만 중앙대 산학협력단 방문건강센터에서는 허위로 조작된 민원과 거짓 주장으로 맞섰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마저 눈치를 보며 허위 진술을 하는 것을 보며 깊은 상처와 함께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전미옥씨가 생각하는 해고 사유는 일명 ‘괘씸죄’다. 애초에 직접고용이었던 사업이 업무대행으로 또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면서, 실적을 중심으로 한 경쟁은 과열됐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알아서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갈수록 팽배해졌다.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나중에는 심지어 동료인 선임간호사에게까지 때가 되면 금품과 선물을 하자는 제안을 거부해야 했고, 세금이나 실적과 관련해 잘못 처리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이후에는 시말서를 강요받은 일도 있었다. 일할 때는 갈등이고 불편함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실질적인 해고사유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비정규직, 부당해고의 당사자가 된 후에야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자의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전미옥씨는 1년이 넘게 화성시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며 복직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꿋꿋이 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지원모임이 결성되어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있고,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패소를 딛고 중앙대를 상대로 부당해고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월급이 많아서, 좋은 데라서 투쟁을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겨야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람과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성실하게 일해 왔던 방문간호사에서 부당함과 차별에 맞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전미옥씨, 이제는 제대로 일한 만큼 제대로 싸우고 있다. 허울 좋은 비정규직 대책을 내세우며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공공기관의 현주소, 양심과 진정성으로 일해도 불안과 위축감을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화성시 방문간호사 부당해고 복직투쟁에 관심과 연대로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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