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만도, 연대와 현장의 힘으로 각색하는 ‘노조파괴 시나리오’

[오늘,우리의투쟁]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1)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안녕하십니까? 발레오 조합원 여러분! 저는 다스지회장 임도형입니다. 저희는 2008년, 18년 어용노조를 무너뜨리고 금속노조에 가입한 사업장입니다. 2008년 7월 15일 경주지부 동지들의 연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 발레오만도 선배님들이 계셨고, 그 고마운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배님! 이제 그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의 고통을 박살내는데 다스지회 800여 조합원들이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레오 조합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에코플라스틱지회장 김태하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지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낸 세월이 벌써 4년입니다. 지난 시절 경주지부의 심장인 용강공단의 자랑스런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에코와 발레오는 이웃사촌으로 반평생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서로에 힘이 되던 우리였습니다. 현장의 변화가 있다는 소식이 저희들까지 춤추게 하고 있습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없애고 웃음과 정이 넘치는 이웃으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지회장들이 발레오만도 경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연대와 응원의 문자 중 일부다. 2010년 사측의 비생산업무 외주화 시도와 99일간의 직장폐쇄 그리고 어용노조를 앞세운 자본의 강력한 현장 통제에 숨죽여온 발레오만도.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역의 구심으로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사업장은 이명박이 박수를 보내는 ‘노사 상생사업장’으로 전락했고, 자본에 잠식된 현장의 모멸과 비참을 증언하는 노조파괴 사업장의 대명사가 되어 4년이 흘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8명의 현장조합원과 29명의 해고자들이 버텨온 얼어붙은 공장에 마침내 해빙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 연대 선전전 [출처: 발레오만도지회]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무너뜨린 자본의 공격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업체의 공식명칭은 주식회사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다. 외환위기 이후 모기업 한라그룹의 부도로 전국 7개의 공장으로 나뉘어있던 만도기계는 우량기업이었음에도 외자유치와 구조조정·노조파괴의 표본이 되어, 대량 정리해고와 저항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권력 투입 등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자유치의 걸림돌이 되는 노조를 무력화시킨 후 각종 세금 감면과 토지 무상지원 등의 특혜를 보장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통한 외자유치를 관철시켰고, 만도기계 역시 1999년 분할 매각되었다.

승용차 및 상용차의 발전기와 시동모터, 배전기를 생산·공급하는 경주 공장을 인수한 자본은 국내와 동남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진출한 프랑스 자동차 부품사 발레오였다. 고용과 노조, 단협이 승계되었지만 인수 이후 자본은 본사 경영전략에 따른 생산시스템 조정과 함께 식당노동자 외주화를 시도했다. 노조의 현장투쟁으로 외주화를 막아낸 이후 줄곧 비교적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국세감면 종료 등 혜택이 축소되는 인수 10년차를 지나며 노조가 우려했던 자본의 공격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2009년 3월, 한국인 최초로 현 강기봉 사장이 부임했고 노무인사담당 이사가 바뀌었다. 그들은 부임하자마자 며칠간의 임금체불 이후 복지 축소와 경비·식당·청소 등 비생산업무 외주화를 포함한 31가지의 축소안을 노조에 제안했다. 그해 여름 사무직 구사대를 동원한 충돌을 거치며 노사가 공동 관리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사측에 무상 지원하고 정상화되면 갚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 나머지 안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다른 마음을 먹은 자본의 탐색전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비생산업무 외주화가 좌절된 이후 2010년 1월 사측은 또다시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경비노동자들을 생산직으로 전환 배치하겠다며 현장을 도발한다. 2월 4일 사측이 일방적으로 투입한 경비용역을 몰아낸 노조는 파업을 결의하고 4일간 품질향상운동으로 태업을 진행한다. 설 연휴 기간 특근 통제는 해제했지만, 사측은 ‘설 연휴 이후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확약서를 요구하는 무리수를 뒀다. 그리고 2월 16일 새벽, 설 연휴 기간 200명 가까이 되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집합시켜 합동차례까지 지내게 하며 일을 시켰던 공장에, 기습적으로 직장폐쇄 공고문이 나붙었다.

  직장폐쇄 10일차, 공장 앞에 게시된 사측의 결의문 [출처: 금속노동자(신동준)]

‘노조파괴 시나리오’, 자본·정부·검경의 합동작전과 창조컨설팅의 마름질

자본의 공격이 있기 전까지 발레오만도지회는 경비·식당·청소노동자는 물론, 통근버스 운전노동자까지 모두 조합원인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었다. 직장폐쇄 이후 사측은 작심하고 노조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일체의 노사교섭을 거부한 채, 업무복귀를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 물대포와 소화기까지 동원한 폭력을 휘둘렀다. 천년 고도 경주의 용강공단에서는 매일 전투와 같은 싸움이 이어졌고, 이는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폭격이었다.

사측이 불법적으로 동원한 용역의 폭력은 경찰의 방조 하에 묵인되었고, 그렇게 당하고 깨지는 노동자들을 지켜보던 경찰은 상황에 개입해 수십 명씩을 연행해갔다. 검찰은 투쟁의 기세를 꺾고 연대파업을 차단하기 위해 금속노조 경주지부를 압수수색하고, 발레오만도지회와 금속노조 경주지부 핵심간부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노동부는 아무런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직장폐쇄를 비호하며 사측의 편에 섰다. 그 사이 사측은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이라는 어용조직을 만들어 현장을 장악했다.

자본과 정부가 합작한 민주노조 무력화가 일단락되자, 현장에는 소위 노노갈등이 불거졌다. 두 달 이상 직장폐쇄가 강행되는 가운데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은 업무에 복귀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23년간 민주노조 조합원이었던 노동자들은 사측과 어용노조가 유린하는 현장에서 개별화되었다. 직장폐쇄가 끝나자 대량해고와 대량징계 그리고 손해배상이 가해졌다. 621명이었던 조합원은 불과 두 달 만에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자본이 겨냥한 노조파괴는 치밀한 준비와 전방위적인 공세로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2011년 8월,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의 조직형태 변경 총회는 무효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있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12년 가을, 국회 용역폭력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창조컨설팅이 총대를 메고 자본·정부·검경이 합작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은수미 의원에 의해 폭로되었다. 발레오만도 직장폐쇄와 관련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이 작성한 문건이 그대로 창조컨설팅에 제공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포항지청이 이를 시인했지만, 커넥션 의혹의 당사자인 근로개선지도과장은 이후 경남 마산고용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12월말 검찰은 발레오만도를 비롯, 창조컨설팅에 노조파괴를 사주한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금속노조의 고소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2014년 4월, 금속노조는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노조파괴 사업주가 창조컨설팅으로 입금한 금융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창조컨설팅은 11개 계좌를 통해 금속노조를 포함한 십여 개 사업주들로부터 80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역시 4억 원 이상을 노조파괴 대가로 지불했다. 이는 2012년 고용노동부에 의해 공인노무사 자격이 취소된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상무가 자격 회복을 위해 제기한 소송의 재판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것이었고, 2013년 6월 금융기관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였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삶을 유린하고 파괴한 명백한 불법에 현재까지 내려진 처벌은, 정부와 관계당국의 비호 아래 자본의 사주를 받아 노조파괴를 ‘컨설팅’한 두 노무사의 자격 취소가 전부다.

  2013.8.13. 노조파괴사업주 처벌촉구 금속노조 결의대회 [출처: 발레오만도지회]

자본의 의도가 관철된 현장에 도래한 노동자의 지옥

직장폐쇄가 끝난 후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는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주목하는 ‘노사화합의 장’으로 등극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에서는 연중 파업에 염증을 느낀 노동자들이 자진해서 금속노조를 탈퇴했고, 그러자 기적처럼 2년간의 적자를 벗어나 2010년 180억의 흑자가 났으며 프랑스 본사에서는 신규투자를 약속한다. 이에 화답하듯 어용노조는 2년 연속 무분규를 약속하며 ‘임금협약 위임식’을 통해 사측에 백지위임을 진상한다.

2011년 5월말 이명박은 라디오연설을 통해 유성기업의 파업을 불법이라 매도하고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를 ‘모범사례’로 언급하며 화룡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부임한지 1년 반 만에 ‘전투적 노조’의 기세를 꺾어버린 강기봉 사장은 ‘노사상생’을 일궈낸 공로를 인정받아 ‘2011 올해의 CEO 대상’의 영예를 안고, ‘조직 소통’의 달인이 되어 각종 강연회의 연단에 선다.

저들의 상찬이 고조되는 만큼 현장의 침묵과 고통은 깊어져갔다. 석 달 여의 직장폐쇄는 사실상 어용노조의 장악력을 생성하기 위한 현장 재조정의 기간이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신규채용이 없었던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짧게 잡아도 15년 이상 함께 일해 왔고, 무엇보다 ‘당연하게’ 민주노조 조합원으로 함께 싸워왔다. 그러나 생계의 무게를 볼모로 삼은 자본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관계와 세월의 무게마저 날려버리며 노동자들을 기계에 가까운 상태로 세팅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 돌아간 공장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을 위한 말과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직장폐쇄 이전보다 인원은 100명가량 줄었지만 생산물량은 오히려 늘어났고, 금속노조를 탈퇴하자 급등했다는 생산성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의 다른 표현임을 체감하며 일해야 했다.

그럼에도 사측의 의도를 따르지 않는 소수를 위해서는 특별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금속노조 미탈퇴자를 괴롭혀 탈퇴를 종용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굴종을 유지하기 위한 ‘지피지기TFT팀’과 ‘개선TFT팀’이 그것이었다. 극소수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작업 현장에서 떼어내 한여름 뙤약볕 아래 풀 뽑기를 시키고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페인트칠을 시켰다. ‘개선TFT팀’은 지금껏 4년째 운영되고 있다. 어렵사리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전직원 세뇌교육도 함께 진행되었다. ‘화랑대교육’이라 이름 붙인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사측은 초현실의 긍정을 주입하고 서로의 고통에 눈감게 만들었다. 이 역시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수년간 지속된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2012년부터 현장에 남은 열 명도 안 되는 조합원들이 공장 밖의 해고자들과 함께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3월과 5월에는 지회 조합원의 노조사무실 출입과 노조활동 등을 보장하라는 법원의 잇따른 가처분 결정이 났고, 이행하지 않는 사측에 맞선 투쟁을 벌여냈다. 든든하게 뒤를 봐주는 관계당국을 믿고 기세등등한 사측은 급기야 노동자들에게 농약을 뿌리고 동원한 용역들에게 폭력을 사주하며 ‘개값’을 물어주겠다고도 했다. 저들은 그렇게 선을 넘었다.

  공장 철문의 호소문들 [출처: 발레오만도지회]

금속노조 조합원 권리복원 투쟁, 현장을 바꾸는 ‘인간선언’

노조파괴는 결국 인간과 공동체의 파괴였다. 인간이 모인 민주노조를 깨고 기계에 가까운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노조파괴 시나리오였다. 끝을 모르는 자본의 탐욕에 맞서 인간답게 일하며 살고 싶은 한 사람 한 사람 의지의 총합이 바로 노동조합이 되었다는 것을, 지독하게 강요되는 굴종과 안간힘의 저항 속에서 노동자들은 깨달았다. 그리고 자본의 칼춤 아래 고통의 시간을 버텨온 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여름 투쟁과 합의를 통해 공장 출입이 재개된 해고자들이 선전전에 합류하면서 옛 동료들과의 접촉이 가능해졌다. 그런 가운데 3월 하순 금속노조 단체협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현장이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과 단체협약 그리고 부당해고와 임금까지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각종 소송에서 발레오만도지회는 하나하나 이기고 있지만,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인정할 수 없다며 사측은 몽니를 부리고 있다. 이에 지회는 사측의 의도로부터 이반한 노동자들을 ‘금속노조 조합원 권리복원 확약서’를 통해 조직하기 시작했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그 수는 300명을 넘어섰다.

치밀한 자본의 통제에도 끝끝내 외면할 수 없는 마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진진한 바람이 만나 일궈낸 변화다. 현장 노동자와 해고자를 합쳐 서른 명 남짓, 고통을 감내하며 싸워온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지와 수십 년 함께 지역을 지키며 서로의 투쟁을 엄호해 온 연대단위의 중단 없는 싸움이 있었기에 맞이하게 된 변화다. 참담한 소식이 하염없이 줄을 잇는 2014년 봄, 투쟁으로 맞이하는 발레오만도지회의 벅찬 승리를 고대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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