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1.23.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위풍당당' 문화제, 세종호텔노조 김상진 위원장 ⓒ곽세영 |
2006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었다. 어떠한 변화들이 있었는가.
사측에 기울었던 전임 노조위원장이 15년을 하고 물러났고, 나름 비정규직 문제와 노조의 민주적 운영 등을 공약하고 당선이 됐다. 전에는 노조위원장이 회사로부터 법인카드를 받는다든가 전임자 수당 같은 걸 따로 받는다든가 하는 게 있었는데, 그런 부분을 없애면서 과거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했고, 이전에 없었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등을 진행하면서 나름 민주노조의 원칙을 살려내려고 했었다.
노조위원장을 맡기 전에는 나도 의식이 별로 없었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우파적인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용산의 노동자교육센터를 소개받아 찾아갔는데 첫 강의가 하종강 선생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내가 완전히 한 쪽만 보면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어쩌면 기회가 있었는데도 거짓이라고 배척하고 외면했던 진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바뀌기 시작한 거다. 노조위원장을 하다보니까 노동운동 내의 상황들을 유심히 보게 되고, 2007년 이랜드 싸움이 터졌을 때는 우리 호텔도 내가 공약한 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었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니온샵이었고 내가 좋은 방향으로 잘 하면 노조가 민주화될 것이고 조합원들의 운동적 참여도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민주노조의 힘은 조합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조합원 교육을 배치해서 하종강 선생이나 허영구 선생, 김진숙 지도위원 같은 분들을 초대해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한국노총이어서 집회 자체가 별로 없고 실천투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활동하면서 노동절 때 간부들 몇 명이랑 같이 민주노총 집회 가고 그런 식으로 활동을 했다.
세종호텔 투쟁의 배후에는 사학비리의 대명사 주명건이 있다. 현장에 끼치는 영향은 어떠했는가.
노조위원장을 시작한 때는 교육부 감사에서 주명건의 비리 혐의가 밝혀져 쫓겨나고 세종대학교에 임시이사가 파견되면서 세종호텔 경영진도 바뀐 시기였다. 참여정부 시절이다 보니 소위 민주당쪽 인사들이 많아서 이전의 경영진들보다는 상대하기에 수월한 측면이 있었고 기존 계장급까지의 연봉제를 다시 호봉제로 돌리는 등 노조의 요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2008년에 주명건의 복귀 시도를 막아내기 위해 사측이 소위 주명건파에 대한 정리해고를 계획했지만 노조가 나름 싸워서 막아내기도 했었다.
사측은 인사권을 남용해 일부를 고속 승진시키면서 충성심과 위화감을 조장하며 현장을 관리해왔고, 임시이사 체제에서는 기존에 누락된 직원을 승진시켜 형평을 맞춰주다 보니 호텔 규모에 비해 중간관리자가 많은 편이었다. 부정비리 혐의로 물러날 당시 주명건 회장은 세종호텔의 자잘한 재정 운용까지 장악하고 있었고, 사장이었던 친동생이 배임죄를 각오하고 폭로한 공사금액 과다책정과 리베이트 수수 등의 범죄사실 혐의에 대해 검찰조사까지 받았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09년 7월 주명건이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사기저하가 컸다. 주명건 회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주명건 회장 복귀 이후 구조조정 시도가 시작됐고,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가.
2009년 7월 주명건 회장 복귀 직전에 기존 단체교섭을 마무리하면서 임금 동결 주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인위적인 외주화·구조조정 및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다. 2009년 말에 당시 2년간 연체된 연차수당이 있어 조합원들의 위임장을 받아 지급을 요구하고 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했는데, 회사가 부서장들을 통한 개별 접촉으로 조합원들에게 취하서를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노조가 간부들 중심으로 활동하며 조합원들과의 현장 소통에 취약한 부분이 있었는데, 200명 중 30명 정도만이 버텼고 회사는 그런 과정을 통해 노조의 조직력을 확인한 거였다.
2010년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회사가 지난해 마무리한 교섭안을 뒤집으면서 개악안을 내놨다. 과장급까지 연봉제 확대, 고용안정협약 내용 개악, 비정규직 기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 등을 핵심적으로 요구했다. 교섭이 파행으로 흐르고 간부들 중심으로 매일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고 파업을 준비하면서 회사가 일부 양보를 하며 물러섰다. 노조도 일부 양보를 했지만 어쨌거나 임·단협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는데, 회사는 2011년 초부터 노조를 깨야겠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 같다. 2011년 초부터 인사권을 가지고 노조 간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행 중이던 임·단협 교섭을 미루기 시작하더니 7월 초에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당시 노조위원장 임기가 2011년 말까지여서 우리는 회사가 사측 후보를 세워 경선을 붙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예 분리하는 전략을 택한 거였다. 호텔 현장은 절대다수가 어용노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복수노조 시행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봤던 측면이 있었다. 노사관계는 세력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역으로 이용당할 수 있는 건데, 오판이었다.
2011년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투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1년 초부터 어느 시기가 되면 민주노총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복수노조 설립 이후 회사가 본격적으로 교섭을 해태하면서 부서 간부들을 이용해서 조합원 빼가기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복수노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있어서 엄청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한국노총인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투쟁을 할 수도 없어서, 2011년 10월에 민주노총 전환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전 9월에 회사는 판촉팀에 지급되는 임금성 판촉수당을 일방적으로 실비정산 비용으로 바꾸면서 여기에 대해서 진정을 낸 조합원 4명을 인사발령으로 부당전보했다. 그 중 한 명은 사직하고, 세 명은 그때부터 인사명령을 거부하고 부당전보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비정규직 세 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해놓고 이행하지 않고 계속 끌고 가는 부분이 있었다. 회사는 이 사람들이 일용직이기 때문에 계약직 기간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고, 우리는 계약직이나 일용직이나 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1년 넘었으니까 정규직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합의했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투쟁으로 바꿔내야 했다.
▲ 세종호텔노조의 투쟁을 알리는 다국어 선전물 [출처: 철폐연대] |
2012년 38일간의 총파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는가.
복수노조 설립 이후 조합원들을 빼간 회사가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수노조인 세종연합노조와 교섭을 하면서 임금 인상을 합의했다. 2011년 8월에 우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단체교섭응낙가처분에서 승소해서 교섭을 재개했는데 12월말까지 진행하다가 결렬됐다. 2012년 1월 2일에 최종 결렬된 후 다음날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는 제대로 된 투쟁경험이 없었고 사실상 37년 만의 첫 총파업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두려움들이 있었다. 회사가 협박도 많이 하고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쯤 지나면서는 이탈자가 발생하고, 로비농성을 지속하면서 대체인력이 투입된 부서 타격투쟁을 주로 벌이면서 구사대랑 물리적인 충돌도 벌어지고 농성장이 침탈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서비스연맹과 세종대 생협 등이 주로 연대했는데, 파업 소식이 알려지면서 쌍용차·한진·기륭 등 투쟁하는 동지들이 많이 왔다. 1월 말에는 마침 투쟁사업장들이 ‘희망뚜벅이’를 시작하면서 재능에서 출발해 밤 일정을 세종호텔에서 진행했는데, 연대 대오가 로비를 꽉 채울 정도였고 구사대와 거의 치고 박고 싸웠다. 이후 2월 8일에 끝장 교섭을 하기로 했는데, 당시 수원 일정을 돌고 있던 ‘희망뚜벅이’에 연대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고, 장기간의 로비 점거도 그렇고 대규모 연대도 회사 쪽에 부담이 됐던 것 같다. 결국 2월 8일 최종 교섭에서 비정규직 4명은 면접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부당전보당한 3명의 징계 양정은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인사권 행사시에는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공정하게 하고, 2009년에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을 준수하겠다는 것을 명문화화는 등의 내용으로 합의를 했다. 부당전보를 철회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당사자들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조합원들 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함께 결정해서 파업을 종료했다.
2013년 봄부터 다시 투쟁에 나섰다. 계기와 쟁점은 무엇이었는가.
파업 종료하고 복귀하자마자 회사가 부당전보자 3명 중 2명에게 정직 6개월과 3개월의 징계를 했다. 한명은 파업 후 사직서를 썼고, 재심 이후에도 정직 6개월, 1개월의 징계가 확정됐다. 그리고 6월에는 파업에 참여했던 계약직 노동자가 1년이 되어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계약 해지를 통한 해고를 했다. 당사자가 생계담당자여서 파업기간 중에 복귀를 하고 이후 세종연합노조에 가입했는데도 사실상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한 것이었다. 총파업 투쟁의 피로감이 남아있는 상태여서 바로 투쟁을 전개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을 다독이고 조합원들을 독려하면서 다시 투쟁을 결의하며 2013년을 맞았다.
그런데 연초에 이전의 합의로 과장급 연봉제 대상자가 된 조주보 조합원이 동의서를 안 쓰고 버티니까, 회사가 아내인 이동신 사원(당시 경리직으로 비조합원 신분)과 조합원 2명을 룸메이드로 부당전보했다. 총파업 당시 부위원장이었고 노조 활동에 열심인 조주보 조합원이 연봉제를 거부하니까 우회해서 아내를 공격한 것이었고 조합원 2인에게까지 일방적인 부당전보 인사권을 행사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었다. 조합원 2인은 일단 인사발령을 수용하고, 조주보 조합원의 아내인 이동신 조합원(현재는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은 3월부터 거부하고 버티다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회사가 승소한 뒤 징계위원회를 통해 작년 11월에 해고됐다. 이러한 현안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2013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1인 시위를 시작했고, 5월부터 부당해고와 부당전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내걸고 목요집회를 시작해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이후의 현장 상황 그리고 향후 투쟁의 계획과 전망은 어떠한가.
지난 8월 28일에 세종연합노조가 회사와 직권조인으로 임·단협 합의를 했다. 임금 동결과 특별격려금 100만원 지급, 계장급까지 연봉제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폐지, 노동조합 가입 범위 계장급 이하로 축소, 직무수당으로 지급하던 봉사료제도 폐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통로는 아예 막혔고 기껏해야 선별적으로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다. 이전에는 비정규직도 최저선을 정해 호봉제를 적용했는데 연봉제로 바꿨고, 계장급까지 연봉제가 확대됐으니 단계적으로 주임과 사원까지 확대하면 이후에는 100% 연봉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전반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엄청나게 후퇴시킨 합의다.
합의 이후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세종연합노조가 어용인 줄 알지만 회사의 압력 때문에 넘어가있는 조합원들의 분노가 상당하다. 세종호텔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탄압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적극적인 재조직화 대신 노보 등을 통해 회사의 의도를 알리고 폭로하는 선전 활동을 많이 해왔다. 이번 임·단협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후에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알려내는 게 중요하다. 당장 내년에 교섭을 한다면 세종연합노조 위원장이 연봉제 적용되는 계장인데, 주임과 사원까지만 적용되는 호봉제를 위해 얼마나 열의 있게 교섭을 하겠는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2009년까지는 우리는 동급호텔 중에서 임금도 단체협약도 나쁘지 않았다. 비정규직도 일정 기간 지나면 다 정규직이 됐고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괜찮은 노동조건이었는데, 지난 5년간 권리와 처우가 지속적으로 후퇴해왔다. 이전에는 못 느꼈겠지만 조금씩 빼앗기다 보니까 이제는 세종연합노조 조합원들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술렁이는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해고자 복직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싸울 계획이다. 조합원들이 2명의 부당해고자 복직을 위해서 끝까지 함께 싸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감 없이 세종연합노조로 넘어가있는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조를 강화하면서 단체협약을 복원하고 노동조건을 변화시키는 싸움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짧은 기간 안에 현실이 되면 좋겠지만 길게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 2013.9.26. 세종호텔노조 투쟁승리 서비스노동자 결의대회 [출처: 철폐연대] |
김상진 위원장은 1992년 세종호텔에 입사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호텔노동자다. 혈기왕성한 이십대에는 야간 당직을 도맡으며 열심히 일했고 이후 점차 현장 관리를 총괄하는 위치까지 승진했다. 하지만 2003년 불거진 경영권 싸움으로 일터는 혼란에 휩싸였고, 그즈음부터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2005년 간부 활동을 시작해 2006년 2월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이후, 30년간 어용으로 길들여졌던 노동조합을 민주화하고 사측의 구조조정 시도에 맞선 투쟁을 지속하며 세종호텔노조를 이끌어왔다. 올해 말이면 3선의 임기를 마치고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 돌아갈 김상진 위원장의 활동 속에는, 자신과 조합원들의 삶이 변화해 온 과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세종호텔노조는 현재 조합원 수가 36명인 소수노조다. 총파업 이후 2년 반 넘는 기간 동안 불이익과 탄압을 견디며 꿋꿋이 노조를 지켜온 조합원들 그리고 갈등과 두려움을 떨치고 세종연합노조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일부 조합원들이 꾸준히 현장의 싸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십년 이십년 근무하면서도 각자 일하기에만 바빴던 노동자들이 38일간의 로비점거농성을 통해 벅차게 하나 되는 경험을 공유했다. 호텔 밖 세상에는 별 관심 없었던 노동자들이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소식에 기꺼이 달려온 연대의 마음을 뜨겁게 체감하고 투쟁 현장에 함께 한다.
이만큼 오는 동안 여느 현장과 다를 바 없이 누군가는 흔들리고 누군가는 돌아서고 누군가는 떠나갔다. 하지만 늦게나마 걷게 된 민주노조의 길을 이제는 잃지 않으려는 조합원들이 동지애와 자존감으로 서로를 지키며 버텨왔다. 그렇게 투쟁의 시간을 채워온 서른 명 남짓한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이, 회사가 잠식해 온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저지선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일상이 된 탄압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바꿔낸 동지들, 노동의 활기로 되살아날 현장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한 동지들의 투쟁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