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왼쪽으로 한발 더

[독자투고] 희망버스의 발랄함과 ‘자본주의 변혁’의 공감대

얼마 전 신문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에서 기자도 말하더군요. 해결된 줄 알았다고. 그동안 잊고 있었다고. 저도 그랬습니다. 희망버스, 그 위대한 승리, 그 기억만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보도된 내용은 절망스러웠습니다. 1년 내 복직, 손배소 등 소송 취하, 생계비 지급, 무엇 하나 이행된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회사에는 투쟁하던 노조와는 다른 또 하나의 노조가 생겼고, 조합원의 70프로가 새 노조로 옮겨간 상태였습니다. 새 노조의 위원장은 김상욱. 투쟁을 교란시키고, 기만적인 불법 합의를 채결했던 채길용 지회장 밑에서 집행부를 하던 자입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회사정상화와 민주노조사수를 요구하며 7일 아침 부산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출처: 부산양산=유장현(금속노조)]

압도적으로 정투위의 차해도를 당선시켰던 조합원들이, 불과 몇 달 만에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신생 노조로 옮겨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조합원들 전부가 자본의 논리에 투항한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거니와, 사실도 아닐 것입니다. 곤란한 생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의 전망, 계속되는 휴업, 모든 게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조합원들을 떠나보낸 정투위 동지들의 심정, 그들을 남겨 두고 새 노조를 선택한 조합원들의 심정, 모두 절절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진 자본의 우두머리가 국회에 불려갔습니다. 생중계 카메라가 그를 비췄고, TV 모니터에서 여야의 국회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추궁했습니다. 더러 호통도 쳤습니다. 국회는 권고안을 내놓았습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던 노동자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협상 자체를 거부하던 한진 자본에게는 양보임이 틀림없는 협상안이 체결됐습니다.

5차례에 걸친 희망버스 덕에, 희망버스 덕에 불붙은 여론을 의식하던 정치인들 덕에, 그리고 홀로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의 용기 덕에, 한진 자본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100% 완벽한 승리가 어디있겠는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냥 싸우자고 할 수도 없었거니와, 명색이 국회까지 나선 마당에, 심지어 보수 언론마저 거드는 마당에, 설마 또다시 한진 자본이 약속을 어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세상만사 그렇듯이,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 결국 기업의 경영 행위는 자본가의 몫이고,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가 사는 것이고, 회사가 휴업상태에서 벗어나야 고용도 이뤄지는 것이고, 그러므로 노동자는 평소에는 최대한 회사가 이윤을 뽑아내도록 협조해야 하고, 회사가 불가피하게 정리해고를 감행할 때는 최대한 보상을 받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현명한 것이다.

다른 하나,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경영은 사회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의 이해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그래서 자본가는 이익을 남기는 데도 노동자는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고,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제도권 권력에 기대거나 눈앞의 협상에 연연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러므로 노동자 스스로가 나서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지양하는 변혁적 운동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전 두 번째 방안이 옳다 생각합니다. 생산수단이 사적 자본에게 귀속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암만 단결해도, 당장은 이겨도, 자본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습니다.

제도권 권력은 변죽만 울려댈 뿐 이런 현실을 본질적으로 뒤바꿀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면서도 재산을 확대하는 자본가를 징역 20년에 처한다. 혹은 부실 경영으로 다수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국가 경제에 해를 입힌 자본가를 징역 20년에 처한다. 이런 법규가 있던가요.

노동자들은 생계를 걸고 어쩔 수 없이 투쟁에 나서도, 불법 시위다, 불법 행진이다, 도로 점거다, 사유물 점거다, 폭력 행위다, 공무집행 방해다, 온갖 불법의 딱지를 뒤집어쓰고 탄압을 마주하는데, 노동자들을 이런 상태로 내몬 자본가들을 제제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도권 권력이 잘못 작동할 때만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할 때조차, 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본가들은 진정한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희망버스의 등장과 승리는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뒤이은 참담한 현재의 상황. 희망버스에 함께 했던, 그리고 희망버스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를 표했던 이들은 이 앞에서 좌절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버스에서 왼쪽으로 한발을 더 내딛는 것입니다. 나쁜 조남호 회장과 이재용 사장, 나쁜 한진 자본, 나쁜 이명박을 반대하고 규탄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런 나쁜 이들이 합법적으로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장악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 제도권 권력이 아닌 노동 계급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희망버스가 활약하던 그 때, 정작 민주노총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쌍차의 전사들이 77일 간 공장을 점거하고 분투를 할 때도, 민주노총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87년 위대한 성취를 거뒀던, 그리고 십년 후 정권의 악법 추진을 막아냈던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은 없었습니다.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쌍차만이 아니라, 전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장 노동자의 요구를 담아 전체 노동자들이 단 한 달이라도, 단 며칠만이라도 생산을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업장 별로, 직종 별로 이해가 다르다구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임금이나 노동 조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생산하는 자와 부를 소유하는 자가 달리 존재하는 사회관계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에 노동자들이 공감한다면 그 차이는 중요치 않을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못할 때 85호 크레인과 한진 스머프들을 지켜낸 희망버스가, 이번에는 민주노총과 전체 노동자를 움직이는 데 힘을 모으면 어떨까요. 희망버스의 자유로움과 재기발랄함이 ‘자본주의 변혁’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간다면, 그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이 싸우기를 여러 날, 보다 못해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라 간지 또 여러 날, 답은 보이지 않고 한진 자본이 승리를 자신하던 그 때 희망버스가 승리의 닻을 올렸습니다.

지금, 다시 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희망을 얘기해야 하고 기어이 거머쥐어야 합니다. 희망버스, 왼쪽으로 한발 더. 그 공감대와 실천이 현실화 될 때, 당장의 참혹함은 더 큰 승리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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