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연대의 자리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갔다

[희망버스탄압 돌려차기](5) 함께 만드는 무지개

2011년 7월 9일, 70명 남짓 성소수자들은 희망의 버스와 함께하는 성소수자 퀴어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다다르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고 부산역에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희망의 난장이 펼쳐졌다. 부산역에서 영도다리를 지나면서도 85호 크레인을 못 볼 것이라고는 상상 하지 못했다. 따끔거리고 역한 최루액을 맞으면서도 경찰 차벽에 막혀있어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어도 반드시 85호 크레인 아래 서서 목을 한껏 젖히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차벽으로 막힌 날이 밝아온 영도 로터리에서 깃발들이 펄럭거리는 소리를 뚫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전국에서 오신 희망버스 승객 여러분, 여러분들이 계신데 제가 뭔들 못하겠습니까. 희망의 버스는 모든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희망이고 미래를 향한 힘찬 출발입니다. 쌍용차, 유성기업을 비롯한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인들, 성적소수자들, 철거민, 학생, 강정마을의 모든 희망을 싣고 달려야 합니다. 더 이상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음을, 불의한 권력에 굴종하지 않음을 당당하게, 자유롭게, 신명나게, 화끈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2011년 7월 9일 역사는 이날을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물방울이 모여 어떻게 희망의 바다가 되는지, 작은 희망의 꽃씨 하나가 어떻게 꽃밭세상이 되는지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결국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출처: http://rainbowring.tistory.com/190]

그 시간까지 남은 성소수자 퀴어버스 탑승객들은 서로를 도닥여주고 수건을 건네면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 좁은 크레인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과 공권력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편견과 차별의 벽과 같았고 그 벽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나를 볼 수 있었으며 버스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과 만드는 희망의 한 마당은 성소수자와 더불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성소수자도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간다. 일하는 곳 어디에나 있다. 다만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 주변을 보아도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게이, IT업체에서 일하는 레즈비언, 자동차 공장의 게이 노동자, 트랜스젠더 우체부, 레즈비언 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 전문직종도 마찬가지이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성애자, 성소수자란 성정체성이 드러난다면 노동하는 성소수자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쫓겨난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고는 살인이다.’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퀴어버스에 오른 성소수자들은 85호 크레인으로 함께 향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85호 크레인으로 향한 희망의 버스가 1년이 되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그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짓밟히는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숨만 쉬고 살아라하고 강요하는 공권력과 자본은 너무나 야비하고 잔인하다. 몇 개월 전 희망의 버스 건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형사는 채증 사진, 트위터에 올린 글과 통화 기록 등을 증거로 내놓았다. 그리고 5월 일반교통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약식명령이 날아왔다. 다른 탑승객들에 비해 적은 금액이지만 보복성으로 날려 보내는 벌금에 정식재판 청구로 응답했다. 수만의 사람들이 만든 희망을 불법이라 ‘낙인’찍는 권력에는 돌려차기가 답이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10일, 용접하던 무딘 손으로 만개나 되는 종이를 접어 희망의 버스 탑승객에게 전한 종이배가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다. 그 배에는 한진, 쌍차, 재능, 콜트콜텍, 강정, 용산, 기륭... 희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올라타 있다. 이들 뿐이랴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또 다른 배에 올라 또 다른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믿는다. 2012년 6월 16일, 배에 오른, 버스에 올라탄, 뚜벅뚜벅 걷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함께 살고, 함께 웃는 희망과 연대의 자리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성소수자들도 늘 다시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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