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 새로운 저항의 네트워크

[정치대회](3)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이 권리의식을 갖기 위해

[편집자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올해 9월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10주년을 맞아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주체들의 목소리로 운동의 과제를 밝히는 정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대회는 활동가대회(9월 14일)와 문화제(9월 15일)로 진행된다. 활동가대회에서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주체형성에 대한 세부 주제를 제출하고 그에 대한 조직위원회 및 투쟁 주체들의 발언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다섯 번의 기고를 통해 철폐연대가 10주년 사업으로서 정치대회를 제안하는 이유, 그리고 활동가 대회에서 논의하는 주제의 취지 및 문화제의 문제의식을 알리고자 한다.


불안정노동자가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기업이나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생존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시혜나 정부 정책에 쉽게 기대게 된다. 때로는 자포자기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고통의 근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기업과 정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더 많은 이들이 불안정노동의 근원적인 문제를 깨닫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의 두 번째 주제로 ‘불안정노동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권리의식을 갖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큰 주제 아래 다음의 세 가지 작은 주제들을 토론할 예정이다.


불안정노동에 순응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기획

자본의 힘이 사회적으로도, 기업 내적으로도 압도적인 상황에서 정치권에 대한 압력투쟁이나 기업단위만의 노동자 투쟁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지금은 우리가 자본을 포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이미 전체 노동자들의 50%가 넘는 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80%를 넘게 차지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불안정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자영업자’ 혹은 허울좋은 ‘프리랜서’라는 인식 아래 갇혀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일자리가 ‘알바’이며 거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며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한다.

기간제 노동자들과 파견 노동자들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만들어졌을 때 강력하게 저항하며 싸웠지만 이제는 ‘나는 원래 2년짜리’라는 생각에 갇혀 계약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중소영세사업장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린 채 ‘이대로도 좋다’고 여긴다. 중장년 여성들은 ‘그나마 일하게 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많은 이들이 불안정노동은 잘못된 것이며, 그 책임은 정부와 자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현실은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들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선전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불안정노동자들이 불안정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이런 상황이 ‘원래 이런 것’이 아니며,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함께 이야기해보는 것이 첫 번째 토론주제이다.

지금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확산하고 연대를 만들기

두 번째 토론주제는 지금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상황은 문자 하나로 해고되고 불법파견으로 인해 중간착취 당하고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은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의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륭전자의 투쟁은 전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KBS 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기간제법의 정규직화 조항을 피해가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에 저항하는 투쟁이었기에 기간제법에 의해서 고통당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다.

재능교육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을 인정하라며 투쟁함으로써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은 법으로서가 아니라 단결과 투쟁으로 증명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이미 불법파견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런 각각의 의미가 살아날 때 연대도 확장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비정규직 투쟁도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보다는 조용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이 되어버려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이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비정규직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이 투쟁이 단지 ‘우리만의 것’이 아닌 전체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연대를 확장하고, 그렇게 연대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이기는 길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함께 이야기해보자.

기업의 전횡적 지배에 맞선 다양한 부문과의 연대

세 번째 토론주제는 기업의 전횡적 지배에 맞서는 연대를 만드는 방안이다.

우리사회는 기업의 이윤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기업에 대한 규제 장치가 없어지면서 기업의 이윤논리가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용역깡패를 투입하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강정의 구럼비 바위를 빨리 깨도록 독촉하며, 개발논리를 앞세워 용산의 철거민들을 죽이기도 했다. 골목상권을 파괴하면서 중소영세상인들의 삶을 빼앗고 있기도 하다. 환경을 기업의 이윤과 맞바꾼다.

예전에는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이제는 돈을 주고 집회를 사거나 명예훼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 바로 기업이다. 이처럼 기업의 전횡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업의 전횡에 맞서는 투쟁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싸움이 자본을 고립시키는 싸움이 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연대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전선에서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은 매우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희생되고 단지 노동권만이 아니라 삶의 권리, 생활의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불안정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기업의 전횡에 맞서는 다양한 이들과 연대하고, 그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앞에 설 때 기업을 제대로 포위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이 단지 불안정한 일자리를 안정적인 일자리로 바꾸는 것에만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노동자들을 일회용품 취급하여 권리를 박탈함으로써만 자신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정노동철폐를 원하는 이들은 그러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다양한 운동들과 만나야 할 것이다.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저항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자

‘불안정노동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이 권리의식을 갖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노조를 중심으로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적 투쟁의 기획도 필요하다.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처럼 광범위하게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알리고 이것에 근거하여 다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전략이 있었다. 지금 민주노총에서 제안한 ‘비정규직 없는 일터 천만인 선언운동’도 불안정한 노동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깨워 ‘내가 권리의 주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고자 하는 기획이다.

또한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제안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권리헌장 운동’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하는 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기업의 이윤만을 위하는 사회이고 비정상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면서, 노동권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런 운동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광범위한 연대체가 구성될 수도 있고,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단처럼 한 사업을 중심에 놓고 여러 단위가 만나는 사업단이 구성될 수도 있다.

불안정노동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노동권’과 ‘단결의 권리’를 중심으로 만나서 함께 투쟁하고,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네트워크가 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조직되어 있는 단위들을 뛰어넘어 이렇게 광범위한 이들이 만날 수 있을 때 불안정노동철폐의 날도 그리 먼 날만은 아닐 것이다.

불안정노동철폐를 위해 헌신해오셨던 여러 분들, 그리고 불안정노동철폐를 바라는 많은 분들이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의 자리에 모여서 함께 방안을 논의하고 새로운 저항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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