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자고 논의를 시작한지도 어느새 1년이 되었습니다. 무너진 노동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새로운 주체 형성이 필요했습니다. 아래로부터 현장성을 지키며 저들이 쳐둔 통제선을 과감하게 뛰어 넘어 투쟁해 온 노동자들의 역사가 무너진 노동현장, 무너진 노동정치를 복구하는 토대라 생각했습니다.
유명도나 공조직의 직위와 상관없이 치열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더 이상 우리 노동자의 미래를 신자유주의 세력에 기대어 만들어 갈 수 없다”. “노동자들이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자”는 의견을 모아 지난해 10월 17일 ‘변혁적 현장 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을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가장 큰 정치 공간인 대선에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내고 싸웠습니다.
18대 대선에서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야권연대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며 후보 사퇴를 당연시했습니다. 대선이라는 정치공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은 들러리 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는 다시 권영길 이전으로 밀려버린 상황이고, 이명박의 패악은 차악에 대한 선택을 다시 복구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실패는 민주노총마저 정치적 식물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민주노총의 전 현직 간부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로 대거 몰려가는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실패, 민주노총의 식물상태
이런 조건에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으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탐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라는 대선 투쟁의 기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보수 여·야당과, 노동정치를 포기한 진보정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가지고 함께 싸울 세력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어 희망의 근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서 노동자 민중과 함께 대선이라는 정치공간을 투쟁하는 공간으로, 한 표보다 중요한 노동자 민중의 직접 정치로 문제를 근본에서 살피고 해결하는 길을 모색하려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공하지도 최소한의 기대치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호 1번과 2번 후보가 99.6%의 표를 가져가게 했습니다.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저들은 선거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야권 후보도 미래를 갈구하는 진보후보도 아닌 우리 사회의 치욕이자 통한의 과거인 박근혜의 승리였습니다. 정권교체만이 희망이라던 국민의 48%가 멘붕에 빠졌고, 그 후과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죽음이 우리가 만들어갈 희망의 부족이라 생각되어 너무나 아팠습니다.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대선투쟁은 주·객관적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모릅니다. 많은 분이 후보등록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계와 준비부족에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가지고 힘차게 싸워보자는 동지들의 집약된 힘으로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1%가 99%를 대신하는 정치가 아니라, 비록 0.5%, 1%라도 99% 입장의 정치가 존재하고 또 존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과정에서 우리는 아직 부족한 우리의 역량과 주장의 확장성의 한계를 성찰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절박하고 필요한 우리의 투쟁과 요구가 대선이라는 공간에서 사회적 쟁점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반성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 의미와 활기가 주체의 '정신승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선거 시기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신나게 투쟁'한 경험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력감을 넘어 신나게 투쟁한 경험
대선투쟁 이후 우리의 발걸음은 신속하지 못했습니다.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부지런히 움직였어야 했는데 대선 직후 잇따른 열사들의 죽음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 간담회를 통해 현장 동지들과 대선투쟁평가와 향후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전북, 제주, 충남, 부산, 인천, 서울, 경기 등 지역에서 만난 동지들의 대선평가와 고민은 비슷했습니다.
대선과 관련해선 현장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커밍아웃을 했다며 겸연쩍게 웃던 동지, 출근 투쟁 등 일상 활동을 할 때도 선투본 잠바를 벗지 않았다는 동지, 현장에서 우리의 정책과 후보에 대해 토론이 가능해서 좋았다는 동지, 삼성공장 앞에서 천막 선거투쟁본부 사무실을 만들고 원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며 뿌듯해하던 동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원 앞에서 그동안 억울했던 일,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들을 향해 거침없이 우리의 입장과 요구를 말하다 밤 10시를 넘겨 과태료를 받았다는 동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입장과 내용을 대중적 언어로 함께 호흡하며 함께 싸울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는 동지, 대선 이후 발 빠르게 후속 사업을 배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동지... 곳곳에 튼튼한 노동정치의 종자들이 파종되어 있었습니다.
곳곳에 파종되어 있는 노동정치의 종자
대부분 지역에서 주요하게 이야기한 것은 '현장에서부터 투쟁을 만들고 공장 담벼락을 넘어 삶터로 가두로 나아가는 실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건지', '몇몇 정파가 하는 당건설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함께할 동지들을 모아 노동자계급정당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들 노동자계급정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실천을 함께 해나가자는 의견에 너나가 없었습니다.
대선 이후 박근혜 정권과 자본가들의 탄압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침탈과 무자비한 연행이 수십일째 이어지고 있고, 목숨을 건 철탑농성 일수가 세자리를 지나고 있음에도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현대차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해고당한 후 목을 매고, 기아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신규채용을 하는 것에 항의하며 분신을 하는 상황까지 와 있습니다.
상황이 더욱 퇴행적일수록 우리의 행보,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의 길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투쟁과 조직으로 박근혜 정권에 맞선 투쟁, 자본의 체제적 위기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로 밀고 가는 투쟁을 벌여내야 합니다. 위로부터 몇몇 사람들이 몇몇 세력이 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실천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합니다.
몇몇 정치세력을 넘어 아래로부터 토론과 실천으로
그 부활의 걸음을 4월 27일 활동가대회를 통해 시작하려 합니다. 그 동안의 지역순회간담회를 결산하고, 대선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담아 노동자계급정당건설을 위한 추진위 출범을 결의하고, 추진위 출범 시기와 출범 전까지 각 지역별 추진모임의 내실을 다지는 계획과, 우리가 건설할 당의 상과 내용을 토론하는 일정과 현장실천투쟁, 대중사업을 통해 조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을 토의하고 결의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보기도 했습니다. 노동자 민중에게 희망의 빛이 되는 정치를 하자는 것에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패배한 역사를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정치에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빛을 퍼트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촛불이 되거나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의 빛과 어둠이었던 시공간과 사람들은 이제 거름이 되고 뿌리가 되어 새로운 싹과 꽃과 열매라는 촛불의 거울로 작용하기를 바라봅니다.
현장에서 투쟁만 하던 노동자들이라 아직 우리는 충분히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노동자 뚝심의 다른 모습입니다. 진정코 노동자가 현장의 주인, 정치의 주인으로, 대공황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해 우직하게 전진해 갑시다.
현장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 변혁의 뜻을 가진 활동가들이 함께 우리의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4월 27일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 정치를 펼칠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파종의 날입니다.
죽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어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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