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수집은 감시국가의 서막

[기고] DNA법의 명암, 과학수사인가 빅브라더인가

시행 4년차를 맞은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명암(明暗)은 확연히 엇갈렸다. 국가기관에서 관리하는 DNA 데이터베이스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수의 범죄가 해결되고, 방지된다는 것이 DNA법 찬성론자들의 논리다. 그리고 잇따라 발생하는 강간, 살인 등 강력사건은 DNA법이 존속해야 되는 여론을 뒷받침했다. 인권단체에서 제기했던 우려의 목소리는 수사기관의 ‘과학수사의 성과’라는 주장 아래 묻혔다.

수사기관으로부터 DNA채취를 당한 대상자들 중 일부는 일상생활에서 ‘빅브라더’의 존재를 체감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서석문 씨는 DNA 채취 이후 “올가미가 채워진 것 같다”며 “사람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은 심정이다”고 토로했다. 생물의 생명현상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특성상 혈액, 타액, 모발, 구강점막 채취를 통해 수사기관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DNA 채취, 평생 감시당하는 느낌 지울 수 없어

“국가기관이 내 DNA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강박관념이 생겼다. DNA 채취 당한 이후 전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한 평생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지 않나” 쌍용차 해고노동자 서석문 씨의 말이다.

서 씨는 쌍용자동차 파업과정에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2011년 4월경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서 DNA를 채취 당했다. 당시에는 구강채취에 대한 거부감만 있었을 뿐, DNA 채취 이후 겪게 될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DNA 채취 이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에도 타액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저를 꼭 닦았다. 담배꽁초는 길에다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 뒀다 집에서 한 번에 버렸다.

서 씨가 이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복직을 한다고 해도, DNA 정보는 평생 남아있다. 현장 가서 일을 해도, 언제든지 사건현장에서 DNA가 발견되면, 용의자로 몰려 검찰청에 출두할 수밖에 없다”

DNA법 11조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담당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검색하거나 그 결과를 회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DNA신원확인정보가 수집되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장래에 발생할 형사사건이나 미제사건의 수사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DNA 증거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 때문에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을 경찰 앞에서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DNA가 채취된 대상자는) 범인이 아님에도 현장에서 DNA가 발견될 경우 범인으로 몰릴까봐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때 구속된 김창수 씨는 수형인 신분으로 DNA를 채취 당했다. 그는 “DNA를 국가기관에서 갖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범죄를 안 저지르고 조심히 살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형기를 마친 후에도) 보호관찰을 받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 자체가 인권 침해다”고 지적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 정보는 법원의 무죄, 면소, 공소기각 판결 결정이 확정되거나,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가 아니면 삭제가 불가능하다.


DNA법 기술이 만든 신 연좌제, 가족검색

‘그림 슬리퍼’ 연쇄살인사건은 DNA 정보를 이용한 가족검색(Family Search) 기법을 활용해 검거한 사례이다. 미제 살인사건으로 묻힐 뻔한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피의자의 아들이었다. 불법무기소지죄로 체포된 아들의 DNA는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됐다. 아들의 DNA와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익명의 DNA와 부분적으로 일치해 아버지를 검거할 수 있었다.

DNA법과 관련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중 하나는 가족검색 문제다. 가족검색 기법은 친족 간 DNA의 유사성을 활용한 수사 기법이다. 부모와 자식은 모든 유전자에서 적어도 1개의 대립유전자가 일치한다. DNA의 특성상 가족구성원 1명의 DNA 정보를 갖고 있으면, 가족 전체의 DNA 정보를 추론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림 슬리퍼 사건과 같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검색 기법은 가족과 혈연관계 등 인구사회학적 정보에 대한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계와 인권단체에서 우려하고 있다.

미 의회가 발간한 ‘형사행정학의 DNA 테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검색 기법을 적용하면, 미국 인구 중 17%의 흑인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반면 백인은 4%에 불과하다”며 “유색 인종과 저소득층 등 소수자 계층이 가족검색 기법의 수사로 인해 용의선 상에 오를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FBI에서 가족검색 기법을 사용할 때 사건 해결이 어려운 강력 폭력 사건과 성범죄에 한해서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고 요구했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DNA 정보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DNA 정보의 신원 확인 외에 친족간 수사로 확대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DNA법이 신속한 범인 검거와 재범 방지의 목적으로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외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범인 검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지문과 DNA가 가장 다른 점은 DNA가 가족 정보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지문은 한 개당 국민 한 사람의 정보만을 담고 있지만, DNA는 가계당 한 개씩만 가지고 있어도 전 국민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처음 채취한 사람이 사망해도 DNA는 계속 남아 그 가족을 검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일종의 연좌제인 셈이다. 따라서 국가가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DNA수집은 감시국가의 서막

DNA법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학계는 DNA법은 ‘미끄러지는 경사길 이론’과 같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시작단계에서 입력대상 범죄가 21개였지만, 불과 몇 년만에 107개로 대폭 확대됐다. 우리나라 역시 DNA법은 성범죄자 재범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대상이 방화죄, 살인죄, 약취유인죄 등 11개에 달한다.

용산참사 때 구속된 김창수 씨는 “생존권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DNA채취를 하는 것은 도덕적인 흠집을 내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서석문 씨는 “자식들한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다. 살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 밖에 없는데, (DNA 채취를 당해) 자식들한테까지 제 2의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에 염두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무섭나?”고 말했다.

이호중 교수는 “국가의 DNA정보 수집은 감시권력의 확장과 위험통제정책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위험한 인물과 집단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계속 강화되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위험한 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서석문, 김창수 씨의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행위위헌확인’에 대한 공개변론이 있을 예정이다. 헌재가 공개변론을 연다는 것은 해당 사건의 위헌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11일 열릴 공개변론에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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