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존중받을 권리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4)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따로 있나?

[편집자 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2조.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이유로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의 자율성을 빼앗아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하거나, 보조업무만 하게 하거나 다른 이들의 일을 함부로 떠넘겨서도 안 된다.”

노동자는 누구나 자기 노동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일해왔던 노동자들은 누구보다도 그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숙련도도 높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최근 일을 세분화하고, 비정규직들에게는 단순한 업무만 주거나 보조업무만 하도록 시킵니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의 총체성을 빼앗긴 이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일을 하는데 자부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보조업무라는 이유로 각종의 차별이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정규직이 할 수 있는 일과 비정규직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숙련형성과 교육훈련의 기회가 차별적이지 않게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런 권리를 빼앗아놓고는 그것을 핑계삼아 다시 차별을 일상화하는 일,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대학교의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입학해서 강의를 듣고 학점을 이수해서 졸업하는 모든 과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이 맡은 업무를 합니다. 다들 알고 계시듯, 교직원은 교수와 직원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중 교수는 강의를 하고, 직원은 학사지원, 교원인사, 학생복지, 시설관리, 구매, 총무 등 학교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행정업무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어디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지대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의를 하는 교수까지도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가 존재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명지대학교도 거의 모든 공간에서 정규직과 수많은 종류의 비정규직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행정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2년제 계약직 “사무원”과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 “연구원”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알지 못해 열거하지 못한 비정규직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러한 수많은 비정규직 중에서 우리들은 일반조교입니다. 일반조교는 행정부서의 가장 일선에서 행정업무를 해왔었습니다. 그래서, 행정조교로 불리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대학노조 명지대지부” 조합원인 9명의 일반조교만이 남아있습니다. 5년 전 쯤 일반조교 대량해고 사태 이후로는 2년제 계약직 “사무원”이 일반조교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기간제법을 근거로 2년 이상 장기근속한 일반조교들을 정규직화 하는 대신 단칼에 해고했던 학교 측에 항의했고, 그 결과 2011년 10월 1일자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 일반조교”로 복직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직을 하면서 우리들은 모두 일말의 기대를 했었습니다. 이제는 고용도 보장되고, 법적으로는 정규직으로 가늠된다는 무기계약직이기에 앞으로는 열심히 일만 하면 노동조건은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더랬습니다.

복직을 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교섭 과정 속에서 학교 측(사용자)은 우리들의 생각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던 일반조교가 이제는 정년까지 함께 일할 거라는 것은 알지만, 무기계약직도 엄연히 계약직이며, 정규직과는 하는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임금과 노동조건이 차이가 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며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작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정년까지 같이 갈 무기계약직 일반조교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처우개선에 관해서는 ‘차별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 이유는 우리 일반조교가 비정규직이었던 탓!’이라는 사용자 측의 시각에 분노가 치밀다 못해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년제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 모두 행정업무를 합니다. 행정업무의 일선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업무들을 말입니다. 졸업사정업무를 대략적으로 예를 들면, 졸업사정 대상자를 확인하고, 졸업조건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졸업사정회을 개최하여 졸업대상자를 확정하는 전체 과정 속에서 딱 잘라서 정규직의 업무 그리고, 비정규직의 업무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규직의 업무라고, 어디까지가 비정규직의 업무라고 구분하려해도 나눌 수도 없을 정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함께 행정업무를 하면서도 비정규직은 “업무보조”라는 족쇄에 묶여 자신이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하고서도 그 대가를 바라기는커녕 평가절하되거나 평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모든 조직은 효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합니다. 업무 당사자가 자신의 업무를 자신있게 주관하며, 더욱 효율적인 행정 처리를 위해 고민할 때 그 조직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업무를 담당한 당사자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함께 행정업무를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 눈감고 귀 막으며 수동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은 단순히 그 노동자의 탓은 아닐 겁니다. “책임과 권한”이라는 허울로 정규직을 마음대로 부리고, “업무보조”라는 딱지를 붙여 비정규직을 옭아매어 처우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기 위한 사용자의 아니, 악마같은 자본의 간악한 술수가 아닐까요?!

항간에는 무기계약직이 되면 고용이 보장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차별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직”보다도 더욱 차별이 정당화된 열악한 무기한 계약직입니다. 이렇듯 무기계약직의 현실은 앞으로도 험난한 투쟁을 예고하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우리들의 삶일 것입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직 일반조교인 우리들도 명지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좀 더 당당히 일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과 함께 발전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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