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 맨몸으로 싸우는 거친 손 잡으러 갑시다

[기고] 30일 밀양에서 만납시다

밀양엔 이미 지난주에도 눈이 내렸다. 겨울 아닌 겨울을 나고 계신 밀양 어르신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296일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철탑 위 농성장에서의 천의봉 대외협력부장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지 않으면 국가 전력수급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사기치고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한전의 주장에 보수언론들은 전력난이 마치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때문인 양 보도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강행한 지난 정부의 주요정책사업인 4대강 사업은 어떠했는가? 4대강 사업이 경제적 효과와 가뭄, 홍수, 재해방지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임기가 끝난 이명박 정권이 토건업자의 이익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지금 우리는 눈으로 확인한다.

산 밑에서 맨땅에서 맨몸으로 차디찬 바람을 맞으면서 싸우는 밀양의 어르신들, 평생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며 농사만 짓고 살아왔던 손으로 경찰과 몸싸움에 떠밀리고 밟히면서도 굽히지 않고 8년 넘게 싸우는 할매.할배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80이 넘어서 세상의 이치를 다시 깨달고 투사가 돼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우리도 이만큼 치열하게 싸웠을까 반성도 해본다.

“우리가 여기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마는 커가는 자식들에게는 765kV 고압전선이 흐르는 고향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밀양의 어르신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비정규직의 노예와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싸우는 것처럼 자신들 땅에 고압전선이 지나는 고향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10년이라도 싸우겠다는 할매 할배들.

아들 같은 노동자들이 철탑에 매달려 농성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한달음에 달려오셔 그 거친 손을 내밀어 격려해 주시던 어르신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믿는다. 너희는 너희들을 믿어라”며 힘을 보태 주셨다.

우리는 결국 296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왔지만 아직 철탑 위에는 노동자들이 매달려 있다. 밀양은 땅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송전탑을 막는 농성을 해야 하고, 노동자들은 송전탑 위에 올라 목숨을 걸고 싸운다.

싸우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믿고 모여야 한다. 한 명 한 명을 넘어 울산에서 전국에서 발걸음들이 모인다. 한진중공업으로, 쌍용자동차로, 현대차로 희망버스로 달려와 주었던 수많은 희망들이 30일 밀양 할매 할배를 뵈러 간다. 울산 송전탑 위에서 마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지치고 거칠어진 어르신들 손을 잡고 희망을 나누기 위해서 간다.

바드리, 평밭, 동화전, 여수마을이 더 이상 765kV 송전탑과 경찰과 한전으로부터 고통 받지 않는 평화로운 시골마을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며 30일 밀양으로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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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 천의봉 ,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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