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죽기 전에 죽은 만델라를 추모한다

[기고] 대중정치인과 인민의 적 사이에서

9일 새벽 1시 런던의 아스널 스타디움에서 아스널과 에버튼의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 경기장의 거대한 전광판에 한 흑인노인의 모습이 비췄다. Nelson Mandela (1918-2013). 모든 선수와 관중이 기립한 가운데 박수와 함께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 누가 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넬슨 만델라, 확실히 그는 모든 사람(?)의 축복과 사랑, 존경을 받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 95세, 하지만 마지막 몇 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생명의 물리적 연장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100년에 삶을 되돌아보는 반성이 없다면, 생명의 물리적 연장 외에 아무 의미 없다. 오히려, 개인의 죽음마저 정치화되는 냉혹한 현실을 고려하면, 또 이른바 음모론을 덧칠하면 만델라의 생명은 남아공 지배엘리트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지됐다.

어쨌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개인에게 행복한 일이지만, 정치 지도자에겐 재앙이다. 별로 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만델라가 성취한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정치가로서 성취한 것이 현존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남아공 자본주의에 별다른 전복적 영향이 없었다는 의미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NelsonMandelaNorthAmerica]

오히려 작년 마리카나 대학살이 보여주는 남아공의 현실은 바로 만델라가 죽음을 맞기 전에 개탄이나 훈계가 아니라 직접 대답해야 하는 문제다. 제도화의 경로 속에서 배제당한 기층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대해서 만델라는 무슨 말을 했는가? 만델라와 그의 동료들이 쟁취한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내외 제도언론은 한 목소리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종식과 민주주의 확립을 만델라의 공적으로 돌린다. 35년간의 감옥생활을 겪고도 마침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극적인 드라마! 그러나 그런 사기에 기만당해서는 안 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종식을 선택한 것은 백인 부르주아지와 지배엘리트들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이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저항한 해방운동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전개할 가능성이 사라졌다. 그들은 단순히 만델라를 선택했다.

개인으로 만델라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가 겪은 고통과 피해를 떠올리면 그가 설사 운동을 배신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실존적 개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정치의 길을 선택했고, 그의 고난과 고통에 걸맞은 보상을 누렸다. 그렇지만 그가 상징하는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외견상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주의를 넘어서 흑백평등의 민주주의를 쟁취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완성한 것은 안티 아파르트헤이트 민주주의가 아니라 남아공 자본주의였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대중의 빈곤과 질병 속에서 번영하는 흑백 부르주아지의 존재와 만델라에게 쏟아진 전 세계 지배 엘리트들의 진심어린 위선적 찬사들이다. 그리고 전 세계 언론의 찬양 포화 속에서 남아공의 민중은 국가적 추모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만델라의 유산은 냉혹한 국가폭력과 계급현실 밖에 없다.

만델라는 죽었다. 가증스런 위선적 찬사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찬양 속에서 항상 진실은 죽는다. 또한 계급적 의도가 분명한 거짓 찬사는 듣기 좋을 진 몰라도, 만델라를 죽이는 짓이다. 무장투쟁을 결의한 ANC 조직가 만델라, 로빈 아일랜드 형무소의 절대고립 속에서 포효하는 한 마리 야수는 잊으라는 얘기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nelsonmandela]

만델라는 죽었고,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하는지는 개인의 자유다. 계급의 적이 떠들어대는 찬사에 동조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나는 정치가 만델라는 남아공 자본주의를 구원한 ‘인민의 적’이라고 본다. 무장투쟁을 선도한 검은 혁명가와 인종과 국경의 경계를 넘어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정치가는 노화과정에 굴복한 한 개인의 실존 속에서 융화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수용하거나 굴종할 이유는 없다.

만델라의 침묵을 이유로 정치가 만델라만을 평화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그들의 앞잡이 제도언론의 몫이다. 1993년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고, 만델라와 남아공 민중에게 가한 범죄가 용서되는가? 죽은 사람을 또 죽이고, 여러 번 죽이고, 그것도 우아하게! 살인과 학살, 암살을 세련된 포장으로 대중이 소비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취미이자 직업이니까. 정치가 만델라는 해방자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였다. 죽음 앞에서 정치가 만델라는 고백하지 않았다.

1993년 만델라는 COSATU 노동조합 총회에 참석해서 노동자들에게 “ANC-SACP[남아공 공산당]-COSATU의 삼각동맹을 신뢰하되, 노동자들 자신을 믿고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라”고 연설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연설전문은 MRZine에 실려있다:
http://mrzine.monthlyreview.org/2013/mandela051213.html)

거짓 선지자의 데마고그인지, 아니면 역사의 간지를 이해한 개인의 선견지명적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남아공의 흑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만델라가 살아있을 때나 죽고 나서도 여전히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다.

[출처: www.politico.com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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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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