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본의 권력 아래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

[기획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4)

[편집자주] 프로젝트 <그날들>은 6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하여 2013년 기억해야 할 인권의 날들을 모은 프로젝트입니다. 모두 89개의 날들이 모여 소책자와 인터넷 타임라인(hrnet.jinbo.net/thedays2013)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중언론 <참세상>과 함께 기획하는 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는 위와 같이 모인 인권의 날들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진 날들에 대한 기억을 넘어 2013년 인권 현실을 되돌아보며 주목해야 할 흐름을 5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합니다.

2003년 어느 날 노동자들의 죽음을 두고 논쟁 아닌 논쟁을 했다. 이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 이야기 하는 나에게 그는 ‘1년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라며 죽음에 둔감해질 것을 요구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로, 병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로 사람들이 죽는다. 삶에 높고 낮음이 없듯, 죽음 역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열사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2012년 12월 21일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 최강서에서 최종범까지 직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도미노처럼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그 죽음에 맞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내 대답은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절망을 넘어 희망을 만들자고 외쳐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기도 하지만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말하고자 했던 것, 이들이 죽음을 통해 드러냈던 메시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승리해 주십시오”는 최강서 열사의 유서,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는 최종범 열사의 유서에서 그들은 호소했다. 죽음을 ‘선택’했다는 최종범 열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긴 기간 동안 빼앗기고 짓밟혔던 인간의 권리, 노동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2013년, 대자본에 맞선 저항이 드러냈던 노동의 권리

대자본의 힘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 연매출이 200조를 넘는 삼성전자의 거대함과 6조 9천억 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재산을 소유한 정몽구 앞에서 연봉이 3,000만원도 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무력해 보인다. 대법원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법과 질서 위에서 세상을 호령하고, 심지어 법마저 바꾸는 대자본의 위엄 앞에 노동자 개인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모이고, 저항을 시작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우리가 빼앗기고 있던 권리가, 아니 빼앗기고 있는지도 몰랐던 권리가 고개를 든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쓰레기통을 뒤져 자료를 모으고, 파업을 하고, 공장을 점거해가며 제기했던 불법파견 투쟁은 대자본의 반칙과 치부를 드러냈다. 그리고 곳곳에서 불붙은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법’의 기준이 자본의 이윤추구에 적합한지 여부에 불과했음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홀딩스, 이마트, 공공기관인 원자력연구원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드러낸 것은 자본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노동을, 인간을 팔고 있었고, 그들의 반칙을 감추고, 책임을 없애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현대차 희망버스가 드러냈던 것은 공장 안에 만행하던 사유화된 자본의 폭력이었다. ‘왕국’이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현대자동차 용역과 구사대에 의한 폭력은 현대차 자본의 이해에 철저히 복종했고, 그 방식은 야만이라는 단어 외에 적합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무자비했다. 금속노조 삼성지회 노동자들의 투쟁과 그 속에서 삼성이 저지른 미행, 감시, 회유, 노조파괴 공작들은 삼성이 노조가 필요 없는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파괴하는 경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모이면서 ‘삼성’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음이 드러났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권이 박근혜정권이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르는 것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노조탄압에 맞선 골든브릿지 노동자들의 투쟁은 법적으로 그 결성과 활동이 보장되어 있다던 노동조합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눈물과 고통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줬다. 욕설과 폭언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한 서울여대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지 못한 권리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외쳤다. 최저임금1만원위원회의 투쟁은 최소한의 삶을 위한 금액을 책정하는 기준이 전문가들의 계산기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저들에 의해 사유화되는 영역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드러냈다.

저항과 연대가 드러낸 것은 가려져 있던 노동의 권리만이 아니다. 대한문 분향소가 뜯겨지고, 그 자리에 흉측한 화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노동과 자본의 이해 그 중간 어딘가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말해왔던 공권력이 노동자의 존엄보다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나무와 꽃들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골든브릿지 김호열 지부장의 난간농성 투쟁에서 경찰들이 사측관리자를 비호하고,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보였던 행태는 공권력이 노동자들의 절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자본에게 얼마나 친절한지를 보여줬다. 민주노총에서 벌어졌던 공권력의 폭력적인 침탈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이 대자본만이 아님을, 저들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공권력과 정부에도 맞서야 함을 알려줬다.

2013년, 답하지 못했던 질문에 다시 답하기

어떤 공약들이 지켜졌고, 어떤 공약들을 지키지 않았는지 확인하고자 박근혜 정부가 후보 시절 냈던 노동정책 공약을 꺼내보다 덮었다. 2013년 짓밟힌 노동의 권리는 지켜지지 않은 공약 속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짓밟혀 있는 노동의 권리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저항 속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미처 찾거나 보지 못한 권리들이 대자본과 권력의 군홧발 밑에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저항하기 위해 모이는 과정 속에, 인간의 권리를 찾고자 모이는 이들의 발걸음 속에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모이는 연대의 발자국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2003년 내가 받았던 질문에 다시 답하고자 한다. 우리가 열사의 죽음을 기억하고, 열사의 유지를 잇는 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죽음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자본의 권력 밑에 숨죽이고 있는 권리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누리고 있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목숨을 걸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사들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려고 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드러낸 독을 뽑아내기 위한 힘들을 모아야 한다.

<연재순서>

- 박근혜 정부 1년, 한국사회의 인권현실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 ‘종북’, 공안기구가 만들어낸 억압과 자유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 차별과 혐오에 맞서 평등을 예감하라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 대자본의 권력 아래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 연대, 오래된 말 속에 담긴 새로운 기운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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