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오래된 말 속에 담긴 새로운 기운

[기획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5)

[편집자주] 프로젝트 <그날들>은 6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하여 2013년 기억해야 할 인권의 날들을 모은 프로젝트입니다. 모두 89개의 날들이 모여 소책자와 인터넷 타임라인(hrnet.jinbo.net/thedays2013)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중언론 <참세상>과 함께 기획하는 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는 위와 같이 모인 인권의 날들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진 날들에 대한 기억을 넘어 2013년 인권 현실을 되돌아보며 주목해야 할 흐름을 5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합니다.

“무조건 달려갈 거야~” 지난 12월 6일 대한문 앞에서 비상시국대회 전야제가 열렸다. 용산참사 유가족,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들이 ‘무조건’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불렀다. 강정이, 밀양이, 쌍차가, 장애인권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가사다. 문화제 분위기가 물씬 무르익은 것은 다만 유쾌한 표정과 몸짓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용산의 아픔을 연대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열기가 번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말, 새로운 기운

‘연대’는 오래된 말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말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흐름이 있다. 비상시국대회 전야제를 함께 연 SKYMJ(쌍용차, 강정, 용산, 밀양, 장애인권)가 그렇다. 앞선 연재기사에서 류은숙이 말하듯 우리 시대의 고통들이 고유명사가 되었다. 2012년 생명평화대행진이 전국을 돌아 서울광장으로 왔을 때 스카이공동행동은 ‘함께 살자 농성촌’을 꾸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한문 분향소가 있는 곁에 자리를 잡고 서로의 벗이 되어주었다. 밀양의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다. 밀양은 노동자들이 싸우는 현장을 찾아가며 응원을 했고, 노동자들은 밀양 희망버스에 시동을 걸었다.

고통을 일컫는 이름들이 연대를 부르는 이름들이 되었다. 서로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는 이들이 제 싸움인 양 달려가기 시작했고,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서로를 보듬기 시작했다. 대한문 분향소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장소만이 아니었고, 강정 평화대행진은 강정마을 주민들만의 걸음이 아니었다. 김석기 퇴진 투쟁은 용산의 싸움만이 아니었고, 밀양 희망버스는 밀양 주민들의 희망만은 아닌 관계가 만들어졌다. 서로의 싸움을 거들고 힘을 보태는 것이야 새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각각의 사안들의 성격을 본다면 이 흐름은 꽤나 새롭다.

여러 영역이나 부문으로 분절된 운동들 안에서의 연대와 달리 각 운동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는 대체로 여러 대중조직의 연대체 또는 연합조직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전선’은 위로부터 조직되었다. 그런데 대중운동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국면에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투쟁하는 당사자들이 현안과 직접 연관 있는 것을 넘어서 정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연대의 폭을 넓힌 것”을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짚었다. 또한 “밀양이나 철도에 대한 연대를 통해 이 문제가 우리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한다는 흐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보였다”고 한다. 이 문제들이 특정 사안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연대의 의미를 묻다

연대가 필요하거나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러나 말처럼 되지 않았던 것도 현실이다. 막상 싸움을 벌이다 보면 연대를 귀찮아하거나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연대다. 그렇다면 연대의 새로운 기운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눈에 쉽게 띄지는 않지만 조용히 이어지고 있는 연대의 흐름을 동시에 봐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청소년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의 만남과 연결이 그렇다. 시작은 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투쟁이었다.

이 싸움은 하나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고 의회에 상정되기까지를 청소년인권운동의 힘으로 갔다면, 차별금지사유를 비롯해 후퇴 없는 주민발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교육청 점거농성은 성소수자운동의 힘으로 이어졌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토리 활동가는 이때의 경험이 “2013년 전북 학생인권조례제정 과정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동으로 대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토리 활동가는 “농성 이후에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자기 문제로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청소년운동에서도 드러난다. 인권교육센터‘들’ 배경내 활동가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안에서 성소수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성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성소수자운동과 다른 교육운동 단체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누가 폭력의 대상으로 지목되는가를 보는 관점이 교육운동에 생기고 전교조에서 동성애혐오성 학교폭력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자체가 연대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변화였다. 배경내 활동가는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되는 지점에 함께 서면서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고 당시의 싸움을 돌아봤다. 그러나 연대의 경험이 공동투쟁의 경험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리 활동가나 배경내 활동가는 서로 다른 운동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한계로 보지는 않았다. 각각의 운동이 가지는 전망이나 계획이 동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며 서로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연대인 것이다.

배경내 활동가는 2013년 인상적이었던 연대의 흐름 중 하나로 <평등예감: ‘을’들의 이어말하기>를 들었다. “각자의 이야기꺼리로 이어말하는 고리가 만들어졌다. 기존에 구분지어진 운동을 뛰어넘는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시작한 이어말하기는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가 노동권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노동권이 협소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사회헌장운동을 벌이다 보니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권리를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더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역시 비없세와 함께 이어말하기를 기획하면서 노동과 차별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서로를 가로지르는 교류가 늘어나면서, 각각의 운동의 전망을 밝히는 또 하나의 실마리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연대로부터, 힘의 집중으로, 다시 연대로

연대의 가치를 칭송하는 것만으로 연대하게 되지는 않는다. 연대의 기운은 ‘소수자’적 감수성으로부터 번져 나온다.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 대한 깨달음인 것이다.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는 이들이 함께 살자고 외칠 수 있다. 연대의 방향이 ‘작은 운동’에서 ‘큰 운동’을 향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정작 ‘소수자’들의 운동은 외로워진다. 연대가 상대에게 힘을 보태는 것에 그칠 때 외로움은 해소되기 어렵다. 서로를 가로지르며 연결하는 아래로부터의 흐름들은 분절화된 운동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이해나 관용의 문제 이상이다. 운동의 분절화는 체제의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작은 운동’과 ‘큰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연대는 결과를 통해 의미가 결정되는 ‘수단’이 아니다. 연대를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은, 연대가 형식적으로 끝나기 쉽게 만든다. 이때의 연대는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관계 이상이 되기 힘들다. 운동사회 안에서 ‘연대투쟁’은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관용구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의 싸움이 아닌 다른 싸움에 함께 한다는 의미 정도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연대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싸움과 다른 싸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맞물려 있는지를 찾아나가고 더 큰 싸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연대는 의무이기보다는 권리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세상의 모습을 더욱 투명하게 보여주며, 그만큼 우리 각자의 싸움이 나아가야 할 곳이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결과’도 중요하다. 자발적인 연대, 서로를 북돋는 연대는 세상을 바꾸는 희망을 가리킨다. 그러나 희망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김혜진 활동가는 “지금은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바꿀 힘이 필요한 때다. 힘을 하나로 모으고 밀고나가는 구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의 문제를 명료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운동을 분절화시키는 조건을 넘어서는 힘의 집중은 하나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싸움 이상의 변화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박근혜 퇴진 투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각자가 부딪친 벽들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우리’의 문제로 만들어질 때 박근혜 퇴진 투쟁도 가능하다. 철도노조 파업과 함께 2014년을 내다보는 ‘우리’가 ‘연대’의 의미를 더욱 살펴야 하는 이유다. <끝>

<연재순서>

- 박근혜 정부 1년, 한국사회의 인권현실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 ‘종북’, 공안기구가 만들어낸 억압과 자유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 차별과 혐오에 맞서 평등을 예감하라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 대자본의 권력 아래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 연대, 오래된 말 속에 담긴 새로운 기운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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