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가장 큰 포구, 이제는 황량함만 자리해

[기획연재] 새만금 생명 보고서(2)

[편집자주]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무분별한 간척 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2003년, 갯벌을 아끼는 시민들이 환경 재앙의 현장을 기록하고,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자는 뜻에서 출발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그동안 매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새만금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까지 모두 120여 차례의 조사를 마쳤다.

헛된 공약으로 점철된 새만금 간척사업을 누구보다 아파했던 이들은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백서로 발간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펴낸 <2013 새만금 생명 보고서>는 지난 10년의 기간 중앙정부와 전라북도, 토건자본들의 무자비한 개발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사라진 생명들과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도움으로 보고서 일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시민생태조사단의 참가자들의 목소리로 사라진 갯벌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0년을 가 보자’

2003년 12월 충남 서천의 ‘금강환경교육센터’에서 첫 발을 내디딘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처음 포부대로 10년의 시간동안 새만금 갯벌이 파괴되는 그 현장의 변화를 목격했다. 2003년 6월 새만금사업의 4공구 제방이 막히던 날 제방에서 ‘이건 폭력이다’라고 느낀 그 마음은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06년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 새만금 내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해안선이 달라지고 많은 서서생물들의 서식 공간에도 급속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 빠른 변화에 대응을 못한 대부분의 저서생물들이 우리들의 눈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점차 조사활동에 맥이 빠지기도 했다.

저서생물 조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시민생태조사단의 초기 조사는 ‘죽음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갯벌이었던 곳에 남아있던 저서생물이 사라지면서 그 변화조차도 관찰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저서생물팀의 조사는 점차 어업의 변화 양상을 쫓아가는 문화조사에 가깝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저서생물팀이 지난 10년 동안 찾은 곳

새만금 갯벌의 명물, ‘그레’ 이제는 볼 수 없어

포구는 바로 집 앞에 배를 댈 수 있을 정도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서해안의 포구들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성상 썰물 때는 갯벌이 들어나 배가 움직일 수 없는 시간도 있다. 그렇지만 별 어려움 없이 선창에 배를 댈 수 있어 늘 활기찬 모습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지구 안에 있는 포구들의 활기찬 모습은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2006년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가 완료되고 더 이상 수위가 낮아져 포구에 배를 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곳은 기존의 포구에 배를 그대로 두어 배가 육지에 올려져 있는 상태로 방치되기도 했다.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에 변화가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일. 갯벌이었던 곳은 염생식물 군락지로 바뀌었다가 다시 황량한 공사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부안 문포 선착장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은 빠른 물살이 흐르는 바다와 두 강에서 공급된 퇴적물로 하구에 발달한 광활한 갯벌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생물을 잡는 어업의 방식도 여러 가지였다. 특히 ‘그레’라는 백합 잡는 기구는 새만금 갯벌에서 대표적인 명물이었다.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들어나면 사람의 힘으로 갯벌 표면을 끌면서 그레에 백합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를 듣고 잡아내던 방식이다.

그러나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 후, 사라진 갯벌과 함께 그레도 사라졌다. 이제 어민들은 스티로폼 부력 판 위에다 펌프를 설치하여 물대포로 백합을 잡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방식으로 백합이 한때 대량으로 생산되며 가격이 낮아졌다. 그 호황은 잠시였다. 최근에는 전어를 대량으로 잡기 위한 대형 선박들과 담수에서 작업하기 편한 어업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 어업도 잠시일 뿐이다.

군산의 새만금 지역 중 가장 큰 하제 포구는 대형 선박들로만 어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마치 포격 맞은 것처럼 폐허로 변했다.

  폐허로 변한 하제 위판장

갯벌로 번창한 칼국수 집, 이제는 잘 찾지 않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시작된 2003년, 군산과 인접한 서천에는 칼국수 집이 번창했다. 그 이유는 칼국수에 들어간 푸짐한 백합 때문이었다. 별미로 이름난 칼국수에 대한 소문이 멀리까지 나 미식가들로 금강하구는 북적였다. 하지만 요즘 칼국수에는 바지락을 넣어준다. 그러면서 손님들도 줄기 시작했다.

칼국수 집의 이러한 변화는 새만금 공사로 인한 생물종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새만금 어업 행위의 중심에 있던 백합이 새만금 사업 초기 갑자기 늘어나면서 많이 잡혔고, 값싼 음식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백합의 어획량이 줄어들고 비싸지면서 칼국수 집들은 바지락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생물은 그래도 그 양적 변화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생물은 어디서 어떤 종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도 모르게 그냥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시민생태조사단은 미와 대추귀고둥, 붉은발말똥게, 도둑게, 말뚝망둥어 등과 많은 도요·물떼새들은 사라진 흔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물종들은 서식 조건이 달라지면서 늘어난 다른 종의 생물들에 밀려 사라져갔다. 일부 생물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듯 보였지만 결국은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멸종위기 2급인 대추귀고둥은 북한계선이 금강하구가 잘리고 막힌 이후 만경강이었으나 이제 더 남하하게 되었다.

지금의 새만금은 토건이나 개발세력들에게 가장 원하던 경관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살아온 사람과 저서생물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김제 거전갯벌에서 그레질 하는 어민과 시민조사단의 조사 모습

육지부에 가까이 있었던 도둑게, 갈게, 말똥게, 붉은발말똥게 등 갑각류나 연체동물류인 대추귀고둥, 미 등이 새만금 사업지 내에서 일부는 이미 사라졌고 앞으로도 사라져 갈 것이다. 2013년 12월 현재 새만금의 자연경관은 바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더 이상 지체한다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새만금 군산시 지역, “새만금 내 군산시에서 가장 큰 포구, 이제는 기능 상실”

새만금 내 군산시 지역은 만경강 유역 북쪽 연안이다. 만경강과 금강이 만나는 하구 역으로 외해와 만나는 지점에 비응도와 내초도로 연결되는 지역이 군장산업단지 조성으로 이미 매립이 되었고, 남아 있던 갯벌은 내초도에서 하제항으로 이어지는 광할한 갯벌이었다. 이곳은 염적이 번창했었고, 많은 도요새들이 날아들던 곳이었다. 지금 염전은 새우양식장으로 변했고, 내초도와 하제 사이에 있는 군산비행장 서쪽의 수라갯벌은 육상식물이 점유하게 되었다.

새만금 지역 내 군산시 포구 중 가장 큰 하제포구는 새만금 공사 이전에는 경제력이 가장 컸던 곳이다. 당시에는 수협 위판장, 어촌계, 상인 처리장 등이 많이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기까지는 포구에서 잡아온 어획물을 선별하고 지고 나르던 어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 높이가 낮아지면서 황폐화되었고 배는 포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이동해갔다. 조업 방식은 펌프식으로 바뀌어 갔다.

김제에서 가장 큰 포구, “새만금사업 막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2006년 가을 심포항에서 장사하는 분은 “우리 좀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왜 자꾸 와서 문제를 만드느냐? 제발 오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2008년에는 내 손을 잡고 “바닷물이 안 움직인다. 물이 검다”고 푸념하며 “그때 왜 좀 더 강하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아쉬움을 전했다.

심포는 김제에서 가장 큰 포구이다. 오래 전에는 싱싱한 백합 국물을 먹으면서 만경강의 활기찬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포 포구는 매일 수산물을 잡아오는 어선과 어민들, 싱싱한 수산물을 사러 오는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항상 생기가 넘쳐났다. 그러나 이곳도 하제와 마찬가지로 물 높이가 낮아지자 배를 대기 힘들게 되었다. 한때는 배를 선창에 대려고 갯벌을 파고 물길을 냈지만, 새만금 변화를 막을 수 없었다.

겨우 이어가던 생물 장사마저 밀리고 집은 허물어졌다. 그리고 산은 깍여 나갔다. 하지만 주민들은 바다를 이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제 심포항

부안에서 마지막까지 새만금을 지키려던 곳, 장금마을 갯벌

장금마을은 계화도 서남쪽을 보고 있는 마을로 이곳은 마을보다 더 넓은 갯벌이 있고 이 갯벌에서 그레로 백합을 잡던 곳이다. 물이 빠지면 늘 갯벌에서 자연이 뿌려 놓은 돈을 겸손히 땀 흘리며 줍던 계화도, 돈지, 불등 사람들. 이곳에서 주민들은 갯벌을 보전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마지막까지 안감힘을 썼다. 그러나 물이 안 들어오고 갯벌이 말라 소금바람이 부는 황량한 소금사막으로 바뀌자 갯벌을 떠나 밭으로 식당으로 육지의 다른 일자리로 찾아 떠났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마지막까지 애를 써 봤지만 결국은 토건 세력의 폭력에 짓밟히고 말았다. 아직도 장금 갯벌에 서 있는 솟대는 끝까지 갯벌이기를 소원하고 있다.

  부안 계화 장금마을의 현재 모습


[연재 순서]

1. 새만금 조류 조사 10년, 8만 마리의 도요새는 어디 갔을까? 오동필 물새팀 실행위원
2. 군산에서 가장 큰 포구, 이제는 황량함만 자리해. 여길욱 저서생물팀 실행위원
3. 새만금 지역 어민, 지금은 어떻게 사나?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4. 내가 만난 새만금 어민.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5. 지금도 돈이 되는 실뱀장어 어장. 김회경 동화작가
6. 새만금은 끝나지 않았다. 생태조사단 10년.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7.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실행위원 인터뷰. 문주현 참소리 기자
8.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문주현 참소리 기자
9. 소외받은 자의 우울한 완장. 김형균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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