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승객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1인 승무 확대

[기고] 철도공사의 1인 승무 확대에 비상제동을 걸자

“기술 장치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사고 역시 일종의 상쇄원리에 따라 격심해진다. 이런 이유에서 강력하고 완벽한 산업적인 기술 장치들, 이를테면 기차는 가장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감시되지 않는다면 정말 끔찍한 재앙으로 돌변할 소지가 있다.”

프랑스 <철도-증기기관 백과사전>의 경고입니다. 교통수단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만 그에 비례해서 사고의 규모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충돌사고라도 발생하는 경우, 기관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던 에너지는 반대로 그 기관을 파괴하는 힘으로 돌변해 더욱더 끔찍한 참상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핵심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오래된 진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철도산업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철도공사는 이 진실에 눈을 감고 있는 듯합니다.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은 공사의 부채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철도공사의 부채는 공항철도 인수 등으로 인한 기존의 적자를 부동산개발이라는 엉뚱한 곳에서 한방에 풀려고 했던 헛된 꿈 때문에 더욱 심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철도공사가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하지만 최연혜 체제의 철도공사는 다시 한 번 엉뚱한 해결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철도공사는 청량리에서 제천에 이르는 중앙선 일반 여객열차의 운행방식을 기관사 두 명이 운행하는 2인 승무 방식에서 기관사 한 명이 운행하는 1인 승무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철도노동자들은 작년 7월 안전하고 적합한 신호체계 조건이 구비되지 않고 단선구간의 복선화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1인 승무 강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1인 승무 확대 시범운행을 막아낸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노사합의에 따라 ‘1인승무 안전성과 타당성 검증을 위한 공동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안전검증을 위해 승무원들에게 받기로 한 설문조사를 고작 2백만 원도 채 안 되는 비용을 핑계로 회피했고 결국 ‘공동협의체’는 파행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지난 2월 5일 시범운행을 강행했습니다.

위험하다

이번 시범운행 계획에 포함된 중앙선의 청량리~용문 구간에서는 전동열차와 일반열차, 화물열차가 동일선로에서 운행되고 있습니다. 전동열차와 일반열차는 신호체계와 운행속도가 달라 열차의 원활한 운행을 위해 전동차를 도중 역에 대피시키고 일반열차를 먼저 보냅니다. 이러한 복잡한 운행조건을 숙지하고 만일에 있을 위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모두 열차를 직접 운행하는 기관사의 몫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중앙선의 서원주~제천 구간은 상행선과 하행선이 하나의 철로를 이용하는 단선구간이어서 상하행 열차가 교대로 지나야 합니다. 또한 가파른 경사와 구불구불한 선로가 이어진 산악구간이기 때문에 시야가 멀리까지 확보되지 않습니다. 이는 산악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안개 때문이기도 하고 직선구간이 짧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악천후까지 겹친다면 자칫 사소한 실수가 정면충돌이나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은 크게 늘어납니다. 이런 악조건 하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은 온전히 기관사의 숙련된 판단과 강도 높은 집중력으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승객의 안전과 사고의 예방이 전적으로 기관사의 인적 능력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기관사의 수를 감축하는 것은 짚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계가 낙후했다

이러한 우려는 중앙선의 낙후된 신호체계와 운전보안장치의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커집니다. 경부선의 경우 2011년을 기점으로 일반철도에도 안전 면에서 보다 진일보한 ATP(Automatic Train Protection : 열차자동방호)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ATP 시스템은 컴퓨터와 통신기술을 활용해 선행열차의 위치를 추적해 후속열차의 속도를 자동으로 설정하는 신호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앞 열차에 사고가 있어 정지해 있는 경우 미리 천천히 속도를 줄일 수 있게 해 줍니다. 또한 운전정보를 지상신호기를 통해 시각적으로 기관사에게 전달하는 대신에 전기적인 방법으로 운전실로 정보를 보내기 때문에 기관사가 지상신호를 계속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아직도 중앙선에는 낙후한 ATS(Automatic Train Stop : 열차자동정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ATS장치는 지상신호 설비를 기반으로 합니다. 따라서 앞 열차에 문제가 생겨 정지해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신호를 보내는 특정 구간을 지나지 않으면 비상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관사는 계속 눈으로 신호를 확인해야 합니다. 눈, 비, 안개 등의 나쁜 기상조건에서는 지상신호기 투시거리 확보에 제한적이며 따라서 기관사의 주의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철도기술연구원에서도 ATS는 fail-safe 개념(신호장치가 고장이 나더라도 안전한 방향으로 동작하도록 설계하는 안전관리의 기본원칙)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심지어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경보장치 다음 수준에 불과한 위험한 장치라고까지 보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철도공사에서 1인 승무가 세계적 추세라고 선전하며 예로 들었던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동열차제어장치로써 보다 안전한 ATP장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적어도 중앙선에서는 1인 승무를 시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정은 철도공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공사도 “중앙선의 단선구간은 구배가 있고 2인 승무 때보다 1인 승무 때 인적 오류가 증가할 수 있다. 장내 진입개소가 곡선인 곳이나 교행하는 역에서는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경부선 여객에 1인 승무가 도입이 되었음에도 중앙선에 1인 승무가 도입되지 않은 것은 중앙선의 낙후한 신호체계와 위험천만한 단선구간이라는 노선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그간 낙후한 신호체계가 더 안전해진 것도 아니고 복선화가 완료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갑자기 안전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1인 승무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조건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결론만 달라진 것입니다.

철도공사가 중앙선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못 본 척 하는 것은 부채 감축이라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목표만 고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철도공사에게 있어 철도의 안전은 부차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승객과 철도노동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도외시한 채 효율성과 단기적인 이익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형 사고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철도공사의 낙천적인 자신감은 무지와 오만의 소치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만과 사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규칙한 출퇴근, 잦은 야간 운전 등으로 항상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기관사의 업무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단 한 번의 사고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궤도 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도박을 벌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묻지마 1인 승무’를 강행하는 철도공사의 무모함의 대가는 너무나도 큽니다.

인간의 실수를 기계가 보완하고 기계의 실수를 인간이 바로 잡는다. 이것이 철도의 안전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입니다. 인간의 통제와 기계의 정확성, 어느 하나도 포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1인 승무의 강행으로 인간의 기계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순간 안전운행의 최후의 보루는 그 토대부터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작년 8월 말 대구역에서 있었던 KTX열차와 무궁화열차의 3중 추돌 사고를 기억합니다. 열차는 궤도에서 벗어나 탈선했고 승객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이 대구역 사고 역시 인적 오류를 보완할 안전장치가 미흡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인간의 실수를 보완할 기계 설비를 제대로 구축하고 정비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도 시원치 않을 판입니다. 이때 기계의 실수를 바로 잡을 운전인력을 감축한다는 발상은 어떤 논리로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철도공사는 당장 1인 승무 계획을 철회하고 안전성 검토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철도노동조합을 비롯한 철도의 안전을 우려하는 많은 사회단체는 철도공사의 폭주에 비상제동을 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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