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어디서 시작되나

[연재] 일터는 나의 벽장(1)

[편집자주]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에서 성소수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 시리즈인 '일터는 나의 벽장'에서는 3회 동안 일터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일터라는 벽장에 갇혀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HIV/AIDS감염인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성소수자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모두가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제임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직장에서 결혼 압박에 시달리고 사생활을 감추느라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는 성소수자 직장인들의 술자리 단골 메뉴였다. 어느 날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아무도 커밍아웃하지 않는 일터, 그 곳은 안녕한지 말이다. 내 주변에 이렇게 일하는 성소수자들이 많은데도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위축감, 불안 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되묻기 시작했다. 성소수자의 노동할 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많은 연구들이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집단으로 동성애자를 꼽곤 한다. 거리감은 이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지 않다. 편견과 혐오가 건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지내는 공간에서 배제되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느낀다.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이런 거리감을 실감하며 일해야 하는 것, 일단 그것이 문제다.

거짓말 스트레스

일은 일, 사생활은 사생활. ‘말 안하고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물론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디 ‘일은 일’이라는 원칙이 지켜지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한다. 본래 이 말은 ‘벽장을 뚫고 나오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지금,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할 수 없는 직장은 벽장과 같다.

벽장 안에 가둬진 사람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된다.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이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놓인다. 여러 국내외 연구들이 동성애자들은 강박적 불안이 방어적으로 생겨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그 결과 비성소수자들에 비해 성소수자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높다고 한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이 업무 생산성을 훨씬 높인다는 경영학계의 연구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회사나 노동조합이 지속적으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성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없다고 생각하면 차별은 그대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직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동료나 상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성소수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더라도 당사자는 한껏 위축되거나 모멸감을 느끼며 꾹 참는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그 때 동조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자리를 지키던 자신을 탓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말과 행위가 차별로 인정되기까지는 차별받는 당사자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결국 안 보이는 사람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 노동자는 늘 차별금지의 바깥에 놓인다. 그러므로 회사의 취업규칙,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단체협약 등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이 일단 필요하다. 공공연하게 혐오를 드러내거나 성소수자를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약속할 때, 비로소 지금껏 문제가 아니었던 ‘태도’들을 점검할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스스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설득시키면서 진행할 때 더욱 효과가 있다.

가족이 아니니 수당은 못 준다?

위에서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인정’의 문제를 이야기했다면, 그에 못지않게 공정하게 대우받고 평등하게 분배받는 문제도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가족수당이나 복지수당 등은 결혼 후 가족을 이룬 배우자나 자녀 수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이런 수당이나 각종 경조사에 대한 유급휴가 등은 협상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부분이지만, 애시당초 가족을 이룰 수 없어서 배제된 사람들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동성파트너와 10여년을 함께 살고도 이러한 혜택에서 제외된다면? 신혼여행도 본인의 연차휴가를 빼서 다녀와야 한다면? 파트너 인정이 되지 않아 간병휴직을 낼 수 없다면? 직장의료보험에 피부양자 등록이 되지 않아서 굳이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면? 다른 부부는 다 해주는 전세자금대출이 나만 안 된다면?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철저히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짜여진 기업복지와 사회보장제도 바깥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정상가족’ 바깥의 사람들에게 확대하는 것은 평등을 위해 중요한 과제이다.

자신의 모습으로 일하는 것, 성소수자에게도 당연한 권리

노동자들에게 ‘해고’나 ‘실직’은 너무 두렵다. 결국 먹고 살 길이 끊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어질 글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성소수자들은 채용 과정부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머리가 짧거나 치마를 입고 싶지 않은 레즈비언에게 면접관은 대뜸 여자답게 하고 다니라거나 살 좀 빼라는 훈수를 둔다. 결국 면접장을 돌아나오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주민등록번호와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채용 장벽에 가로막혀 보다 열악한 일자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재로서는 개인의 몫이다. 직장검진에 포함된 에이즈 검사 때문에 매일이 불안한 HIV/AIDS감염인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일터로 진입하는 것조차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가해지는 것이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갖가지 형태의 고용차별(모집, 채용 및 해고, 노동조건 및 환경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겪는 구체적 현실은 이들의 경험 속에 뭉뚱그려져 있던 고립감이나 박탈감, 모욕감이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갉아먹었는지를 낱낱이 밝힐 때 드러날 수 있다. ‘성소수자 노동권’은 어떤 특별한 권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기 모습 그대로 평등하게 노동할 권리, 그것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아우르는 말이다. 물론,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까지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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