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생존방식 생각하면, 비공개 교섭은 논란거리조차 안 돼

[기고] 삼성전자서비스 비공개 교섭은 교섭도 전술도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사가 비공개 실무교섭을 하기로 했다는 기사(6월 14일자)로 금속노조 뿐 아니라 관계된 활동가들 사이에 비공개교섭에 대한 각기 다른 불편함이 드러나는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노동조합이 비공개 교섭을 하는 것은 논란거리가 아니다. 민주노조인지 어용노조인지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노동조합 활동의 공개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있으나 누가 교섭을 하는지, 어디에서 교섭을 하는지, 무슨 내용으로 하는지가 공개되지 않는 교섭은 철저히 조합원을 배제한 채 교섭이 진행됨을 의미한다.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한국노총에 의해 자행된 어용노조의 벽을 깨고 민주노조를 만들 때 주요한 동력이었던 요구의 핵심은 교섭방식 즉, 밀실에서 교섭하지 말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노조의 요구안을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선출한 대표가 그 요구안을 들고 가서 사측의 대표와 동등한 자격으로 만나 교섭을 하며, 교섭장에서 나오면 조합원들에게 보고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다시 교섭에 들어가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 도출되는 잠정합의안이 사측의 어떤 개소리와 우리의 어떤 주장이 쟁점이 된 끝에 도출된 내용인지 아는 것, 그리하여 그 안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총회로 최종 결정하는 것. 이것은 원칙이라기보다 민주노조의 생존 방식이다.

비공개 교섭이 옳지 않다고 했더니, 삼성이라는 대기업과의 싸움인데다가 당장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도 하고, 더 나아가 마치 노동조합이 의도한 유연한 전술적 선택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현대라는 대기업과 싸우며 당장 힘이 없어서 하청 사장들과 성에 안차는 단협을 맺기도 했고, 교섭을 못하기도 했다. 아산공장의 금양물류 성희롱 사건 때는 원청인 현대차가 아니라 2차 협력업체인 글로비스와 교섭을 하며 당장 원청회사와 교섭하지 못하는 한계에 스스로 화가 넘치기도 했다. 또 박정식 열사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하청업체와 교섭하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원청 관리자가 공공연하게 조롱을 해도 힘 있는 투쟁으로 답하지 못해 교섭을 하지 않은 채, 힘이 없어서 전국의 노동형제들의 모금으로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10년이 넘도록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지회는 정당한 교섭의 상대로 인정받으며 현대자동차와 교섭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힘이 없으면 요구안이 후퇴될 수도 있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쟁취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교섭을 못할 수도 있다. 전술적인 선택은 이런 것이다. 삼성이 원하는 대로 교섭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그저 사측의 의도대로 하는 것이지 우리의 전술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측과, 언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뭔지 모르는 말을 한 끝에 가져오는 문서가 교섭의 결과물일까? 투쟁의 결과물일까? 이건 교섭도 아니고 전술은 더더욱 아니다. 노사 양측의 간보기였다면 모를까!

심지어 비공개 교섭에 대한 문제제기에 공개해서 교섭이 중단되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성수기에 조합원들이 투쟁에서 이탈하거나 조합을 탈퇴 할 것이라며 노조가 더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한다. 웬지 노조걱정을 너무 해주던 사측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들은 늘 평화를 바란다고 했다. 비둘기처럼.

삼성이 비공개 교섭이라도 하자고 할 때, 동력 떨어지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비공개 교섭해서 마무리 하자는 전술을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있다면 교섭형식에서조차 밀리는데 교섭내용은 어떨 것인지? 한국사회에서 삼성의 행태가 제도화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향후 고민도 같이 해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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