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는 HIV/AIDS감염인 커뮤니티

[기획연재] 이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편집자주] 동인련 HIIV/AIDS인권팀에서는 3회에 걸쳐 HIV/AIDS를 둘러싼 국내 이슈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1) 에이즈와 동성애혐오 (호림)
2) 에이즈와 건강권 (혜민)
3) 에이즈와 커뮤니티 (정욜)


2005년인지 6년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참석한 분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었던 HIV/AIDS감염인 자조모임과의 만남.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카노스 후원의밤 자리였다. 그곳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구세군에서 카노스 회원들을 처음 만났다던 도자기 공방주인은 돈 한 푼 없고 어디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공간 한 켠을 내주었다. 책상 하나가 카노스 사무실의 전부였다. 축축하고 구슬픈 노랫소리가 성북동 지하 공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행사의 마지막순서였다. 한 때 가수생활을 했다는 그 분은 아주 여리여리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었다. 20명 남짓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참석자 소개시간, 순간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고민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축하사절단으로 왔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계속 맴돌았다. 나는 에이즈인권운동하는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HIV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대받지 못했다. 문제는 소문이었다. 좁디좁은 게이커뮤니티 바닥에 HIV감염인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할 거냐는 반응에 모임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내가 후원의 밤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니 이제 이렇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에이즈인권운동이 갓 시작되었던 무렵, 감염인 당사자들은 거칠었어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모이고 말하고 있었다.

카노스 회원들과 인권활동을 함께 하면서 친밀감을 쌓아갈 무렵 우려했던 상황을 마주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을 하며 만났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보지 못해 안부가 궁금했던 A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자조모임 회원들은 서로를 별칭으로 불렀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잘 몰랐다. 순간 너무 놀라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갔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카노스 회원모임에 참여하는 건 자조모임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참여를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거라고. 그는 더 이상 카노스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종로 낙원동 거리에서 마주치길 몇 번,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라 마음속으로 안부만 물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자주 가던 게이바에서 그를 만났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아닌 척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날 불렀다.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HIV확진판정 이후 사람들을 보지 못할 만큼 괴로워했다던 그, 내가 그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니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어갔다. 같이 웃었고 아주 긴 시간 술자리를 함께 했다.


2011년 제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를 계기로 감염인 자조모임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공개적인 오픈광장에서 자신들의 삶을 용기 있게 말하고 한국 HIV/AIDS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 들어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기도 했다. 이 활동을 계기로 2012년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가 구성되었다. 인터넷 카페로만 존재했던 감염인 자조모임 여섯 곳이 오프라인으로 처음으로 모인 것이다. 발족식이 있던 그 날 큰 기대를 가지고 강당을 가득매운 사람들, 자신들의 활동계획을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던 활동가들. 그 날 감염인 인권운동의 새 시작은 모두에게 감동이었다. 변변한 사무실은 없었지만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 바꾸고 싶은’ 그 마음들이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대다수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생계가 불안정했다. 활동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 KNP+ 주요활동가들이 (나는 그들을 그냥 형님이라고 부른다) 나에게 간사 역할을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에이즈인권운동을 하면서 감염인 자조모임 운영의 어려움을 가깝게 지켜봐왔기에 이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인권운동의 경험이 거의 전무한 분들이었고 KNP+ 활동이 안정될 때까지 도움을 주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 발 한 발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거의 1년 만에 회의를 재개하면서 조직의 형태를 조금씩 갖춰나가고 있다.

KNP+ 간사를 맡게 되면서 좋은 점은 건강나누리 정회원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건강나누리는 KNP+ 회원단체이자 감염인 당사자들이 건강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위해 인터넷 카페로 만들어진 가장 큰 자조모임이다. 처음에는 감염인들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특별회원자격이 주어졌다고 자랑도 했지만 지금은 소위 ‘눈팅’만 할뿐 답 글 하나 단 적이 없다. 건강 나누리 가입을 위해선 감염 확정시기, 약 복용유무, 복용약명까지 아주 자세한 개인정보를 기입해야 정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비감염인 가입 절대불가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가입조건이 까다롭다. 용기 있게 발을 내딛은 사람들에게 또 다시 자리를 뺏는 것은 아닐 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곳의 많은 글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 때문에 편하게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을 토로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과연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하고 있다.

2011년 이후 대구․경북지역에도 지역모임이 처음으로 생겼고, 10-20대 감염인들도 자발적인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당장 이들의 연합이 대단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늘 이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성장을 기대한다. 현재 한국의 HIV/AIDS인권현실은 감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격리 조치했던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하지만 감염인 자조모임들은 스스로 모여 이야기하고 화내면서 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다. KNP+는 곧 HIV확진판정난지 2년 이내의 감염인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신들이 거쳐 왔던 힘든 시기를 반복하지 않도록 스스로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앞에 나는 오히려 반성하고 이들의 마음을 쫓아가기에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과 나란히 서서 함께 화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얼굴이 노출될까 두려워하는 이들 옆에 함께 마스크를 써주고 기꺼이 감염인이 되어주자. 구체적으로는 작은 사무실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KNP+의 후원인이 되어주는 것도 좋겠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 떠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KNP+가 있을 수 있었다. 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는 HIV/AIDS감염인들, 이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 KNP+ 홈페이지는 http://knpplus.or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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