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11월 11일, HL그룹의 지주회사 HL홀딩스 이사회는 자사주 470,193주(4.95%)를 향후 설립할 공익법인(재단)에 무상증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 결정은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과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동시에, HL홀딩스의 자회사인 HL만도에서 개발한 자율주행로봇(MSTG) 사업부를 지난 9월에 새로 설립한 HL로보틱스가 인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자회사 사업 가로채기와 HL만도의 수익성 악화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논란도 일었다. 공익법인 자사주 무상증여와 HL로보틱스의 MSTG사업부 인수 등은 재벌 2세 승계의 사전 작업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HL홀딩스의 2대, 3대 주주 등이 반대의견을 내면서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의 반응까지 싸늘해지자 11월 26일 오후 HL홀딩스는 공익법인에 자사주 무상증여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모든 의문과 논란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남겨야 할 필요 때문에 이 글을 게재하기로 했다. 이 글은 HL만도의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글로 공개되자마자 사측에서 글을 삭제했다.
출처: HL그룹 유튜브 영상 갈무리
지난 10월, 만도 이사회는 HL로보틱스로 MSTG매각을 결정하였습니다. 11월에는 HL홀딩스가 자사수 47만193주(의결일 전일 거래가 163억)를 추후 설립할 비영리재단에 무상 증여키로 이사회에서 승인하였습니다.
MSTG를 로보틱스로 매각하는 것은, 만도에서 투자하고 미래먹거리로 키워왔던 사업을 지주사가 채가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적어도 일개 기능직 직원인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지주사 입장에서는 사업영역의 집중이라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도와 만도 주주,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인지 전혀 설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HL홀딩스의 자사주 증여 또한 비판받고 있습니다.
“'사회 공헌'이라는 미명 아래 회삿돈으로 손쉽게 대주주 의결권을 강화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다. 주요 주주인 VIP자산운용과 베어링자산운용조차 일반 주주들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한국경제 11월 24일 자)
"10년간 (HL홀딩스) 주가가 반토막도 더 나도록 기다려 줬는데 배신감이 너무 크다.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재단에 무상으로 증여할 생각을 하다니…돌아선 주주들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한국경제 11월 24일 자, 포털사이트 HL홀딩스 종목토론방에 한 주주가 올린 글이라며 인용)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매입한 주식의 상당수를 제삼자에게 무상 증여하는 것은 ESG가 아닙니다. 그냥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꼼수라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마디로 MSTG 매각과 지주사의 자사주 무상증여는 결국 사주에게 이익이지만, 만도나 HL홀딩스와 주주 및 구성원에게 어떤 이득도 없어 보입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주차로봇을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셨다면 만도가 선두주자였다는 점에서 스탠리로보틱스를 인수하고 MSTG를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만도와 주주 구성원 설득 방안이 되지 않을까요? 또 비영리재단 출연이 필요하다면 회장님 개인 재산으로 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사실 HL그룹은 학교법인을 가지고 교육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비영리재단을 만든다고 하니, ‘무슨 재단이지?’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것도 주주가치 제고라는 자사주 매입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비판받으면서까지 어떤 비영리사업을 왜 구상하셨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정도경영, 책임경영을 회장님은 말씀하시지만, 디앤아이한라에서의 책임경영과 만도에서의 책임경영이 다릅니다. 디앤아이한라에서는 책임경영을 위해 이사직에서 사임하고 회장님 소유 주식도 무상으로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만도에서는 책임경영을 위해 이사직에 계신다고 합니다.
무척이나 헷갈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된 책임경영입니다. HL홀딩스의 이번 결정은 회사 등기이사로서 주주와 회사이익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하기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대주주의 낮은 지분율을 보완하는 조치로밖에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주 이득의 최대화, 주주이익 무시, 구성원 설득 실패의 대표적 사례 아닐까요?
정몽원 회장님은 현재, HL홀딩스, 만도, 클레무브의 등기 이사이십니다. 이사직 쇼핑이 취미도 아니시고 굳이 그룹 핵심 기업의 등기이사이실 필요를 모르겠습니다. 대주주로서 지주사 이사만으로도 충분히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실 텐데 말입니다.
대승적으로 만도를 비롯한 모든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시고 대주주로서 지주사 주주총회를 통한 경영 참여를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2008년 10년 만에 회장님이 만도로 돌아오셨을 때, 대부분의 만도 구성원은 정몽원 회장님의 복귀를 반겼습니다. 순리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회장님께서 물러나셔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거칠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이런 소통이 회사와 회장님께 어쩌면 이익이라 생각하기에 30년 넘게 만도에 다닌 기능직 직원의 충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 회장님의 만도 이사직 사임이 처음도 아니고요. 더는 ‘법에 저촉돼 처벌만 안 받으면 뭐든지 하는 회사’라는 오명은 없었으면 합니다.
- 덧붙이는 말
-
임두혁은 HL만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