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Minku Kang, Unsplash
‘꼴값’은 사람의 모양새나 행태를 낮잡아 이를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누군가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꼴값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사물이나 사람을 비하할 때만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꼴값의 ‘꼴’은 어떤 것의 모양새나 행태, 어떤 형편이나 처지를 낮잡아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이라는 의미도 지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꼴은 어떤 객관적 사실에 속한다. 이렇게 보면 꼴값은 객관적 사실로서 꼴이 지닌 값어치, 그것의 가치 또는 그것이 치르게 하는 대가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사실 모든 사물은 특정한 꼴, 생김새 또는 형태를 지니며, 그에 따른 값을 하는 법이다.
꼴은 생김새처럼 사물의 드러나는 방식에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사물의 두 가지 주된 존재 방식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형태와 기능을 지닌다. 형태와 기능은 서로 구별되기도 하지만 상관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식물이 보기 좋다고, 즉 그 형태가 훌륭하다고 하여 꼭 약효가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때 특정한 형태와 특정한 기능은 서로 무관한 셈이다. 그래도 사물의 형태는 그것이 지닌 기능과 관련 있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우리네 머리가 신체 상부에 있고 눈은 정면으로 향해 있는 것은 인간이 장축 직립 동물로 진화해 온 결과 인지기능이 밀집된 부위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은 직립 존재로서 다른 동물, 다른 영장류와도 다르게 기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초원 동물인 얼룩말에 무늬가 있는 것도 생존에 유리해서 그렇게 진화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은 형태에서 기능이 생기고, 기능에서 형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을 것임을 말해준다.
청년 시절 이후 서울에서 살아온 나는 29년 동안 살던 동네를 8년 전에 떠나 지금은 한 빌라촌에서 살고 있다. 단독주택가에서 오래 살다가 빌라촌에 왔을 때 느낀 첫인상은 이곳이 한국인가 하는 것이었다. 빌라촌은 서울에 흔한 아파트단지와도 너무 달랐고, 단독주택 주거지와도 너무 달랐다.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빌라촌 ‘골목’을 구경하다가 가졌던 인상은 마치 내가 낯선 외국에 왔다는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눈에 띈 것이 골목의 생김새였다. 지금도 빌라촌에 형성된 길들은 골목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도로에 더 가깝다. 도시 골목은 전에는 자동차는커녕 사람도 겨우 서로 비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데가 많았다. 구불구불했을뿐더러 길지도 않았다. 반면에 오늘날 서울 같은 대도시 빌라촌의 길들은 수백 미터는 우습다고 할 정도로 길어졌을뿐더러 직선화했고 승용차 두 대는 비켜 다닐 수 있을 만큼 넓다. 다시 말해 빌라촌 길은 골목이 아니라 차량 통행과 보도 기능이 겸한 도로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거리가 된 곳도 많다. 도로의 주된 용도가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에 있다면, 거리는 그런 용도에 더해 ‘멈춤’의 기능까지 갖출 때 형성된다. 다시 말해 차와 사람이 지나다닐 뿐인 길이 도로라면, 사람들이 각종 머물기 행위―구경, 만보, 구매, 휴식 등—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할 때 길은 같은 도로라도 거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빌라촌에는 곳곳에 편의점, 식품점, 반찬 가게, 빵집, 분식점, 식당, 술집, 커피숍, 미용실, 네일숍, 꽃집, 세탁소, 학원 또는 교습소, 부동산소개소 등 이전에는 상가나 시장에 있던 업소들이 들어와 산재해 있다. 이런 점은 서울의 경우 경리단길, 망리단길, 샤로수길, 서촌·연남동·연희동 등의 골목, 경의선숲길 등 상권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관광지처럼 된 곳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 곳이 아닌 전용 주거지인 빌라촌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길이 거리로 형성된 곳이 적지 않다. 내가 사는 빌라촌은 관광지화한 곳이 전혀 아닌데도 상권이 형성된 골목이 여러 군데 있다.
빌라촌의 모습을 보면 주거지역의 꼴값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결과 아닐까 싶다. 서울의 경우 자본주의적 도시화가 시작된 시기는 196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한국 사회는 발전주의적인 성장을 시작했고, 이 흐름을 주도한 도시가 수도 서울이다.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도시화는 대략 1980년대 말에 이르면 하나의 순환을 끝내게 된다. 그 무렵 노태우 정권이 주택 200만 호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수도권의 경우 일산과 분당 등 신도시를 건설한 것은, 서울에서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경기도 등 비서울 수도권에서는 기존의 비 도시 지역이 처음 개발되는 수도권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제2차 순환이 시작되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서울에서 빌라촌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90년 전후로 서울에서는 한편으로는 1960년대 이후 자본주의적 도시화 과정에서 난립한 판자촌이나 달동네, 낙후한 단독주택가를 대상으로 한 재개발, 다른 한편으로는 야산이나 논밭, 천변, 언덕과 같은 도시화 과정에서 제외되었던 공간들을 대상으로 한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기 시작한다. 주거지역만 놓고 보면 서울은 그 두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 즉 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의 주거지역은 크게 아파트단지와 빌라촌으로 양분된 모습이다.
빌라촌이 빌라촌으로 되고 아파트단지가 아파트단지로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금 아파트단지로 조성된 곳은 이전에는 야산이나 논밭, 천변 등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으로 있었거나 개발되었더라도 판자촌이나 달동네 등이던 곳이 태반이다. 반면에 빌라촌은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중산층이 많이 살던 주택가인 경우가 많다.
각기 들어선 토지의 역사가 다른 탓에 아파트단지와 빌라촌은 형성 방식도 서로 달랐다. 아파트단지는 대규모 단위로 대지를 확보하고 대지 위에 기존의 가옥이 많이 있더라도 한꺼번에 철거한 뒤 일률적으로 조성된다. 아파트단지는 그래서 신축 젠트리피케이션의 형태로 개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축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지에서 입주민의 계급적 위상이 상향 조정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종류로, 기존의 건조환경을 일률적으로 철거해서 진행되는 경우를 가리키며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구별된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통상 개별 가옥의 손바뀜을 통해 이뤄지며 기존의 건축물을 완전히 철거하기보다는 그 일부는 보존한 가운데 진행되는데, 전형적인 예를 2000년대 말 이후 00단길, 00수길 등의 이름으로 조성된 상가 골목에서 볼 수 있다. 빌라촌의 경우는 개별 건물이 손바뀜을 통해 새 건물로 바뀐 점에서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유사하나, 이전에 있던 건물이 완전히 철거된 자리에 전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점에서는 신축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조성된다고 할 수 있다.
빌라촌이 들어선 곳은 과거에는 대부분 단독주택가였다. 그런 주택가가 빌라촌으로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단독주택가의 주택 특히 그 대지는 소유주가 대부분 중산층이었고, 지가가 높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수용되어 아파트단지로 조성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별 주택들이 시차를 두고 손바뀜해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 건물로 바뀜에 따라 기존의 단독주택가는 서서히 빌라촌으로 바뀌게 된다. 같은 장소에 들어선 건조환경이지만 1970년대나 1980년에 볼 수 있던 주택가와 오늘날의 빌라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2015년 11월〜2016년 1월 사이에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묘사된, 아직 재개발되기 이전의 단독주택가 골목과 오늘날 빌라촌 골목을 비교해도 그런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과거의 도시 골목에서는 다양한 멈춤 행위가 가능했다. 그런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골목 안에 평상이 놓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에도 골목에 놓인 평상에 앉아 동네 주부들이 수다 떠는 장면이 나온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동네 주민이 만나면 서로 돌아가는 사정을 나누는 곳도 골목이요, 말다툼이 일어나는 곳도 골목이었다. 오늘날 빌라촌 골목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빌라촌 골목은 이제 머물러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지나가는 곳, 통로에 가깝다. 그런 골목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서서 담소를 나누지 않는다. 개인적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이 서로 말을 나누는 것은 데리고 나온 개들이 서로 관심을 보일 때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빌라촌 골목에서는 이웃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개들 사이의 교류보다 덜 중요해졌다는 말인 셈이다.
빌라촌 골목은 오늘날 그 꼴값을 단단히 하는 듯싶다. 차량이 쉽게 통행할 수 있게 넓어지고, 길이도 수백 미터, 심지어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길어지고, 또 직선화한 결과, 골목의 형태는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그 결과 골목은 새로운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차도의 역할을 한다. 그런 점은 오늘날 빌라촌의 건물들이 대부분 필로티 구조로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주택가 건물은 예외 없이 담장을 두고 있었고 마당이 있었으나 오늘날 빌라촌 건물 가운데 담장과 마당이 있는 경우는 전혀 없는 셈이다. 대신 1층이 대부분 필로티 양식으로 지어져 주차장으로 이용된다. 빌라 건물은 통상 10여 가구가 사는데 골목이 차도가 된 것은 입주 가구마다 자동차—과거에는 사치품, 위세품이었으나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를 보유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골목의 직선화라는 형태상의 변화는 골목이 차도로 기능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골목이 차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멈춤의 공간보다는 통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이런 점은 빌라촌 골목이 거리로 바뀐 것의 의미와는 상치된다고 볼 수 있다. 거리란 사람들이 머물며 노닥거릴 수 있는 길의 모습인데 빌라촌 골목이 차도로 더 많이 쓰인다는 것은 반대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와 차도의 양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빌라촌 골목은 거기에 상가가 형성된 경우는 거리 모습을 띨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차도 또는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도 따지자면 오늘날 골목은 과거와는 달리 멈춤의 행위보다는 통행에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이 크다. 그런 점은 골목이 자본의 축적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하게 된 점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빌라촌 골목은 과거 주택가 골목과는 달리 자본가치가 생산되는 노동 현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거기서 상품 운수가 이뤄지는 점이 주목된다. “상품의 공간상의 현실적 이동은 상품의 운수로 귀착된다. 운수업은 한편에서는 하나의 독립적 생산 분야를 이루며 그리하여 생산자본의 특수한 투자 분야를 이룬다. 다른 한편으로, 운수업은 유통과정의 내부에서 유통과정을 위한 생산과정의 계속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다른 생산 분야와 구별된다”(마르크스, 『자본』 제2권, 김수행 역, 2015: 181). 오늘날 빌라촌 골목에는 빌라 입주자들의 승용차만이 아니라 골목에 입점한 편의점이나 슈퍼 등의 상점에 상품을 배달하러 온 차량, 온라인 구매가 급증한 결과 늘어난 상품 배송을 위해 온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소속) 차량, 다양한 식당에서 주문받은 저녁 식사를 배달하는 오토바이 등이 무시로 드나들고 있다. 골목이 이렇게 각종 상품 운송을 위한 사회적 하부구조로 기능하게 된 것은 그것이 차도로 쓰일 수 있게 넓은 직선의 꼴을 갖춘 것과 무관할 수 없다.
빌라촌 골목은 지금 그 꼴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것은 빌라촌이 빌라촌으로 된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날 빌라촌은 아파트단지와는 바로 비교될 수는 없어도 그 조성에 상당한 규모의 건설자본이 투하되었다고 봐야 한다. 과거 몹시 좁던 골목길을 넓히기 위해서는 토지도 상당량 수용했을 것이다. 많은 자본이 투여되었으니 이제 본전을 뽑는달까, 골목은 그 형태에 걸맞은 기능을 하도록 요구받게 되었고, 이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빌라촌 골목은 사람들에게 대가도 치르도록 했다고 봐야 한다. 이제 골목에서는 삶을 온전히 영위하기는, 예컨대 평상 놓고 수다 떨 여유를 갖기는 불가능해졌다. 빌라촌은 이전의 주택가와는 달리 더 이상 공동체도 아니다.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면서 골목은 시장, 즉 상품의 유통 공간으로 바뀌거나 차량 통행이 우선인 도로가 되었다. 그런 골목에서 과거 골목길에서 형성되던 이웃, 인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주택가와 골목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서 벗어난 삶,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자본의 지배를 직접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 가족과 이웃으로 구성되는 비자본의 시공간이 제공하는 삶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빌라촌에서는 그런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목에서의 정담도 이제는 반려견끼리나 가능할 정도다.
넓고 길며 곧게 뻗은 골목은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도시화 과정에서 특히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빌라촌이 대표적인 주거지역 유형으로 형성되는 가운데 등장한 길의 형태다. 그런 길이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생긴 대로만 그냥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만만찮은 꼴값을 하며, 거기 사는 주민에게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한다. 물론 빌라촌과 그 골목이 매우 편리한 삶을 제공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거기서 우리는 상설시장에 가지 않아도 편의점이나 다른 가게에 들러 쉽게 생활용품을 살 수 있고, 안방에서 온라인으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주문할 수 있으며, 빌라 1층에 세워둔 자동차로 다양한 목적으로 외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다른 많은 것, 과거에 우리가 누리던 멈춤과 노닥거림과 나눔의 삶을 잃고 생긴 것이기도 하다.
빌라촌 골목의 꼴과 그 값을 새롭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아마 그러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를 폐절해야만 할 것이다. 이 일이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빌라촌 골목의 꼴값과 더불어 우리네 삶의 꼴값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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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