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은행은 이전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호평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세계은행의 연구 부서는 이들 국가들, 특히 말레이시아의 소득 분포를 조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말레이시아는 그 시점까지 거시경제 정책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세계은행과 거리를 두었고, 소득 분포 문제, 즉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사이의 소득 격차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데는 더욱 그랬다. 결국 우리는 원하는 모든 자료를 확보했고, 관계도 꽤 좋아졌다. 그러나 그 문제—말레이시아의 소득 분배 문제에 대해서라면—나는 완전히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출처: Unsplash+. Thomas Boxma
오늘 내가 쓰려는 글은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는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내가 유엔 여권(UN Laissez-Passer, 이를 여권으로 인정하는 국가들에서는 세계 어디든 통용되는 여권)을 갖고 있었음에도 1990년대 말 당시 말레이시아에는 전혀 별개의 규정이 있었다. 즉,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정책과 ‘집단학살‘ 혐의 때문에 이스라엘과 세르비아 국적자는 입국이 금지되어 있었다. 지금은 세부 사항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를 전화로 처리했기 때문에, 런던에 있는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통해 여러 통의 전화를 한 끝에, 나의 불미스러운 국적에도 쿠알라룸푸르로의 여행 허가를 특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초현대식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매우 놀랐다. 나는 형식적으로 따로 불려 나갔지만, 공항 직원들은 친절하게(혹은 무관심하게) 나를 대했다. 이러한 ‘추가’ 절차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이후 말레이시아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한 번도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그것을 아시아의 스페인이라고 생각했다. 문화적 다양성, 길게 뻗은 백사장, 훌륭한 음식점들, 쿠알라룸푸르의 마천루와 밤문화, 놀라운 청결함,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까지.
그러나 세르비아의 반이슬람주의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몇 차례 일반 말레이시아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저지른 집단학살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물론 항상 정중한 방식이었다. 나는 그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시선은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슬람에 별로 관심이 없고 세계 정세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던 유럽의 변방 국가들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세계 정세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무지한 사람들과의 불쾌하지 않은 대화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와 현실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불편한 대화를 감수할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불쾌한 주제를 피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과연 세계를 위한 바람직한 태도일까? 그리고 현재 세계에 대해 큰 관심을 품고 있던 티토 시대 유고슬라비아의 유산을 지닌 나 자신에게도 그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였을까? 나는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지내는 사람들과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세상과 역사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확실히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호감을 느꼈다.
아마도 우리는 전 세계의 일에 무관심한 채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계에 살게 될까?
[출처] A view of the world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