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하는 장면은 기괴했다. 보통의 대통령과 참모들은 여당 대표를 만나는 현장을 아름답게 포장하려 들기 마련이다. 여러 정치공학적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에게 통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 밑에서는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다툴지 몰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한마음 한뜻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게 보통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권의 태도는 이런 ‘보통’의 궤도를 심히 벗어나 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대통령의 표정과 포즈는 한동훈 대표를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다. 이 사진들은 대통령실이 직접 ‘선별’한 것이다. ‘의도’가 담겼다는 뜻이다. 즉,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의 메시지는 통치를 잘해보기 위해 여당 대표와 머리를 맞대는 것 따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사진엔 오직 ‘한동훈은 제거돼야 할 배신자’라는 의미만 담겨있다는 뜻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주권자가 권력을 투표를 통해 대리인에게 위임하는 절차를 통하여 작동한다. 지도자의 권력은 타고 난 것이 아니라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에 공적 맥락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윤석열 정권이 이런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이고 사유화에 가깝다.
출처 : 대통령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지도자가 세상만사를 손익을 둘러싼 이전투구로만 보기 때문이다. 한동훈 대표의 이른바 ‘3대 요구안’은 그들 수준에서는 비상식적 요구라 볼 수 없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치는 보수적 유권자층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바다. 최근 명태균 씨 관련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이런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련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면서 특검 필요성도 마냥 부인할 수만은 없게 됐다. 국정운영 동력의 유실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 무언가 결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모자랐으면 모자랐지 과한 것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수준의 요구 아닌가?
이런 수준의 요구에 대해, 여러 정치공학적 판단 끝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사실 그렇다 칠 일조차 못되지만), 한동훈 대표에게 굳이 이런 망신을 줘가면서까지 집권 세력 내부의 내전을 촉발할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건 배우자에 대한 ‘사랑’으로만은 해석할 수 없다. 한동훈 대표를 ‘배신자’로 보는 강력한 상황 규정이 존재한다고 보지 않으면 이해 불가능이다.
‘3대 요구안’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한동훈 대표를 ‘배신자’로 간주하려면 다른 무엇보다 ‘어느 편’이냐에 대한 기준을 우선하는 사고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초보’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운동권 초년생들이 전체 운동의 고민이나 좌표를 고민하는 것보다 조직 내 정치나 계파 동향에 먼저 익숙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통령은 곧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다. 임기 반환점을 돌 때까지도 통치 초보라면 그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통치에 무관심한 상태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이제 불은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로 옮겨 붙고 있다. 전 정권 역시 특별감찰관 임명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지금의 보수세력은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어찌됐건 특별감찰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드는 게 상식적이다. 대통령 본인도 후보 시절에 그걸 공약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분명해 보인다.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묶어 놓은 지금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류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이다. 직전까지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야당에 요구하던 추경호 원내대표는 한동훈 대표와는 달리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초대도 받은 인물이다. 특별감찰관을 단독으로 다루자는 한동훈 대표에게 추경호 원내대표가 이는 원내 사안이라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하고 심지어는 회의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그 뒷배경에 누가 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이 임명될 경우 곤란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의 유일한 특별감찰관 출신 인사로 남아있는 박근혜 정권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인적 관계로 따지면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과 대립할 이유가 없었다. 검사 출신의 직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우병우 수석의 비위 의혹에 손을 댔기 때문에 우병우 수석이 “선배가 이럴 수 있느냐”, “주말만 지나면 잠잠해질텐데 왜 사건을 키우느냐”며 항의를 했을 정도였다. 이들의 충돌은 넓은 의미에서 국정농단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 당시 과정을 잘 아는 대통령으로선 꺼릴 법한 얘기다. 친윤계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인 것도 이유가 있다.
그런데 특별감찰관 추천이 그렇게 실속있는 얘기냐 하는 것도 의문인 건 마찬가지다. 특별감찰관은 일단 강제조사 권한을 갖지 않는다. 혐의를 발견하면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를 할 수 있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방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불기소 처분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같은 일까지 들춰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동훈 대표와 친한계가 명운을 걸듯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특별감찰관 추천이 지금 상황에 대한 모범답안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답은 특검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것으로 나와야 한다. 애초 한동훈 대표의 ‘3대 요구안’은 야권의 김건희 특검을 거부할 명분을 만들려면 대통령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나온 거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실상 ‘3대 요구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은 특검이 통과되는 상황에 대해 ‘야당 편에 서겠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라는 식으로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다음에 나와야 할 얘기는 용산이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는 상황에서 특검에 대한 반대를 여전히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태도를 바꿀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거다.
형식논리적으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야권의 특검법을 국민의힘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친윤과 친한이 극단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일정 등을 활용해 특검 내용을 수정하는 등의 절충을 시도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조차 더불어민주당과의 공동 행보로 비치는 것이 우려된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 셋째, 여당의 자체 특검법안을 제출하자고 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본격적으로 특검을 추진하기로 결심한다면 그 이전에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게 여러모로 옳다.
이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친한 대 친윤 대립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은 정면승부를 할 마음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거부권 무력화’와 ‘탄핵’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여러 정치공학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일단 시간을 벌고 세력을 모아가면서 대응하자는 전략을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어떤 셈법이나 공학의 문제로만 접근하기에는 사태가 상당히 중대해졌다는 것이다. 대권주자 개인이 ‘배신자’ 혹은 ‘제2의 유승민’이 될 것을 걱정하는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대의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통치권을 위임받은 집권 세력으로서 책임있는 행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자체가 문제이다.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힘을 ‘선의를 가진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런 접근법 자체가 정치적 문제를 탈정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니다.
지금은 정치-놀음(혹은 노름)으로서의 정치적 수가 아니라 본질적 의미에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서의 정치 그 자체가 필요한 때임에도, 집권 세력 스스로가 그렇게 할 방법을 걷어 차버림으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자해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보수는 집권을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재건되지는 않았고, 그마저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진보는 형해화되고 보수는 퇴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인데, 민주주의와 그것에 걸맞는 정치가 다시 정의되지 않으면 마치 ‘슬픔의 삼각형’과 같은 형태로 이런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다. 깨어있는 유권자들의 어깨가 무거운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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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